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idaythe13th

Afternoons of Solitude (英題)
平均 3.8
피사체의 자리에 앉은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들. - - - - 이 '고독의 오후'라는 제목은 암실 속에서 대기하는 투우나, 낑낑거리며 옷을 입고 숨죽여 기도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투우사 모두에게 해당되는 제목일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는 결국 높은 객석 위의 구경꾼들은 투우와 투우사 모두를 스펙타클로 삼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스펙타클을 관객에게는 쥐어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투우사의 자리에 앉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투우의 자리에 앉힌다. 경기 장면을 보여줄 때 카메라는 위쪽 객석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나 경기장 바닥에 붙어있다. 투우와 투우사 둘의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 장면에서 우리는 천을 휘두른다는 생각도 잠시, 어느 순간 휘둘리고 있으며, 검을 쥐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검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사망해 질질 끌려가는 투우의 모습 역시 내려다보지 않고 카메라와 수평적으로 제시한다. 경기 장면의 편집 역시 이게 몇번째 경기이며, 어떤 소와 경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짜여있다. 단지 경기가 끝나고 차에 탑승해서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정보가 전부이다. 때론 차량 내부를 찍는 카메라를 인물들의 뒷모습이 가려버리기도 하는데, 이 역시 카메라를 암실 속의 투우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중간중간 주인공이 왜 불이 꺼지지 않냐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다. 그 이유는 투우(카메라)와 투우사(안드레스)가 경기중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었을때, 즉 스포트라이트가 비출때, 투우사와 투우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천을 보면 달려드는 투우의 행위며,(물론 생리적 구조 때문이라 하더라도) 거센 소에는 더 거칠게 대응하는 투우사의 행위 역시 그 책임에 해당할 것이다. 고독의 오후의 반댓말을 정열의 오전이라고 한다면 영화는 그 양자를 번갈아 오가면서 흔한 스펙타클의 뒤를 비춘다. 그 흔한 희열도 연민도 아닌, 영화가 쥐어주는 감정은 결국 고됨이다.( 실제로 보고나서 진이 빠졌습니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듯이 세계 속에서 투우사와 소는 모두 투우의 위치다. 일반적으로 카메라(관객)는 우위를 점하며 스펙타클을 즐기는 입장일테니, 피사체는 모두 투우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카메라를 피사체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역으로 피사체를 온전히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이끌어낸다. 펜스 너머에서 구경해오던 관객들은 이제야 알 것이다. 정열의 오전을 위해 약속된 투우들의 고독의 오후는 이토록 잔혹하고 고되고 (역설적이지만)성스러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