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천수경

천수경

9 month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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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END

映画 ・ 2024

平均 3.8

내 삶의 테두리가 손에 닿을 것 같던 시절. 어느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서 우는데 딱 그 화장실만큼이 내 삶의 크기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은 어른이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있었다. 음악을 목발 삼고 친구를 뗏목 삼아서 시간을 견디고 나면 지구상에 내가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은 없었다. 다만 그런 일은 이어폰과 우정의 안위에 크게 휘둘렸다. 둘 중 하나라도 무사하지 못하면 그만큼 내 미래가 작아졌다. 미래가 쪼그라들면 현재는 아예 사라졌다. 그래서 소중한 이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모든 걸음을 위협으로 느꼈다. 그들의 걸음을 잡아당긴 먼 세계의 중력이 실은 나랑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걸 알았더라면 나에게도 그 중력이 작용했을텐데. 몰라도 되어서 몰랐다. 내 무지를 탓하는 대신 그 모든 걸음의 가벼움을 탓했다. 나 혼자 의리를 지키는 추억들의 허약한 인력을. 솔직하기가 어려워서 쌓이는 침묵의 척력을. 애꿎은 것들을 탓하고 나면 새로운 뗏목을 찾을 준비가 되었다. 이전에 항해한 곳들에 미련을 잔뜩 안은 채로. 그래서 유타의 장난기 어린 손동작 직후에 영화가 잠시 멈추는 게 나는 그렇게 아프다. 그 정지가 영원하길 애타게 바라는 내 소망 때문에 아프다. 영화는 미안하단 말도 없이 그 정지를 푼다. 기어이 두 사람의 시간이 각자 흐르도록 내버려둔다. 얄미운 것. 정치적인 주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코우도, 정치적인 주체가 굳이 될 필요 없었던 유타도 내 안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슬픔이 누적된 곳에서 특별히 더 정치적이니까. 페미니즘 때문에 멀어진 친구는 내게 유타였고, 인신공격을 못 견디고 나를 떠난 애인은 코우였다. 인간들이 각자 겪는 가난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서 나는 코우랑도 유타랑도 헤어져야 했다. 자꾸 내가 뭘 몰랐다고 하는데. 그땐 어떻게 알았겠나. 코우가 어떻게 유타에게 말할 수 있었겠나. 엄마가 식당 문에 쓰인 혐오 낙서를 지우는 모습이 어때 보였는지. 그 순간 그 낙서보다도 그걸 지우는 엄마가 더 미웠을지도 모를 마음에 관해 얘기할 방법이 있었겠나. 유타는 어떻게 말할 수가 있었겠나. 네가 당연시하는 사랑이 내겐 주어지지 않았으니 네가 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수많은 이들을 신경 쓰는 중대한 일보다도 나를 생각해달라는 유치한 요청을. 차마 꺼내보일 수가 없는 마음들은 두 사람 사이 땅을 깎아서 협곡이 되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비가 충분히 내려 그 틈이 물로 메꾸어졌을까. 이따금 헤엄이라도 쳐서 건널 수 있게.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던데. 영화는 알고 있다. 이 우정이 어떻게든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유타와 코우에게 차갑고 관객에겐 따뜻하다. 우리가 극장을 나선 후에 누구에게든 전화할 자유가 있다는 걸 영화가 알아서. 어쩌면 관객을 질투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언제든 더 할 수 있으니까. 승부가 안 날 정도로 같은 걸 내는 사이가 또다시 가능한지 확인해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