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추구의 꿈과 자기포기의 현실 사이의
냉엄한 빙벽을 넘으려는 이상주의적 인간의 몸짓
디지털 인터랙티브 소설을 표방하며 책으로도 출간된 《촐라체》가 화제다. 그 소설은 새로운 연재 형식 때문만이 아니라 이전에 상상치 못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할 이른바 인간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감상 때문에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촐라체》와 이번에 출간되는 《빙벽》은 자본주의 사회의 첨단에서 벗어난, 험준한 산이라는 무대에서 진정한 인간의 길을 밝힌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일본 대하소설의 거두라 불리는 이노우에 야스시가 그의 문학 세계의 뚜렷한 특질이기도한 서사성과 서정성을 모두 집약한 걸작 《빙벽》은 세속과 체면 같은 이유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사실만을 따르는 이상주의적 인간 우오즈가 겪게 되는 비극을 핍진하게 형상화하여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냉엄한 빙벽을 오르는 우오즈의 사투는 자기추구의 꿈과 그렇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인간이 처하는 혹독한 비극을 넘어서려는 몸짓으로, 불행과 소외를 넘어 자기와 만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고 있다.
아쿠타가와상, 신초일본문학대상 등
유수의 상을 휩쓴 거장 이노우에 야스시의 걸작
몇 세대에 걸쳐 최고의 산악 소설로 칭송받는 불멸의 고전
《빙벽》은 그동안 여러 번역본이 나왔으며 국내에 많은 애독자가 있는 소설이지만 이번 번역본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인 김석희 선생이 지난 번역판을 새로이 다듬어 야스시의 서사적이며 낭만적인 글의 맛과 멋을 최대로 살린 책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예술원상.마이니치예술대상.요미우리문학상.신초일본문학대상.노마문예상 등 일본의 큰 문학상은 거의 모두 수상하고 노벨상 후보에도 몇 차례 오른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흔히 두 처녀작의 제목을 따서 서정적인[엽총]계열과 서사적인[투우]계열로 분류되는데, 《빙벽》은 작가가 서정성과 서사성을 모두 집약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나일론 자일 강도 논쟁’이라는 실제 사건에서 소재를 취하여 모험으로 가득 찬 산사나이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긴 분량이지만 멈추지 않고 읽게 될 만큼 각종 극적인 사건들이 시시각각 펼쳐진다. 그래서 옮긴이는 후기에서 “마에호타카 산의 난코스에 도전하는 젊은 등산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극적일 뿐 아니라, 친구의 사고사를 둘러싸고 일어난 물의, 그 사회적 물의와 벌이는 싸움, 나아가서는 사나이들의 우정과 연애의 얽힘 등, 온갖 극적인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종전 후 경제부흥기를 맞은 일본의 대도시 도쿄에서의 삶과 일본 북알프스에서도 가장 험준한 곳인 마에호다카를 등반하는 모습이 교차하며 펼쳐지는 가운데 친구의 사고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각계의 억측과 외면에 맞서는 우오즈의 분투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소설의 핵심적인 무대는 험준한 산이지만 두 여인, 미나코와 가오루 사이에서의 치명적이고도 순정한 사랑의 얽힘으로 인해 서정적인 분위기가 소설 전체에 감돌고 있다. 도시와 자연의 극적인 대비 속에서 펼쳐지는 극적인 사랑은 독자들을 순식간에 먹먹함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첨예한 대자연에서 벌이는 도전과
경제부흥기 대도시에서의 어지러운 삶이 극적인 대비
고사카와 우오즈는 험준한 산을 함께 등반하면서 우정을 맺어온 사이이다. 그 우정은 도시에서의 우정과는 차이가 있다. 그들은 함께 산을 오를 때에 “산에서의 유대관계”로 서로를 지탱할 뿐이다. 그러나 그 우정은 상대가 위기일 때는 곧바로 목숨을 걸고 달려들 만큼 강인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일이 끊어지면서 고사카가 추락사했을 때, 고사카가 고의로 자일을 끊었거나 관리 미숙으로 자일이 끊어졌던 게 아니냐는 사람들의 억측을 우오즈가 절대적으로 부정한 것은 함께 목숨을 걸면서 쌓아온 고사카와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오즈는 산이 아닌 곳에서의 고사카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지만’, 산에서의 고사카라면 분명히 믿을 수 있다고 변론한다.
고사카는 등산가가 아닌가. 등산가가 친구와 함께 암벽을 오르다가, 더구나 한창 작업을 하는 도중에 자살할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우오즈를 절대적인 고독으로 몰아넣는 것은 바로 고사카의 죽음이 자일의 결함으로 일어난 불의의 사고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인들이다. 우오즈는 생각한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알린다 해도 고사카의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왜 그런 눈 덮인 높은 산으로 들어갔느냐.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한밤중에 일어나 자일을 몸에 감고 그런 암벽을 올라가려고 했으냐. 위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느냐.”
역시 도시인들은 나일론 자일이라는 새로운 장비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결함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기 전에 그들의 등반 자체를 탓하기만 한다. 우오즈는 제 등반의 이유를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마에호타카 동벽을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을 올라가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것이 한푼의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의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눈과 바위와 의지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그 일을 해내려고 했어. 춤을 추는 대신, 노름을 하는 대신, 영화를 보는 대신, 우리는 눈 덮인 암벽을 올라가려고 했던 거야.”
고사카의 사고 원인을 밝히고자 나일론 자일의 강도 실험을 실시하지만 이는 오히려 나일론 자일의 강도를 공인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일론 자일은 실험에서는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로 나일론 자일이 특히 각이 좁은 바위면에 닿으면 취약하다는 제보들이 발표된다. 그러나 나일론 자일의 제조사는 물론 언론 또한 나일론 자일 강도 실험의 결과를 확증해서 고사카의 사고를 해석할 뿐이다. 한편 고사카의 시신에서는 자살의 흔적 대신 자일이 끊어졌다는 증거가 발견되지만 언론과 일반인들은 그 발견에 냉담하다.
여기서 다시금 우오즈에게 있어 산이 갖는 의미가 강조된다. 세속이나 체면에 맞추어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인간형에 반대하여, 어떤 외적 변수에도 상관없이 자신의 양심과 명백한 사실에만 충실한 우오즈의 인간형은,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 도시의 논리에 반대하며 등산을 통해 자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오즈는 “등산이란 자연이라는 무대를 선택해서 거기에다 자신을 놓고 자기와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오즈에게 있어 도시의 직장 생활이란 자기를 포기하는 무대이다.
소설의 결말 역시 극적인 대비의 구조 속에서 끝으로 치닫는다. 우오즈는 비극적이게도 고사카가 사랑했던 유부녀인 미나코에게 점차 사랑을 느끼고 그런 와중에 고사카의 여동생 가오루에게 청혼을 받는다. 그러다가 이제는 대화할 수 없는 죽은 고사카에게 답을 듣겠다는 듯 우오즈는 산으로 향한다. 갑자기 낙석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오즈는 강박적으로 전진을 감행하다 결국 목숨을 버린다. 옮긴이는 후기에서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이 죽음은) 사실은 우오즈의 이상주의가 관철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오즈의 죽음은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문제작
《빙벽》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노우에 야스시에게 소재를 제공한 ‘나일론 자일 강도 논쟁’은 1950년대 일본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은 《빙벽》에 대한 다소의 이해를 제공한다.
종전 후 일본은 경제부흥기로 고조되고 산업 각계는 뜨거운 분위기를 맞았다. 이때 등산계에는 진보한 기술력의 성과인 나일론 자일이 널리 소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