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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의 채식주의자
平均 3.7
2024年07月27日に見ました。
#2024년 35번째 책 *24% 미국에서 소수민족이 되니 한국 민족주의의 이면이 보였고,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도 하나둘 불식되어갔다. 내가 '한국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정체성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 울타리를 확장하는 일은 결국 공감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었다. 내가 미국 흑인이나 동성애자나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과 배재를 들여다봄으로써 나와 그들이 결국 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진리를 상기했다. 인류라는 집단, 인간이라는 정체성 말고 나머지는 디테일일 뿐이다. 그러한 디테일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지 말고 다양성을 예찬하면 되었다. *25% 다트머스맨을 까는 다트머스맨이 곧 나였다. '한남'이길 부정하는 한국인 남성이 나였다. 자아를 성찰하고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내가 가진 특권을 인정하고 비판하는 일이었다. 특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수록 나는 자가당착과 자기부정의 늪에 빠졌다. *33% 페인은 내게 자유와 해방의 관계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자유는 무한한 게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만큼만 허용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부자유와 고통에 대해서는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페인은 영국인이었지만, 미국과 프랑스 인민의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백인이었지만 흑인 노예 해방을 주장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지만, 페인이 본인의 자유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나의 자유가 소중하다면 타자의 자유도 소중하고, 그렇다면 그들의 해방도 중요하다. 특히 동물해방의 문제가 무거웠다. 여성해방운동, 게이해방운동, 장애해방운동 등 소수자 인권운동은 그래도 당사자들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비인간 동물은 그러지 못한다. 농장과 동물원과 실험실에 갇힌 동물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자유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두가 해방되지 못한 세상에서 나만 자유롭다면, 그 자유란 정당한가? *53% 민족해방, 민중해방, 노동해방을 위한 풀무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밀레니얼세대는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 여성해방, 성소수자해방, 동물해방을 외친다. 과거에는 모든 압제의 주체이자 투쟁의 대상이 독재정권으로 환원되었다면, 지금은 가부장제부터 공장식 축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담론은 분산되었고, 정체성은 세분화되었다. (…)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바꿀 것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