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Love in the Big City (英題)
平均 3.7
미애와 영이가 서로의 이상한 연애를 한심하게 여기는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다. 서로를 놀리는 순간이 끝나는 즉시 이해의 순간에, 의심할 필요도 없는 응원의 순간에 도달하는 풍경이 이렇게까지 울 일인가. 5년 전 소설을 읽을 때는 다른 장면에서 울컥했던 것 같은데. 쟤들은 왜 저렇게 연애를 주구장창 하나, 우리는 다들 어떤 공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나, 조금 더 잘 알게 된 지금 나는 저 우정이 새로이 애틋하다. 사랑을 꿈꾸지 않고선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찾은 게 기적이다. 이런 게 운명이다 우리가 만난 게, 천둥벌거숭이들아. 누군가 이상한 연애를 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잃었고. 이상한 연애가 끝나면 서로를 배로 되찾았다. 결론적으로 서로를 점점 더 많이 갖게 되던 그런 시절. 요즘은 내 친구들이 이상한 연애를 안 한다. 그 사실을 남몰래 아쉬워한다. 우리는 헛헛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어른들이 되었고, 웬만큼 심란할 땐 사람 말고 다른 걸로 채울 줄 안다. 대견하게. 그런데 미애와 영이를 보면서는 그런 능력을 좀 잃고 싶어진다. 품위를 지키는 비법들을 잊고 싶어진다. 어쩔 수 없이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고 뻔뻔하게 위로까지 받고 싶어진다. 마음을 주는 건 잘못이 아닌데. 자꾸만 탓했다. 응답받지 못할 마음을 주고 서러워한 내 멍청함을. 나를 탓하기가 싫어진 후엔 그의 외로움을 탓했다. 그에겐 내가 채워주지 못할 특정 외로움이 있었을 거라고. 너무 복잡하고 독특한 모양인 그 외로움을 채워줄 방법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테니. 내가 추방당한 건 공정하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희망을 품었던 시간은, 바보 같은 그런 시간은 잊으면 그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그 바보 같은 시간도 소중해졌다. 거짓에 기반한 희망도 그 자체로 진실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그것이 낳은 열정과 선의는 순수했다고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자존심을 다 버리고 그날 밤 거기에 서 있던 마음은 불경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내가 그럴 수 있도록 진실에 씌워진 악의적인 장막에 지금은 감사하다. 그런 기억이 왜 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몇 번 자고 즐거운 대화를 몇 번 나눈 걸로, 밤새 그 길을 걷고 싶다고 함께 호들갑 떨었던 걸로 너를 0순위에 두었던 일도 뒤늦게 뿌듯하다.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시치미 떼던 네 모습에 비참했던 시간도 이젠 소중하다. 이렇게 된 게 어이가 없어서 꼭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쓸데없는 얘기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밤에 잠이 안 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영이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어이없는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을까. 영아, 언제나 지금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쓰면서 지내길. *<도시남녀의 사랑법>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는 거 방금 알게 되었는데, 저 제목에 반기를 들지 않은 모든 이들이 부끄럽길 바란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후보에 오른 소설집이다. 수상까지 이어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해서 한국 문학 중에 딱 다섯 작품만이 가닿은 성취다. 작가와 문학 독자들, 문학 업계 전반을 개무시하지 않고선 저딴 제목을 구상할 수 없다. 도시남녀가 뭐냐;; 젠더 이분법 오진 걸 떠나서 그냥 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