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정환

정환

2 years ago

5.0


content

キラーズ・オブ・ザ・フラワームーン

映画 ・ 2023

平均 3.9

영화와 관객은 과거의 비극으로부터 무심하다. 내내 들끓어놓고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무섭게 다뤄놓고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서늘하리만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과거의 비극을 유흥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피로 물든 부끄러운 역사와 이를 유희하는 현 세대를 향한 자조적 조롱(그리고 사과). . .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연출 감각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말도 안 된다. 본인의 가장 최신작이 어떻게 이렇게 고전적이면서, 가장 세련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색채를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이 문장이 성립하게 된 걸까. 3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속에서 그간 스콜세지 영화에서 잘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몇몇의 이미지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상한 눈썰미를 지닌 건지, (물론 엔딩을 제외하자면) 처음 몰리의 집에 방문했을 때 책상에 널브러진 퍼즐들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단언하건대 이 퍼즐엔 어떤 숨겨진 의도조차 없겠지만. 퍼즐이 가장 먼저 생각난 김에 첫 문단으로 적어본다. 모든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액자를 완성하는 영화라고 표현해 보자. 그 그림은 과연 누가 늑대인지를 찾아보는 그림일 것이다. 퍼즐은 테두리부터 맞춰져있다. 이제 조금 바꿔서 표현하자면, 퍼즐은 비극을 다룬다. 흩어져있던 사건과 피의 살점들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그때의 비극을 프레임 안으로 박제한다. 영화의 프레임은 스크린이 될 것이다. 이제 와서는 겨우 우리들의 유희거리가 되어버린 모든 과거의 비극들을 다루는 소비는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에 끊을 수도 없다. 마치 더 먹으면 안 될 것을 이미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설탕처럼. 비극을 유흥으로 소비하는 동안, 관객과 비극과의 심리적 거리는 스크린과 무대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안심하며 감상한다. 매체와 관객이 비극을 다루는 그 자리에서 이 영화는 특히 “무심함”을 조명한다. 영화는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 세대의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심문한다. 어떤 피를 바쳐 이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는가. 영화는 폭력을 무심하게 다룬다. 술집에서 술을 주문하고, 술잔을 건네받는 것 정도의 무심함. 역겨울 정도로 끔찍한 일들을 수행하는 이와, 이를 명령하는 사람이나, 그에 희생당하는 사람에게 너무도 무심하다. 조사는 없었다.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거대한 태풍 앞에서 고요히 숨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분노도, 복수도, 포용과 용서마저도 무심하고 고요하다. 총소리는 내내 울리는 북소리와도 비슷했고, 죽음엔 비명조차 없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벌레 소리만큼 다루겠다는 영화의 고집이다. 털사(tulsa)인종 학살(이를 다루는 방식도 무심한 조롱과도 같이 느껴진다.)과 KKK의 언급들은 영화가 다루는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이 폭력으로 일궈냈던 이 커다란 땅의 근본 중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영화가 마지막까지 무심하게 그려내는 것 역시 우리(현 시대, 혹은 관객)의 무심함 그 자체였다. 무심함은 무책임함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다 함께 분노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그 비극의 자리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카메라나, 스크린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관객의 거리에 있어서 무심함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슬픈 것도 한순간이면 되지 않느냐. 분노하는 것도 한 장면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내 들끓어놓고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무섭게 다뤄놓고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서늘하리만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부와 권력을 위해 끊을 수 없는 과욕과 결국은 소비할 수밖에 없는 우리 세대의 매체로 인해 누가 과연 스스로 당뇨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로 좁힐 수 없는 이 거리를 거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의식(인식)이라도 하라며 끝이 난다. 영화는 역사의 실패를 인정한다. 그리고 영화의 실패(한계) 역시 인정한다. 영화 스스로가 모든 백인 남성과 영화를 대표하여 사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어떠한 교훈 대신, 피로 물든 부끄러운 역사와 이를 유희하는 현 세대를 향한 조롱인 셈이다. 영화를 찍고 있는 본인이나, 이를 보고 있을 우리에게 말이다. 영화와 관객의 한계를 영화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며 그렇게 영화의 커다란 퍼즐이 완성되었다. 늑대는 그 그림, 프레임, 스크린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는 점에서 굉장한 영화였다. at Scotiabank Cinema Montreal IM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