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영화에는 소위 '아티스트'라 불릴 만한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워크숍 강사인 우카이와 소설가 코즈에가 그들인데 영화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보여주며 극중 인물들이 그 퍼포먼스에 보이는 다각적인 리액션들에도 집중하려 한다. 나는 그 두 명의 아티스트와 그들의 퍼포먼스가 극중 인물들을 대하는 이 영화의 태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 우카이는 상대방과 마주하여 조금씩 움직여 가며 서로간의 '중심'을 찾도록 유도하며 이를 점점 다수에게로 늘려가도록 한다. 수많은 대화들로 구성된 이 영화가 계속해서 구도를 바꾸어 가며 숏과 역숏을 이어붙이다 이따금 특정 인물의 가장 내밀한 속내가 드러날 때 그 맞은편의 인물을 대신해 그 특정 인물과 눈을 맞추기까지의 과정은 그러한 우카이의 퍼포먼스를 닮아 있다. 한 편, 코즈에는 자신의 소설이 1인칭 화자를 취하는 순간에도 그 화자가 곧 작가라고 할 순 없으며 작가는 그 극중 어느 인물에라도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렇게 특정 인물과 눈을 맞추기 위해 그 어떤 인물의 시선도 대신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시선을 빌린 그 인물과조차도 동일해질 수는 없는 카메라의 입장과 비슷하다. . 우카이의 퍼포먼스에서 참여자들은 우선 자신의 중심을 찾고, 마주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중심을 찾아야 한다. 일대일 관계 하에서 중심을 잡더라도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순간, 혹은 사람 수가 늘어나는 순간, 그 중심을 잃게 되곤 한다. 극중 인물들은 그 퍼포먼스에서처럼 자신의 중심을 찾듯 비로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여러 인물들 간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에 대한 솔직함마저 종종 황망해지는가 하면 서로가 서로의 진심에 귀기울이며 서로에게 진심으로 의지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카이는 이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보고 부러 그들의 속내를 까뒤집어 어떤 파국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상 그 역시 동생으로부터 속이 텅 빈 인간이란 말을 듣는, 제 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없는 또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하다. 코즈에 역시도 자신이 화자로 삼은 극중 인물이 가지는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꽤 확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글은 낭독회의 청자로부터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무언갈 깨달은 듯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입밖에 내게 된다. . 극중 인물들과 눈을 맞춰가며 그들의 속내를 가차없이 까보일 수 있을 듯하던, 그들의 감정의 곡절들에 정통할 것만 같던 이 카메라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부턴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 눈을 맞추어도, 혹은 누군가의 시선을 대신하더라도 카메라는 그들이 될 수 없다. 쥰이 어디로 갔는지 카메라도 결국엔 알 수 없다. 사쿠라코와 요시히코의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카메라도 결국엔 알 수 없다. 타쿠야에게 닥친 어떤 우연과 그 뒤의 가능성에 대해선 카메라도 후미만큼이나 무지하다. 아카리가 느낀 해방감의 순간에도, 그가 후배 간호사에게 위로를 느낀 순간에도 카메라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끝내 카메라에게 허락되는 영역은 아카리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딱 그만큼의 자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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