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어둠의 전설

어둠의 전설

1 year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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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本 ・ 2005

平均 3.9

그 성당의 높은 첨탑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은 왜 이리도 멀고도 험난한가?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은 15세기를 배경으로 한 19세기 소설이다. 이 책을 보면서 당시나 지금이나 15세기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위고라는 소설가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이며 특히 코미디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줬다. 이 책은 비극적 전개로 이어지지만.. 그 사이에 펼쳐지는 수많은 풍자와 개그가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진 작품이란 점에서 추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라고 감히 평가하는 바이다. 위고는 15세기의 노트르담 성당을 매우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파리를 구성하는 건축의 대부분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지도를 묘사하는데 한 챕터나 할애하는 악명 높은 구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시대배경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는듯 하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정반대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프레임?의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지옥도를 묘사하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역시 마녀사냥일 것이다. 익히 알고있듯 마녀사냥이란 건 피해자가 되는 존재가 정말로 마녀인지 여부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신 사람들이 그를 마녀라고 믿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하다. 즉 대중이 지니고 있는 신념이나 이야기 및 프레임의 형태에 맞춰 그 대상을 소비시켜버리는 것이다. 이 설정은 극 중의 여러 인물끼리 얽힌 부분에서 매우 중요하며.. 크고 작은 동시에 긍정적, 부정적 형태로의 마녀사냥을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적어보자면.. 에스메랄다는 부주교의 사랑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그녀는 왜 자신이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궁지로 몰아세우는지 그 원리?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애초에 관심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한때의 성적 대상으로 소비할 생각은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루수녀 역시 자신이 겪고 있는 저주에 대해선 고통스러워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자신의 딸을 보고도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대상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 스스로에게 놓인 프레임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카지모도나 클로드 프롤로 역시 에스메랄다가 자신을 구원해줄 대상이라고 해석하면서 이 비극은 겉잡을 수 없게 된다. 또한 그랭구아르의 연극을 보고싶어했던 대중이 그 흥미를 얼굴 찌푸리기 대회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며 이런 프레임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이 모든 크고 작은 프레임들이 멋대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희생당하는 사람과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일종의 메타인지의 부족.. 자각의 부족인 동시에 그 프레임을 탄생시킨 존재에 대한 추적의 부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저지르고도 유유히 도망다닐 수 있는 지식인의 지적폭력이야 말로 그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인 동시에 위고가 살아가는 시대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누가 그 구조를 만들고 사용함며 이득을 취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시대. 대신 그 구조 속에서 놀아나는 시대야 말로 비극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위고는 당시대의 건축물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시대에 대한 향수적 프레임을 의심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한 손에는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선 지옥도를 그리는 대조를 보임으로서 그 스스로가 그런 저주 속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비틀었다는 측면에서 봐도 이 소설은 위대하다. 잘생긴 왕자가 공주를 구한다는 전설에 비춰봐도 이 소설은 그 전형성을 보기좋게 비틀어 버린다. 에스메랄다는 공주가 아니고 이집트인으로 인식되며 그녀를 구한 카지모도는 너무나도 못생긴 추남이다. 맥락적으로는 공주를 구한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이어지는 게 정상적이겠지만 장르를 비틀어버린 탓에 납치된 것처럼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기사의 역할을 할 페뷔스는 정작 칼을 맞고 죽을 뻔하거나 사건에서 굳이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또 이 모든 과정을 지원하거나 구원해줄 주교(성직자)의 역할은 정작 보조적 역할을 거부하고 주요 역할을 독차지하며 사건의 참상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뭐가 됐던 이 모든 것들을 전개시키는 방식이 매우 풍자적이고 조롱적스러운 구석이 강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장르'라고 하는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비쭉배쭉한 태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