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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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사는 철학사로서 이해해야. 미학사를 통해 미학의 본연으로 『서양고대미학사강의』는 서울대 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자 김율(서울대 철할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미학사’ 강의를 했던 내용을 토대로 씌어졌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미학사를 철학사로서 이해’하고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 매체미학, 디지털 노마디즘 미학 등 첨단의 명칭과 담론 앞에서 오늘날 미학의 학적 본질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지 않은 논의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미학이라는 학문도 본연과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정신이 던질 수 있는 모든 위대하고 보편적인 질문들은 이미 철학사에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에 철학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철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길은 미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철학사로서의 미학사를 살펴보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철학의 고전들을 가까이하면서 철학 문헌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된다. 이 책은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 플라톤(기원전 428년경~기원전 348년경)과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 플로티노스(205~270)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생각한 ‘아름다움’의 정의와 주요 논쟁 등을 총 6장에 걸쳐 정리하고 있다. 『서양고대미학사강의』의 내용과 특징 요약 제1장 「미학의 역사와 역사적 미학」에서는 미학사의 서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역사적 이론들을 본질적인 주제로 하며, 기술과 감성적 현상에 대한 역사적 이론들은 부수적인 주제로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제2장 「미학의 시원: 경이라는 경험」에서는 미의 현상과 찬탄을 경험하는 데서 미학의 시원(始原)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본질적으로는 현상이 개념으로 이행되고, 경험이 해석으로 이행되며, 느낌에서 앎으로 이행될 때 미학의 시원이 발견된다. 제3장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현상에서 개념으로」에서는 “모든 사물은 자신이 잘 관계하는 관점에서는 좋고 아름다우며, 잘못 관계하는 그것의 관점에서는 나쁘고 추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언급하면서, 그가 아름다움을 ‘적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소피스트들의 진술이 아름다움이 상대적인 데 비해, 아름다움과 좋음을 연결시키는 소크라테스의 진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제4장 「플라톤: 아름다움의 이데아와 예술 비판」에서는 플라톤의 미학은 나타남, 즉 현상 자체를 다룬다고 설명한다. 감각적인 것임에도 사랑의 대상이 되며, 감각적인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지닌 의미다. 제5장 「아리스토텔레스: 기예와 즐거움」에서는 삶을 즐기기 위해 생겨난 학문과 기술은 이론적이며, 이론적인 학문이 제작적 학문이나 실천적 학문보다 더 우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제6장 「플로티노스: 좋음의 빛」에서는 플로티노스 미학의 본령은 정신의 아름다움인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빛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존재경험을 따른 것임을 설명한다. 고대미학에 등장하는 철인(哲人)의 역할 고대미학의 성립과 전개 과정은 근거 물음과 본질 물음의 통일이라는 서양철학의 근본적 사유 문법을 여실히 보여준다. 플라톤에게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 물음은, 인간이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불변적 원인에 대한 물음을 의미했다. 아름답게 나타나는 사물들의 현상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어떤 원인의 효과로 이해하고, 그 원인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고대미학의 본령이었다. 미학이 철학이라는 말은 미학의 이러한 태생적 신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플라톤은 바로 이 본령을 이룬 사람이었다. 플라톤 이래로 역사적 미학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주도적인 지위를 상실한 적은 없으며, 이 주도적인 물음의 ‘철학적’ 의미가 탈각된 적도 없다. 아름다움을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위계적 질서를 가정하는 사고방식 역시 이러한 주도적 물음의 등장과 함께 확립되는 역사적 미학의 고전적 특징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있는 것(존재자)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지만, 고대미학에서 아름다움이 언제나 앎과 사유의 대상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 대답이 가능하다. 아름다움은 알 수 있는 것이며, 사유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합의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고대미학의 전통 안에서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이 고대미학의 주인공이었던 그리스인에게 아름다움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서는 전혀 경험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미학적 탐구의 동기가 되지만, 아름다움의 본질 물음이라는 사유의 본령이 이룩된 후에는 그 느낌 자체가 본질의 효과로서 다시 사유의 과제를 형성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역할이 있다. 기예의 산물인 시(詩)가 유발하는 감정에 대한 독립적 탐구, 선(善)이라 불리는 가치들이 인간의 욕구에 선사하는 즐거움의 현상에 대한 탐구는 고대미학의 지평이 결정적으로 확장되는 계기로 간주될 수 있다. 고대미학의 지평은 이론들 사이의 체계성이 아니라 이론의 대상들이 간직한 연결 가능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론과 윤리학의 성격을 띠던 고대미학을 예술학과 심리학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는 아름다움의 경험에서 촉발되어 철저히 개념적 사유의 기획으로 자기 자신을 정립한 고대미학이 다시금 자신에게서 비롯된 경험의 영역으로 귀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이 경험의 대상에서 앎의 대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미학의 성립을 말해준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미학의 확장은 아름다움에 대한 앎이 아름다움의 경험에 대한 앎으로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로티노스, 고대미학의 본령을 이루는 아름다움에서‘초월적’경지를 개척 원인보다는 효과, 본질보다는 경험이 앎의 과제로 더 부각되던 고대 후기의 복잡한 정신적 상황 속에서 플로티노스는 5세기 전의 스승 플라톤이 던졌던 아름다움의 본질 물음으로 새롭게 쇄도해 들어가려 한다. 플로티노스는 고대미학의 본령을 이루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에서 유례가 없던 일종의 ‘초월적’ 경지를 개척했다는 데 공헌했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의인화된 신의 표상과 더불어 인간의 현세적 자기완성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 물음에 빛을 던져 주는 것은 인간 이성이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어떤 이성이다. 미학사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적 단계 간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다. 왜냐하면 철학사로서의 미학사는 본질적으로 대답이 아니라 질문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출간될 『서양중세미학사강의』 『서양근대미학사강의』에서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그 해답찾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