レビュー
홍준영

홍준영

6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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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本 ・ 2004

平均 3.7

중남미 절반의 이야기. . '여성 문학'이라는 건 존재할까? 어떤 종류의 소설이 '여성 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여성이 창작한 소설? 여성 문제를 다루는 소설? 둘 다 똑 부러지는 답변은 아니다. '원미동 사람들'도 '폭풍의 언덕'도 흔히 여성 소설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여성 문제'가 무엇인지의 기준도 모호하고, 남성 작가들이 철저히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여성을 다루는 작품 역시 허다하다. 한 발짝 나아가면 여성 소설이 포착해야 할 '여성'이라는 목적어도 똑 부러지지만은 않는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레자데 역할을 계승하면서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거미여인의 키스' 속 몰리나는 여성성을 대변하는 인물인가? 남성 작가에 의해 타자화되고 도구화되지만 분명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밀어붙이는 카르멘을 여성 문학의 원형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가? 아니면 현대 사회의 토양에서 성숙하고 있는 페미니즘 사상을 형상화한 작품만을 '여성 문학'이라고 볼 것인가? . 모두 뚜렷한 정답 없이 던져지기만 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덕분에 읽는 이는 위대한 이야기꾼들이 내놓은 저마다의 답과 만날 수 있고, 이는 옳은 답보다는 흥미로운 질문을 추구하는 문학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과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은 각각 멕시코와 칠레에서 탄생한 걸출한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옌데는 '백년의 고독'이 신화와 민담, 정치와 역사, 사랑과 전쟁 등 모든 주제를 포괄하면서도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빼먹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진 듯하다. 그녀는 마르케스의 환상적 장편을 통째로 뒤집어 남성과 여성의 자리를 재배치하려는 기획을 짠다. 부엔디아 가문의 남성들이 소득 없이 끝날 연애와 사회활동에 뛰어드는 동안 태고의 어머니 우르술라가 가문의 한 축을 유지한다는 설정은 트루에바 가문의 여성들이 성과 없이 끝날 연애와 투쟁에 뛰어드는 동안 태고의 아버지 에스테반이 가문의 한 축을 유지한다는 설정으로 옮겨온다. 집시 멜키아데스는 니콜라스 외삼촌으로, 정부군은 가르시아와 그의 군대로, 마지막 아마란따는 게릴라 미겔로 이름을 바꿔 다시 등장한다. "클라라는 델 바예 가문 중 한 명이 곧 죽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실수로 죽게 될 거예요.'" "'개미들아, 너희에게 나가는 길을 알려 줄 테니 다른 개미들고 데리고 가거라.' 노인이 말에 올라타 길을 가면서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개미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했다. (중략) 다음 날 아침, 부엌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빨래하던 여인을 승천시키고 사 년 동안 그치지 않는 홍수를 내렸던 선배를 본받아 아옌데도 현실과 환상을 중첩시킨 세계관을 충실히 구축해낸다. . 아옌데가 그런 자신만의 '백년의 고독'에서 제시하는 여성문학은 '남성성의 극복'을 중심으로 한다. '영혼의 집'에서 에스테반에게는 전통적 남성성의 과오가 압축적으로 지워진다. "에스테반은 판차의 허리를 끌어안고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면서 거칠게 그녀를 들어올려 안장 앞에 앉혔다. (중략) 그제야 조심스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에 앞서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에 앞서 그녀의 할머니가 똑같이 치욕스러운 운명을 겪었다." 그는 육체적 우위와 사회적 권력으로 여성을 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종속시키는 존재다. "에스테반 트루에바가 아내의 손에 들려 있던 수프 그릇을 지팡이로 내리치는 바람에, 수프 그릇에 남아 있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기면서 그릇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역사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가부장제의 악습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노력조차 하지 않아! 손만 뻗어서 구걸하는 쪽이 훨씬 편하니까! (중략) 나는 그 볼셰비키 사상인지 뭔지를 우리 집에서는 용납할 수 가 없어. 당신이 빈민가에서 자선 사업을 하든 말든 그건 상관 안 해! 그건 여자들의 성격 형성에 아주 좋은 일이니까." 아옌데가 집요하게 공격하는 완고한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성공신화를 좇는 인물이다. 작가는 이처럼 남성성의 그림자를 한 인물에게 집중시킨 다음, 세 여성들을 통해 이를 극복할 여성성의 대안을 내놓는다. 클라라는 남편 에스테반의 폭력을 인내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사랑을 베푼다. 블랑카는 아버지 에스테반의 억압에 저항하고 사랑을 좇아 모든 규율을 거역하고 떠난다. 알바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 역시 칠레 사회라는 더 큰 부조리의 피해자의 일부라고 보고 그를 용서한다. 최종적으로 아옌데는 모성애적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여성적 연대를 통해 칠레 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것을, 그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이룩할 것을 제안한다. . 비록 작가가 대놓고 개입하는 수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와(2권의 핵심 사건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집권과 쿠데타는 철저하게 좌파정당의 시각으로 재구성되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긴장을 마술적으로 풀어내던 이야기는 갑자기 피노체트 정권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사실적 르포로 변해버린다. 엉망이다.) 보여주지 않고 자꾸 말해주려고 하는 인위적이고 심지어 교육적인(!) 대사들이 작품성을 크게 해쳤지만, 아옌데는 분명 여성문학의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비전을 준다. 특히 클라라의 일기를 비롯한 과거의 기록들을 읽은 알바가 "고통과 피와 사랑의 역사가 앞으로도 몇 세기 동안 계속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자신을 강간한 이종사촌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고 "그토록 많은 강간을 당하면서 생긴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미겔의 아이일 수도 있지만, 내 딸인 것만은 틀림없다."라며 아픔의 굴레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대목은(심하게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남성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입은 여성에게 관용의 정신으로 시대를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집'의 실질적 주어는 남성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가 없다. 소설이 가장 공들여 묘사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에스테반이고, 여성 인물들의 행동은 모두 '에스테반에 대하여 어떠하다'라는 술어로 요약된다. 아옌데에게 여성성은 남성성의 대립항으로만 이해되는 것이다. 클라라가 에스테반의 친구로, 블랑카가 에스테반의 아들로, 알바가 에스테반의 외손자로 바뀐다 해도 소설의 전개나 색채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정도다. 여성성을 '남성성의 극복'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결국 여성성을 남성성에 종속된 개념으로 연동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에스키벨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통해 선배가 빠트린 이 지점을 보완한다. 그녀는 여성을 독립적인 주어로 삼아 그 고유성을 살리려고 시도하고, 이 기획을 형상화할 도구로 '요리'를 선택한다. 그에 따라 텍스트의 형식도 그 어떤 글보다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친숙할 '레시피'의 형태로 꾸며진다. "1월. 크리스마스 파이. 재료. 정어리 통조림 1개. 초리소 1/2개. 양파 1개. 오레가노. 세라노 칠레고추 통조림 1개. 페이스트리 반죽 10개. 만드는 방법.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면 자그마한 양파 조각을 머리 위에 얹는다. 양파를 다질 때 눈물이 나오면 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한번 눈물이 나왔다 하면 양파를 다지는 동안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게 영 안 좋다. 여러분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맨날 그랬다. 수도 없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양파에 민감한 건 티타 이모할머니를 닮은 거라고 했다." 소설의 첫 대목이다. 부엌에서 양파 다지는 소리와 명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어머니에서 이모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의 뿌리까지 그 어디서도 남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게 에스키벨의 방식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여성의 영역에 속하게 하기 위해 여성의 성과 여성의 요리를 정교하게 직조해낸다. 한 권의 요리책처럼 월별로 배분된 요리가 극중 서사를 닮거나 영향을 끼치도록 설계한 솜씨도 노련하고 재치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6월. 성냥 반죽. (중략)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가 없다고 하셨죠. (중략)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가장 큰 매력은 에스키벨이 주목한 여성의 요리와 성이라는 두 요소가 흔히 남성적 시각에서 휘발적으로 소비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여성의 입장에서 독창적으로 다시 활용된다는 점이다. 요리는 남성에 의해 부과된 의무나 과제가 아니라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미적 경험으로 간주되고,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문에서부터 집 안쪽까지 연결된 거대한 세상은 티타의 손안에 있었다. 부엌 뒷문이나 안뜰, 과수원 같은 세상은 완벽하게 티타의 것이었다." 늘 음성화되어 은밀하게만 다루어졌던 여성의 성은 남근 중심의 서사에서 완전히 탈피해 자유롭게 그려진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나무판자가 뒤틀리면서 불이 붙었다. 헤르트루디스는 불길에 휩싸여서 타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샤워장에서 뛰쳐나왔다. 그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장미 향은 멀리,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중략) 이 여자에게는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잠재워 줄 남자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중략) 강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헤르트루디스는 천사와 악마를 반반씩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특히 3월에 해당하는 이 대목, 티타의 언니 헤르트루디스가 마마 엘레나의 가정을 뛰쳐나와 완전히 성적으로 해방되는 대목은 에스키벨의 문학적 역량이 가장 기막히게 드러나는 곳이다. 3월의 레시피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로, 티타는 사랑하는 연인 페드로에게 비밀스레 마음을 전달하고자 마술인 듯 마술이 아닌 듯한 재주를 부려 욕망으로 듬뿍 찬 요리를 완성한다. 그러나 요리를 먹은 건 언니 헤르트루디스였고, 차오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한 그녀는 위와 같이 달려나간다. 일상에 태연하게 마법을 끼워넣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성과, 요리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새로움의 미덕을 실현하려 한 에스키벨의 노력, 여성의 성이라는 주제에서 무거움을 덜어내고 웃음을 더하려 한 현대적 발랄함이 하나 되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을 연출해낸다. . 물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성만의 고유한 영역이 무엇인지, 여성성과 남성성이 가시적으로 구분하거나 명명할 수 있는 실체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스스로를 욕망에 맡겨 말 그대로 불태운 티타의 마지막 선택도 조금은 의아하다. "티타는 성냥갑 안에 들어 있던 성냥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중략) 그녀가 씹고 있던 인과 격렬했던 추억이 부딪히자 드디어 성냥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중략) 티타는 주저하지 않고 페드로에게 달려가 긴 포옹을 나누고 한참 동안 하나가 되었다." 에스키벨이 그려내는 독창적 여성상이 결국 남성을 포기하지 못해 산화하는 모양에 불과한 것이냐는 비판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발걸음은 값지다. 아옌데가 실각한 대통령의 조카라는 자신의 한계에 갇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포용할 주제로 사회운동이라는 다소 정치적이고 한시적인 테마를 제시했다면, 에스키벨은 집단으로 뭉뚱그려 규정할 수 없는 여성 개개인의 잠재력을 해방시키고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창조적으로 찾아갈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적 감수성은 쉽게 후대 작가들이 이를 딛고 한층 더 나아간 여성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도록 이끌기 쉽다. 그동안 숨죽였던 중남미 절반의 목소리, 또 세계 절반의 목소리가 문단에 어떤 레시피를 내놓을지 읽는 이들은 기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표지는 민음사 전집 중에서도 최고 축에 든다고 생각한다. 책등 색깔부터 멕시코 민화같은 그림까지 사서 읽지 않고 못 배기게 잘 디자인했다. +둘 다 권미선 선생님이 번역했다. 스페인어권 여류 작가들을 전담하시는 것 같다. 그런만큼 아옌데와 에스키벨의 문체가 잘 살아있다. 둘다 오탈자가 꽤 있다. [자가격리 기념 서문학 걸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