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에 임금을! 재생산노동의 가치는 생산노동의 가치와 동일하다.
가사노동은 다른 가족구성원들과 공평하게 분담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라면 벌이가 없는 한 명은 군말 없이 ‘무급’의 가사노동을 전담해도 되는 걸까? 가사노동을 통한 노동력의 ‘재생산’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생산’만큼 가치를 갖지 못하는 걸까? 만일 재생산노동이 생산노동과 동일한 수준으로든, 그보다 적은 수준으로든 가치를 갖는다면 그 가치에 대한 인정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줘야 하는 걸까? 스마트폰처럼 첨단 기기들이 생산되고, 금융거래가 빛과 같은 속도로 거래되는 현 사회에서도 가사노동, 재생산노동과 관련된 이와 같은 질문들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30여 년 전에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적인 운동으로까지 조직되었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불운동’에 몸담았던 저자는 재생산노동은 이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노동력만큼의 가치를 갖기 때문에 생산노동과 동일하게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생산노동의 최종 수혜자는 자본이므로 총자본의 대변인인 국가가 (전업)가사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기반을 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불운동’은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주요 화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정 내에서든 사회적으로든 재생산노동은 천대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이 책의 1부 ?가사노동의 이론화와 정치화?에 실린 30여 년 전 저자의 주장과 그 주장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들이 전혀 퇴색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복지의 축소는 무수한 무급가사노동자들의 희생
맞벌이가 늘면서 가정 내 가사노동 분담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고, 유급가사노동자를 고용하여 육아 등의 가사노동을 맡기는 집단이 늘면서 유급가사노동자에 대한 논의 또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를 차지하는 무급재생산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30년 전에서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이런 무급재생산노동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국가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인돌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빈약하다는 페데리치의 지적은 기초노령연금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복지’는 단순히 국가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가 축소될 경우 결국에는 복지의 영역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메워야 하는 무수한 무급가사노동자들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복지 축소’에 맞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이탈리아와 미국,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등을 넘나들며 30여 년 간의 다양한 운동경험을 통해 얻은 저자의 통찰이 깊은 만큼,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돌아보고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이 처한 현실을 평가하고 현실의 과제를 넘어서기 위한 유용한 관점을 우리는 『혁명의 영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에 대항하는 공유재의 정치, 재생산수단을 공유화하자!
페데리치는 1980년대 중반 나이지리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프리카의 학생과 교사들이 아프리카 경제 및 교육시스템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는 투쟁을 지원하는 조직인 <아프리카 학문의 자유위원회>를 공동설립하였다. 신자유주의의 득세 속에 특히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이 유무형의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하는 상황을 목도하며 저자는 노동자와 자본 간의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고 있음을 감지한다. 2부 ?세계화와 사회적 재생산?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진행된 신국제노동분업 속에서 계급관계의 재구조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분석한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 운동과 신자유주의의 계급관계 재구조화에 맞서는 활동을 해온 저자는 점차 주장과 운동의 방향을 공유재(공통재, the common)를 구축하기 위한 투쟁으로 더욱 확장한다. 3부 ?공유재의 재생산?에는 페데리치 특유의 공유재의 정치가 제안되고 있다.
공유재는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주제이다. 올해 2013년 9월 말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이 참석한 컨퍼런스에서도 생태적 파국, 지식 재산의 사유화, 재개발로 인한 도시의 슬럼화 등 공유재의 사유화에 맞서는 철학과 운동이 주요 논의 주제이기도 했다.
안또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공유재를, 경제적인 것을 모두 소유권에 종속시키는 사유재와, 사회적인 것을 모두 국가의 감시와 통제 하에 두는 공공재와 구분한다. 공유재는 기본적으로 물, 공기, 토지, 미생물, 종자 등 생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적 공유재들은 지속적으로 기업에 의해 사유화되고, 국가의 지배를 위해 통제 감시되어 왔지만 생명과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재화이다. 과학기술과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지식과 돌봄, 감정(정동) 같은 비물질노동도 오늘날 중요한 공유재이다.
공유재는, 1994년 1월 1일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사빠띠스따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공유재를 지키기 위한 봉기에서부터 운동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생명과 지식을 시장논리에 종속시켜 화폐관계 하에서만 공유재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세계은행과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공유재를 보호한다는 목적 하에 산림이나 바다 같은 공유재에서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이들을 쫓아내고 생태관광을 도입한다고 비판한다. 세계은행과 유엔은 해양접근에 대한 국제법을 수정하여 해수사용권도 소수가 독점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네그리와 하트가 제시한 공유재 개념이 유용하다고 말한다. 특히 페데리치는, 네그리와 하트가 생산의 정보화를 통해 공유재 원리 위에 사회가 진화한다고 주장하고, 생산 및 노동조직 내에 공유재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네그리와 하트의 공유재 개념과 비물질노동 개념은 인터넷기술 기기와 컴퓨터가 노동자 및 자연 파괴적인 생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과학, 지식생산, 정보를 강조하여 일상생활의 재생산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페데리치는 재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공유재화함으로써 가정과 공동체 내에서 대항권력을 구성하자는 여성주의적 공유재의 정치를 제안한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주장되어온 가사노동의 공동화와 집단화가 오늘날 시급히 실현될 때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운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