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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平均 4.0
<대성당> 나는 좋게 본 책일수록 감상을 남기지 않는다. 보고 난 후의 설렘이 나의 서툰 언어에 갇혀 퇴색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칭찬과 찬사에 가까운 소감일수록 글도 짧아진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펼쳐내고 싶지만, ‘참 좋다, 멋지다’ 같은 일차적인 문장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건 셰익스피어처럼 미사여구를 화려하게 사용하고, 수사법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는 거꾸로 표현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문장을 꾸미기보다는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사사로운 부연설명도 많이 하지 않는다. 독자는 등장인물에 이입하여 작중 상황을 직접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차례 글을 읽고 나면 독서를 마쳤다는 기분보다는, 내가 어떤 상황을 경험했다는 기분이 든다. 단지 읽었을 뿐인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나의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대성당>은 지극히 사소하여 주목하지 않는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올라 평생 소중히 하고 싶은 순간까지,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각각의 단편에 담았다. 크게 보면 부정과 긍정의 감정으로 나뉜다. 대개 기쁨보다 분노가 더 오래 지속된다는 점에 기인하면 경험을 선사하는 듯한 카버의 문체는 긍정을 다룰 때 빛을 발한다. 나도 12편의 단편 중 '대성당'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각별하게 보았다. 책의 제목을 꿰찬 '대성당'만 소개하자면, ‘대성당’의 화자는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의 말투와 태도에는 편협한 사고관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아내와 친분이 있는 시각장애인을 ‘맹인’이라는 이유로 더욱 경계하며, 앞을 볼 수 없다는 특징을 '다르다'라고 여기는 대신, '틀리다, 낯설다, 이상하다'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런 화자를 비난할 여지는 많으나 특별한 악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의 무례함은 악의보다도 자기중심적이고 사려 깊지 않은 방만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도, 혹은 나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면모가 있다. 반면 맹인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이름은 로버트지만, 화자는 그를 계속 맹인이라고 호칭한다. 로버트는 예의 없는 질문도 부드럽게 받아내고, 퉁명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사내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만큼의 여유가 있다. 자신은 항상 뭔가를 배운다고 하면서 화자에게 대성당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요청했다. 화자는 맹인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불편했지만, 대마초로 인한 일시적인 변덕에 수긍한다. 그는 서툴고 상투적인 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대성당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이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자 대성당의 의미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러자 로버트가 그에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화자는 로버트에게 배운 대로 대성당을 전달하고서 그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에 잠긴다. 그러고선 이렇게 말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p. 311) 나는 이 대목에서 대사를 마지막 문장으로 배치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두 문장의 순서를 바꾸면 더 극적이고 완성된 인상을 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아마 로버트의 이름을 묻지 않았을까. '대성당'의 이야기는 그의 감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로버트의 진정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카버가 다루는 삶에는 책을 덮어도 계속될 것 같은 생동감이 있다. ‘대성당’의 화자는 내 삶에 없던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 그의 관대함과 호의, 그리고 대마초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생일대의 경험을 했다. 그리고 화자의 특별한 경험은 카버의 문체 덕분에 곧 나의 경험이 되었다. 그렇다면 '대성당'을 읽은 이후의 나도 조금이나마 변화하지 않았을까. 만약 카버가 다채로운 문장으로 '대성당'을 표현했다면, 혹은 셰익스피어를 뛰어넘는 작가가 화려하게 묘사하려 했다면 지금의 '대성당'이 부여하는 감각은 퇴색했을 것이다. <대성당>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영역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직접 읽어야만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영화나 만화 등 다른 매체가 주기 어려운 감각을 선물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