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천수경

천수경

1 year ago

5.0


content

ANORA アノーラ

映画 ・ 2024

平均 3.7

나를 짠하게 보는 사람은 그렇게 싫더라. 그래서 이고르의 결백한 응시에 어떻게든 윽박지르는 아노라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어떤 수모를 감수했는지, 어떤 굴욕과 타협했는지 목격한 사람은 제발 좀 사라졌으면 했으니까. 내가 수치심이라는 걸 느낄 수 없어서 수치스럽다는 걸 부디 아무도 모르길. 큰 목표에 몰입한 덕에 작은 상처들은 아프지 않은 척하는 내 모습에 모두가 속아넘어가길. 그렇게 바라던 때가 있었는데. 연민의 눈빛을 가진 이의 품 안에서 무너졌어도 어쩌면 괜찮았을까. 한 번쯤 그래도 되는 거였을까. 이 영화 속 모두가 아주 그냥 개열심히 산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인간들이 동시에 악을 쓰는데, 들어보면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혼란스러워진다. 저마다의 논리에 깃든 역사가 순탄치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성역 없고 선 따위 당연히 없다. 야구 방망이로 사탕 가게를 엉망으로 만드는 게 빠른 길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성노동자들이 열일하는 장면도 보고 있으면 그저 그 숙련도와 노련함에 감탄하게 된다. 일터를 견디는 자들의 은밀한 뒷담화는 역시나 세상에서 제일 맛깔나고. 아노라가 봉을 잡아 ‘성공한 꽃뱀’이 되었을 때 축하해주는 동료들은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를 축하해주는 경쟁자들과 다를 바 없다. 질투 나지만 그녀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 뼈 빠지게 일한 걸 다들 아니까. 꽤나 개차반인 사람을 좋아한 적 있다. 내가 정말로 속하고 싶은 세계에 그 사람이 깊이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를 밀어냈을 때 그 세계 전체로부터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도.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세계에 뼈를 묻을 수 있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였는데. 덕분에 사람이 고작 다른 사람한테서 얼마나 큰 구원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지를 몸소 겪었다. 나는 불순한 의도로 그 사람을 좋아한 걸까. 좋아했다기보단 함께이고 싶었다. 그래서 좋아했다. 그가 하는 농담, 알고 있는 것들, 만나는 사람들 전부에 그 세계가 묻어 있었으니. 그의 토대나 소속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따로 떼어 좋아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은 다 그 사람이었다. 그를 잃고나서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가 아노라에게 “너랑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도 즐거울 것 같아,”라고 말할 때 감독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제발 아노라가 속으로 비웃지 않았길. 본인은 다른 마음이더라도 반야의 그 말만큼은 진심이라고 믿어주었길. 아노라, 당신이 잘 좀 살아보려 했다는 걸 압니다. 잘해보고 싶어서 기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당신에게 가용한 모든 자원을 활용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당신에게 가한 모욕에 저도 아픕니다. 사과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화가 납니다. 저는 겨우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을 엿보았지만, 이런 영화였기 때문에 당신이 앞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그렇게 울었으니 내일은 당차게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믿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지금쯤 당신이 회유되었을지, 여전히 회의적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울음소리를 숨죽여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이 세계가 조금 더 안전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삼백 명 가까이 있었는데, 놀랍도록 고요했거든요. . . . . . 다음 시는 이 영화와 친척 관계인 시입니다. 농담 한 송이 /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