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김믿음

김믿음

9 years ago

5.0


content

殺人の追憶

映画 ・ 2003

平均 4.1

2016年12月04日に見ました。

시대를 담아낸 영화의 추억, 5공화국부터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정의를 표방하는 경찰들이 룸살롱에서 살인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수사철학으로 싸우는 모습은 misogyny가 판 치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은 성폭력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이면서도 성 권력을 통해 여성을 취하는 남성 권력, 폭력의 주체인 것이다. 뤼스 이리가레는 성매매와 성폭력(더 나아가 이성애가)이 동일선상에 놓여있음을 지적하며 남성에의 여성에 대한 착취 구조를 고발한다. 이에 따르면 경찰들의 성매매 행위와 범죄자의 성폭력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동질성을 가능케 하는, 젠더 갈등 구조는 다시금 범죄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게 하는 기제로 역할한다. 결국엔 영화 속, 그리고 현실의 성범죄는 사실, 그 범죄자의 '추억'일 뿐만 아니라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우리 모두의 '추억'인 것이다. 처음엔 직관의 송강호와 대비되던 과학 수사의 김상경은 해결되지 않는 사건에 부딪쳐, 그토록 그가 믿던 '문서'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무고한 이를 향하는 총탄은 김뢰하의 구둣발과 닮아 있었다. 김상경의 과학은 절박함에 직관적 오류와 다를게 없어졌다. 이는 그 당시의 무기력함과 한계에 봉착한 인물과 사회의 답답함을 나타낸다. 답 없는 수사와 나오지 않는 범인에 대한 불안, 지속된 피로가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5공화국의 구둣발 또한 당시 '살인의 추억'의 일부란 것은 봉준호 감독이 고발하는 것이 단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임을 보여준다. 영장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하여 영화 속에서 짓밟힌 헌법적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심지어 화성 연쇄 살인마 또한 가지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살인 사건 앞에서 정의의 사제가 권총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는 것은 '연쇄' 살인이 아니던가?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무분별한 폭력이 '정의'였던가? 송강호가 결국 잘 모르겠다며(범인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밥은 먹고다니냐 묻는 것, 그리고 범인이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아이의 말은 사실 범인을 특정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범인犯人이 범인凡人이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살인의 추억은 살인범만이 만드는 게 아니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을 죽여 왔고, 광주 시민 학살부터 용산 참사와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속 <살인의 추억>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 <괴물>에서 자신들만 살고자 컨테이너에 들어갔던 이들은 모두 죽어나갔던 것처럼, <살인의 추억>의 사람을 향하던 구둣발 또한 잘려나갔다. 악에 따르는 응보가 이 영화가 추억일 당신에게도 주어졌으면 한다. +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구급으로 보아도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끝내준다. 개봉한 지 13년이나 지났음에도 전혀 뒤치지 않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