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정길화의 다큐멘털리티
<인간시대> <신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연출.기획한 MBC 정길화 PD가(현 기획조정실 정책협력부장) 방송인으로서 25년을 되돌아보는 《기록의 힘, 증언의 힘》을 펴냈다. 이 책에는 <인간시대>에서부터 <에네켄>으로 이어지는 그의 방송생활의 궤적과 낙수 그리고 PD연합회, 언론시민개혁연대, 한국방송학회 등 언론유관단체 활동의 진상과 체취가 온전히 담겨 있다.
정길화는 PD저널리즘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동안 언론이 ‘영원히 말할 수 없다’고 외면했던 주제들에 대해 정길화는 부끄럽지만 ‘이제는 말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정길화의 이러한 철학 위에 한국현대사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정길화는 “그 시대의 모순과 한계를 응시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후대에게 주어진 거역할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출발은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다. 그 토대는 말할 것도 없이 기록과 증언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은 아무래도 이 땅의 방송이, 그중에서도 공영방송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상파 독과점’ 논란에 대해서도 정길화는 일침을 가한다. 2장 ‘지상파 방송과 미디어 공공성’에서 정길화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부당한 폄하와 근거 없는 때리기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상파 ‘독존’ 시기는 존재했어도 악의적인 지상파 ‘독과점’ 시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지상파 방송의 공공서비스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정길화는 우려하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그의 고찰은 뉴미디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금 눈여겨봐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3장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다큐멘털리티’에서는 그의 다큐멘터리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길화는 “다큐멘터리는 시대정신이다. 다큐멘터리는 1차적으로 기록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토대로 현실을 성찰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그가 참여했던 <인간시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에서 실현되었다. 그는 경제가 어렵다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방송이 할 일은 경제의 좋고 나쁨을 떠나 시청자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람에 대한 투자 역시 ‘명품’을 만들어내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4장 ‘생활과 생각’에서는 정길화만의 속깊은 통찰을 맛볼 수 있다. 만났던 사람, 읽었던 책 그리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끄집어낸 정길화의 통찰은 읽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이러한 정길화만의 매력을 강준만은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길화의 한결같음을 보면서 그의 넉넉하고 온화한 얼굴을 떠올린다. 투사 같지 않은 얼굴과 언변, 이게 그의 한결같음을 지켜주는 동력이 아닐까? 결국엔 부드러움이 승리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는 늘 미소 띤 얼굴로 차분한 글쓰기를 하는 건 아닐까? ‘소통가’라는 말이 있던가? 요즘 워낙 ‘소통’이라는 말이 난무하니, 소통에 능한 사람을 ‘소통가’로 칭해도 좋으리라. 정길화는 소통가다. 합리적이다. 사려 깊다. 대화가 통한다. 나는 그가 갈등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방송계에서 소통가로 활약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