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홍하상 · 歴史
256p
購入可能なサービス
評価する
2.5
平均評価
(3人)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철강, 조선, 자동차 산업. 산업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는 도약대 ‘시간 독립’과 국가표준. 그 시작은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36세 김재관이 건넨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박정희는 그를 잊지 않았고, KIST 유치과학자 1호로 그를 부른다. 그리고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다.

[9주년] 해피 젝시 데이!

젝시믹스 9주년 기념 ~80% 빅 세일

젝시믹스 · AD

[9주년] 해피 젝시 데이!

젝시믹스 9주년 기념 ~80% 빅 세일

젝시믹스 · AD

著者/訳者

目次

한국경제 ‘기적의 역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제1장_ 철에서 미래를 발견하다: 6·25전쟁과 독일 유학 준비 대학 첫해에 찾아온 전쟁 / 부산 전시연합대학 / 미군 통역하다 특수강에 눈떠 / 다시 서울로 / 산업은행과 독일 유학 시험 동시 합격 / “산업은행 월급 받으며 유학 가라” 제2장_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 독일 유학과 박정희와의 첫 만남 DAAD 장학 프로그램 / 독일의 철강산업 / 뮌헨 공대 / 세계적인 석학을 놀라게 한 박사학위 논문 / 뮌헨에서의 만남 그리고 결혼 / 퇴수회와 재독한인회의 탄생 /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 무산된 종합제철소 프로젝트 / 박정희 대통령 독일 방문 / 종합제철소 기획안을 대통령 손에 제3장_ 홍릉의 과학자들: KIST 유치과학자 1호 최형섭의 안목 /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연구소 설립 / 11년 만의 귀국 / 대통령의 KIST 챙기기 / KIST 건물을 세우다 /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모델 제4장_ 꿈이 현실이 되다: ‘한강의 기적’의 첫 단추, 포항제철 설립 세계가 비웃은 한국의 종합제철소 구상 / “우리 힘으로 종합제철소를” / 미래를 내다본 103만 톤 수요 예측 / 대일청구권자금 협상 최일선에서 / 일본을 한 수 가르치다 / 기본설계 변경 없이 연산 10배로 제5장_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다: <한국 기계공업 육성방안>과 >중공업 발전의 기반> 안보 위협 속 중공업화 박차 / 4대 핵심공장 / 무(無)에서 유(有)를: 조선소 프로젝트 / 국방산업의 기틀을 만들다 제6장_ 100년을 내다본 자동차산업 구상: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 산파역 최초 중공업차관보 / 국산 자동차산업 구상 / “자전거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 자동차 기술 독립을 외치다 / ‘자동차 차관보’ / 국민차 포니 제7장_ 선진국 진입의 기반, 국가표준: 한국표준연구소와 국가표준 헌법 표준의 중요성 / 존슨 대통령의 선물 /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 / 산업화 넘어 선진화로 / 대한민국 시간 독립 /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방문 / 세계 최초로 헌법에 국가표준 명문화 8장_ 죽는 날까지 나라 사랑: 대한국인 김재관 교단으로 / 국가표준 정착을 위해 / 묄렌도르프와 노르베르트 베버의 재발견 / 그 는 세상을 떴으나, 우리와 함께 있다 우정 김재관 박사 약력 참고문헌 쓰고 나서 추모와 추천의 글_ 이상희·채영복·정낙삼·김명자·신성철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대한민국, 왜 남들은 따라 하지 못했을까? 50년 전 ‘한강의 기적’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낡아버린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적’은 왜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 둘밖에 없을까? 좀 더 파고들어 가 보자. 50년 전, 수입 대체 경공업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나라가 단숨에 수출 대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능케 한 핵심 하드웨어 두 가지는 단연 경부고속도로와, 철강·조선·기계·정유로 대표되는 중화학공업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세계 최빈국 한국보다 사정이 조금 나았던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왜 인프라와 중화학공업을 건설해 한국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에는 그들에게 없는 근면한 국민성이 있었다, 사심 없는 최고지도자의 혜안과 추진력이 있었다, 기업보국에 몸 바친 우수한 기업인들이 있었다…. 그래도 속 시원히 맞춰지지 않는 마지막 퍼즐 조각 한 개를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은 내놓는다. “그들에겐 없는 ‘과학기술자’가 대한민국에는 있었다.”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은 1950년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고 현지 철강회사에 근무하다 1967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 포항제철·현대조선·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철강·중기 산업 육성의 밑그림을 그린 한 명의 과학기술자의 평전이자, 한국 산업화의 역사에서 부당하게 소외된 과학기술자들의 능력과 헌신을 재조명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와 선진화의 설계자 김재관 주인공 김재관(1933~2017)은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6·25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난, 학업을 계속하며 미군 부대 통역을 맡다가 특수강에 눈을 떴다. 졸업 후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했다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뮌헨 공과대학에 유학, 금속재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데마크(DEMAG) 철강 종합기획실에서 근무하며 혼자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여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창립 때 해외 유치과학자 1호로 참여, 제1연구부장과 특수기재연구실장, 이후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을 거치며 포항제철 설립을 비롯해 기계·조선·자동차 등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와 방위산업 육성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산업화를 넘어 선진화로 도약하기 위해 국가표준 제도가 절실함을 내다보고 한국표준연구소를 설립, 5년간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표준시 확립 등의 성과를 내고, 헌법에 ‘국가표준’을 명문화하는 데 기여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인천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고, 편역서 『묄렌도르프』를 통해 구한말 독일인 재정고문 묄렌도르프가 조선의 산업화에 기여한 면모를 재조명했다. 뮌헨의 박정희에게 건넨 보고서 제5대 대통령 취임 1년 후인 1964년 12월, 박정희는 독일(서독) 방문길에 오른다. ‘고속도로 구상’과 ‘차관(借款) 구걸’, ‘광부와 간호사의 눈물’로 익히 알려진 그 방문이다. 귀로에 오르기 전날 박정희가 뮌헨의 숙소에서 독일 유학생과 교민들에게 베푼 조찬에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 하나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던 유학생 일행이 일제히 김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유학생들은 김재관이 그동안 준비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독일 방문 중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유학생들과 교포들로부터 5·16혁명을 일으킨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고, 유학생들은 이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적어도 우리는 발전적인 의견이나 제안을 하자”고 합의를 했고, 이에 그동안 김재관이 준비한 종합제철 계획안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었다. 김재관은 초조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책자가 세 권 들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책자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넸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2.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 중 2년여 뒤 KIST가 발족하고 해외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던 과학자 18명을 ‘유치과학자’ 1호로 불러들일 때, 유일하게 비(非)미국유학파로 포함된 게 김재관이었다. 김재관은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일 청구권자금’ 협상의 전면에 나서 연산(年産) 103만 톤 규모의 제철소 설립안을 관철해 자금을 따내고, 그가 손수 설계하고 말뚝을 박아 구획한 포항제철(현 POSCO) 평면은 20년 동안 생산 규모가 5배로 증가할 때까지도 기본설계 변경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2021년 세밑에 51세 나이로 퇴역한 포스코 ‘고로(高爐) 1호’가 바로 김재관이 고집스레 설계한 103만 톤 그 용광로다. 산업화 넘어 선진화로, 그 이면의 과학자들 정주영의 ‘500원 지폐 거북선’ 전설의 바탕에도, 최초 고유모델 국민차 ‘포니(PONY)’의 배경에도 김재관이 있었다. 그는 KIST 부장·실장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으로 방위산업의 기틀을 닦은 김재관은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로서 현대의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 결단을 이끌어냈다. 신설된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초대 소장으로서 대한민국 ‘시간 독립’을 이뤄 냈다. 표준연 홈페이지(kriss.re.kr) 첫 화면인 그 ‘대한민국 표준시’다. 김재관의 마지막 숙원은 선진국다운 표준제도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이었다. 박정희의 예기치 않은 서거 후에도 표준연 소장으로서 ‘표준제도 조항의 헌법 명문화’를 추진하고, 정치적 격동기에 사인(私人)으로 돌아가서도 국회와 정당, 주무부서를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며 설득한 결과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제127 2항)라는 조항이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 이상희·채영복 전 과학기술부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정낙삼 표준연 1호 유치과학자, 신성철 전 KAIST 총장이 추모와 추천의 글들을 썼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기적 뒤에 가려진 김재관 박사 같은 과학기술자들의 업적과 헌신이 재조명되고 널리 알려질 계기가 되기 바란다”라고 입을 모은다. 김재관 박사 기념관 : http://zaequankim.org/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유튜브 게시물 :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NqjLjfW0tow

この作品が含まれたまとめ

1
  • 出典
  • サービス利用規約
  • プライバシーポリシー
  • 会社案内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