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되지 못했던 한 ‘세대’의 울퉁불퉁한 목소리들로 길어올린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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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을 기어이 완성하는, 익명과 무명의 자리에서 걸어 나온 생생한 이야기들.
_장일호(《시사인》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와 그보다 더 많은 갈등과 좌절을 아프게 읽는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그 시대의 전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_박래군(4·16재단 운영위원장,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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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운’ 당사자의 목소리로 기록한, 첫 번째 고등학생운동사
1980년대~1990년대, 한국사회의 진보와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 그 역시 뜨겁게 타올랐으나 하나의 ‘세대’로 호명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와 운동사의 한 조각이 있다. 고등학생운동, 고운이 바로 그것이다. 고운은 1987년으로 상징되는 사회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 자신을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주체로 명명하고 이 사회와 자신의 현장이기도 한 교육현장을 바꾸겠다 실천해온 10대들의 운동으로, 이 책은 고운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한 첫 번째 시도다.
사회변혁을 위해 함께해온 주체들이었으나, 가까이로는 ‘386세대’로 명명되는 대학생운동 세대와 달리 하나의 세대로 발명되지도, 호출되지도 못했다. 이들의 활동은 그간 개인의 고립된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뿐 사회적 기억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나마의 기록 역시 ‘선생님 사랑해요’로 대표되는, 전교조 선생님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순수한 제자들’의 모습, 전교조 운동의 조력자로서 지나치게 납작하게 축소되어 있다. 전교조가 출범하고 강력한 탄압을 받았던 1989년에 전국의 중고생들이 전교조 투쟁에 강력히 연대했고 고운이 이때 크게 부흥한 것 역시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고운을 기록한다는 건 왜곡에 가까운 축소다. 이 책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이들은 사회를 바꾸고자 나선 불온한 위반자들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을 함께 이뤄온 정치적 주체였다.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만들어온 운동 세력의 하나이며, 이후 한국 사회의 운동 곳곳 광장 곳곳에 이들의 흔적과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반민주, 반노동 세력뿐 아니라 그들에 맞서는 ‘어른들’에게서도 우려의 시선을 받아야 했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었고, 학교에선 체벌과 입시 경쟁이라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강고한 연령주의,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현장 등 다중의 압력 속에서 세계와 자신의 현장을 바꾸고자 치열하게 싸우고 아파했던 ‘전사’이기도 하다(10대 학생들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치적 존재로서 서지 않은 적이 없는데도,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를 여전히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보수성이 고운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축소해왔을 가능성 역시 높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빠져 있던 우리 운동사의 조각 하나를 찾아 맞춰 끼우는 시도이자, 우리 근현대사에서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를 소환하는 시도라 할 수도 있겠다.
2. 사회변혁의 역사를 함께해온 ‘전사’들
책이 기록하고 있는 고등학생운동의 장면들은 이렇다. 학교 안에서는 ‘대통령도 국민 손으로 직접 뽑는데, 학생회도 학생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한다’며 학생회 직선제를 쟁취해낸다. 학교와 싸우기도 하지만 노련하게 협상을 이끌기도 한다. 사학비리에 저항해 학교를 점거하고 전교생이 시내 행진을 하고 학년 전체가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다. 새벽에 유인물을 인쇄해 교실 책상 서랍마다 넣어두고, 종이비행기를 함께 접어 동시에 전교생이 날리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으며 교과서 밖의 지식과 사회를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만든다. 독서 모임, 풍물패, 연극반, 토론반 등 학생들이 운영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틔우는 소모임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그곳이 또한 우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시국집회에도 참여하고, 참교육운동의 또 다른 주체로 스스로를 명명하며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강제적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폐지, 교복과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등을 요구한다. 지역 내 고교생 대표자 협의체를 출범시킨 지역도 여럿이다.
작게는 아침마다 교실에 《한겨레》를 가져다 두어 친구들이 돌려 읽을 수 있게 하는 ‘참교육운동가로서의 실천’부터, 크게는 4‧19나 11월 3일 학생의 날과 같은 고등학생운동의 계보에서 중요한 날에는 공개행사로 기념제를 주최하거나 연합집회를 주최하기도 한다. 고운의 활동과 세력이 정점에 달했던 1989년(전교조 출범) 광주 지역에서는 고등학생 대표자 협의회(광고협)가 주최한 연합집회에 2만 5,000명이 모였고 전경과의 투석전까지 벌어졌으며, 고등학생인 지도부 몇 명은 구속까지 됐다. 서울 지역에서는 1988년 1,00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운집한 자살학우 추모제와 같은 대규모 행사를 고운 세력이 열기도 했던 식이다. 일주일이 7일뿐이고 하루는 24시간뿐이어서 애가 타고, 운동할 시간도 학습할 시간도 충분한 대학생운동권이 부러울 정도로 뜨겁고 바쁘게 시간을 살아냈다는 이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현장에 투신한 이들, 고운을 지원하는 지도선배나 지도교사로 활동했던 이들도 여럿이다. 정성묵, 김수경, 심광보, 김철수라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부정의에 항거했던 고운 ‘열사’들의 이름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이 정치적이고 불온한 주체로서 활동했던 11명이 각자 자신의 언어로 이와 같은 고운 당시의 활동, 내용, 고민, 평가를 비롯해, 자신에게 미친 고운의 영향, 한국 사회 혹은 운동사에서 지니는 고운의 의미 등을 기록했다. 당시 사학비리 투쟁의 선봉에 있었던 정화여상 학내민주화 투쟁(김소연), 노태우의 직선제 당선과 함께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결성된 서울 지역 고등학생들의 정치 연합체 서고련(전성원), 진보적 사회운동의 기운이 남다를 수밖에 없던 전남, 광주 지역의 고운의 정치적 역량을 분명히 드러냈던 광고협 등 광주, 전남 지역의 고운(김대현, 김성윤), 고등학생운동의 씨실을 짜낸 공개단체 KSCM과 흥고아(흥사단고등학생아카데미)의 역할과 활동(정경화, 이형신, 권정기, 조한진희, 김성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인 대구에서 고등학생 대표자 연합체와 전국 단위의 전고협을 꿈꾸었던 전위조직의 이야기(안수찬), 전교조와 고운의 관계(양민주, 정경화 등), 고운의 방향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산 지역 고운의 이야기(김영희) 등 당시 고운의 다양한 활동과 함께 제각각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해왔는지를 담았다. 직선제 학생회나 학내 소모임 등 학교 내의 고운 활동과 사회와 학교, 기성세대 등 여러 층위로부터의 폭력을 관통해온 시간은 저자 모두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또한 성인기를 앞둔 고운 활동가 각각이 10대 이후 어떤 진로를 선택했고, 어떤 ‘투신’의 경로를 밟아왔는지 역시 담아내려 했다. 나아가 당사자들의 언어로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1980년대~1990년대 고운의 의미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어 그 기록을 담았으며, 고운 열사들의 삶과 죽음을 소개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관점을 담은 연구자 전누리의 글도 함께 배치해 책의 의미를 더했다.
3. 균질하지 않은 목소리들의 모자이크
이 책은 균질하지 않은 기록이다.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으로 그 시간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고운 연구자로서 고운 열사의 삶과 그 죽음을 다룬 전누리를 제외한 11명의 저자는 모두 고운 활동을 했던 당사자이나 활동했던 지역도, 성별도, 활동 분야나 활동 당시 처해 있던 상황에도 차이가 있다. 당시 운동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내용도 다르고, 운동에 개입한 정도와 강도에도 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