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코끼리

산시로
平均 3.8
중학생시절 배운 독서상우라는 사자성어를 제법 좋아하여 요즘도 책을 읽을때에 느끼는 고양감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사용하고는 한다. 산시로를 읽으면서는 작가 소세키 그리고 역자 송태욱이란 사람과 동시에 벗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100년도 더 지난 소설을 읽음에 있어 시간의 간극을 매워주는 각주가 정말 섬세했다. 궁금한 것이 생겨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도 책을 읽음에 있어서의 흐름을 방해하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각주 역시 독서의 흐름을 해친다. 그런 면에서 절제되었음에도 모자람이 없는 산시로의 각주는 소세키와 우리가 벗이 되어 산시로와 그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근대라는 시대를 만나는 과정에 대단히 적절한 도움이 된다. 각주 덕분에 이번 도쿄여행에 다양한 방문을 해보며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들을 실제로 마주해볼 수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동상은 책 속 화가의 언급처럼 차라리 게이샤를 본딴 동상이였으면 보다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야쿠타가와 전시에서 마주한 아사히 츄의 작품도 더욱 즐겁게 볼 수 있었다.(극중 산시로는 아사히 츄의 유작을 보러 가지만 소설속 이름은 아사히 츄가 아니며 각주에 아사히 츄라고 명시됨) 도교대학 안에 있는 산시로 연못은 실제로 보니 정말 좋았다. 얼마전 방문한 다카마쓰 리쓰린 공원의 연못들 처럼 막대한 돈을 들여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에도시절 충분한 돈을 들여 이루어낸 ‘인위성을 곁들인 심미적 자연’은 언제나 보고 있으면 공간을 향한 소유욕이 자극받는다. 책의 묘사대로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고 돌다리도 있었다. 그런데 가운데 섬 위의 모습은 책의 묘사와 제법 차이가 있었다. 잼있었던 것은 산시로 산방에서 만화판 산시로를 발견하여 살펴보니 만화판의 그림속 섬은 소설의 묘사가 아닌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산시로가 가만히 연못의 표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커다란 나무 여러 그루가 물속에 비치고 그 밑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때 산시로는 전차보다, 도쿄보다, 일본보다 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연못의 표면 위로 비추는 나무와 그 아래의 푸른 하늘은 보고 있으니 21세기에 태어난 나역시 아득함을 느꼈다. 20세기의 산시로 그리고 지금의 나 어느쪽의 아득함이 클지 고민하며 아득함의 까닭을 찾으려 고민했지만 시대를 구분점으로 크고 작음을 비교할 만큼 쉽사리 단순해지지는 않았다. 또 연못의 나무 너머로 보이는 건물에 관한 노노미야의 호평을 듣고 나서는 마치 자신도 처음부터 그 건물이 건축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는 산시로가 비평을 읽을 때의 내 모습과 무척 닮은 것이 부끄럽기도 잼있기도 하여 무척이나 기억에 남아 해당 건물이 무엇일까 역시 고민해 봤지만 100년이 넘은 건물따위 허물어졌을 것 같아 금새 그만두었다. 연못의 형상은 마음 심자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책에는 묘사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다시 역자님으로 돌아와 산시로를 읽기전 히로시마에 여행갔을때는 어느 바에서 바텐더와 대화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 7시간이 넘도록 바에서 술을 마셨다. 문학이야기도 했는데 나는 소세키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러다가 내가 책을 한 권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리니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라는 책을 종이에 적어주셨다. 나는 바로 예스24에 책의 이름을 검색하고 번역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 빠져 있는 소세키의 전집을 번역하신 역자님이고 이분의 번역작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산시로를 읽기전에도 여러모로 감사했지만 산시로를 읽을 때에는 보다더 감사했다. 어디선가 영화 데드풀을 번역한 담당자가 데드풀의 네이버 베스트 댓글이 역자에 관한 칭찬인 것을 보고 무척이나 기쁜마음이 되었다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이책의 역자 송태욱님도 어쩌다 이 글을 보고 하루에 행복을 더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굳이굳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