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경민

경민

4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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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Contract: Paju, Book, City(英題)

映画 ・ 2020

平均 3.1

평생을 콸라룸푸르 상하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요즘 연수 때문에 일산에 머무르며 처음으로 ‘근교’에서 살아보는 덕분에 서울과 그와 구분되는 공간으로서의 수도권의 관계라든지 널찍한 도로와 공원으로 가득한 계획도시가 거주민의 생활리듬이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연스레 근처의 파주출판도시라는 공간에도 관심이 생겨 보고 옴. 당연히 top-down 으로 만들어졌을거라 생각했는데 bottom-up으로 만들어진 도시(엄밀히는 산업단지)였다는게 굉장히 의외였음. ‘위대한 계약’과 ‘선한 계약’의 내용이 법률 업무 종사자의 시선에서는 아주 재밌었음 ㅋㅋㅋ 계약서라는 것이 애초에 향후 분쟁이 생길 것을 대비해 서로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문서화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문서인데, 그런 문서의 본질적 기능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다니, 이 과정 자체가 놀라운 퍼포먼스다. 선언문에 가까운게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선언문이었음. 90-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거대한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말 많았을텐데 자료화면에 지나가는 숱한 사람들 중 여성은 어찌나 적던지.. 출판도시 2단계가 이루어지던 2010년대에도 여성 비율은 별반 다를게 없었고, 이 영화에도 이름을 달고 등장한 주요 여성 인터뷰이는 사계절 출판사 대표밖에 없더라. 저런 짜릿하고 역동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남성 출판인들 건축가들 공무원들 보면서 아 그 시절 남자로 태어난게 내가 다 부럽고, 이런 걸 관찰해내는 것도 내가 여자라서 그렇겠지. 이런 현상이 보이지도 볼 필요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거 어떤 기분일까? 사람들이 점점 책보다는 영상을 보는 방식으로 정보 소비 패턴이 바뀌며 출판업이 쇠퇴해가고 있는데, 파주출판도시에게 통일이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흥미로웠음. 통일이 될 경우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 지역에 위치해있는 도시공간이자, 아파트촌이 아니라 출판, 영화, 예술활동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 통일이 되면 서로 달라진 언어 사고 등을 부딪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에서 활자와 영상이 큰 역할을 할텐데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출판과 영화업이 모인 파주출판도시가 해나갈 역할이 클거라는 점. 내수시장이 2배로 커지는거 아니냐는 어느 출판사 사장의 말이 재밌었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제 반대 투쟁을 10년간 하고 있을 때 출판인들은 파주출판도시 건설의 1단계 작업을 했다, 투쟁을 마치고 나니 우리는 아무런 공간적 성취를 이루지 못했는데 출판도시 1단계 작업을 봤을 때의 충격이 컸다는 이은(명필름센터 공동대표)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음. 사실 지리적으로 모여서 작업해야 할 산업적 특수성을 출판업이 얼마나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조금 의문스럽기는 하다. 영화야말로 특수효과, 분장, 편집, 세트 등 제작환경이 공간적으로 맞붙어 있어야 할 필요성이 큰 산업 아닌지. 어쨌든 그렇게 파주출판도시는 처음에는 출판인들의 계획된 산업단지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영화인들이 모여들었고,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 합정 망원에서 밀려난 예술인들이 부동산 가격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홍대에서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공간을 찾아 파주로 왔고, 이런 공간에 매력을 느껴 출판도시의 주민이 된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며 파주출판도시는 점차 자생적인 도시로 변모하는 중이다. 영화 내내 공동성(communality)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무엇을 위한’이 부재하다고 느껴져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남아있었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반드시 같은 방향성이나 가치를 공유하지는 않더라도 곁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걸 알기에 그들의 공동성에 대한 신념이 이해가 됐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불이 켜질 때, 이 영화를 통해 이 영화를 본 관객들과 내가 파주출판도시에 대해 어떤 이해를 공유하고 있음을, 적어도 이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조만간 파주출판도시를 직접 방문하고 다른 눈으로 공간을 바라보겠구나 라고 인식하게 된 순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