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숨겨진 오월의 봄, 그녀들의 이야기,
여성 19인의 낮은 목소리로 들여다본 5·18,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일상사가 만들어 낸 그날의 실천들,
창녀들과 넝마주이, 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생생한 증언들…….
80년 5월, 그녀들이 묻어 둔 이야기가 봉인을 뚫고 나오다
5·18을 직접 체험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생애사를 담은 이 구술집은 ‘80년 5월’의 기억뿐만 아니라 5·18을 전후로 한 그녀들의 전 생애를 담은 책이다. 당시 방송차를 타고 광주 시민들에게 현장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썼던 전옥주 씨와 5·18 당시 수습대책위 활동을 했고, 항쟁 이후에는 교육 운동과 민가협 활동에 헌신한 현 오월어머니집 이사 이귀님 씨를 비롯한 구술 외에도, 두 차례에 걸친 좌담을 실어 여성 주체의 실천에 대한 각계각층의 해석과 논쟁, 그리고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 방법에 대한 논의를 더했다.
간호사, 시장 상인, 여공 등 당시 5·18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러 계층의 여성들의 구술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보다 그간 5·18담론에서 주변화되어 왔던 주체들, 즉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건네주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역할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화하면서, ‘저항’의 의미와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국가가 자행한 거대한 폭력 앞에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그녀들이 어머니로서, 간호사로서, 노동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지켜내고자 했는지를 생생히 드러내 준다.
또 전체 구성을 3부로 나누어, 평범한 이들의 어떤 삶이 5·18의 투쟁을 가능케 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부각시킨 것도 특징이다. 1부에는 5·18 이전 여성의 삶을 중점적으로 보여 주는 이들의 구술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시집살이를 견디며, 밥벌이를 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어 가야 했던 시장 상인, 일용직 노동자 등의 삶과 자기 일터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 인상 투쟁을 진행하며 5·18 투쟁을 예비했던 여공들의 삶이 펼쳐진다. 5·18 당시의 기억이 중심이 되는 구술로 구성된 2부에는 당시 방송차를 타고 다니며 현장 상황을 생생히 전달해 주었지만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던 전옥주 씨의 파란만장한 삶과, 부상자와 사망자로 가득한 병원에서 갖가지 참상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시체를 수습해야 했던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5·18이 이들 여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3부에서는 고등학교 때 5·18을 경험한 이후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취직을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운동을 멈추지 못한 여성들의 삶이 펼쳐진다.
80년 5월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70년대 한국 여성의 일상사가 5·18의 실천을 만들다
“총과 수류탄 대신 밥과 수의를 들고”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여성들의 전 생애를 보여 주고 있는 이 책은 60, 70년대 한국 여성들의 질곡 어린 삶을 보여 주면서 80년 5월 광주에서 이루어졌던 실천들이 바로 이들의 이전 삶 속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딸이라는 이유로” 배운 것도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과 얼굴 한번 제대로 못보고 “돼지 팔려가듯” 결혼해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 내고 병들거나 “자기 자유만 챙기는” 남편 대신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여인들, 배고프다는 자식들에게 풀을 쒀먹이면서도 질기게 악착같이 삶을 이어온 어머니로서의 그들의 삶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그리고 광주 5·18은 바로 이런 이들이 시위 학생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내 자식 같고 이녁 동생 같은” 마음, “아무라도 배고프믄 먹여야 된다”는 생각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보듬었던 일들이 80년 5월 광주 공동체를 구성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노조를 조직화하며 5·18 투쟁을 예비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80년 5월 광주가 단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이 아니며, 그날 그곳에서 보여 주었던 많은 이들의 실천 역시 YWCA, JOC 등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에도 빚지고 있는 바가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80년 5월 거리에서 : 창녀들과 넝마주이, 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생생한 증언들
이 책의 구술에서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이들 여성이 들려주는, 아직도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는 “더 낮은 곳의 목소리”에 대한 증언이다. 당시 방송차를 타고 시위 현장을 누볐던 전옥주 씨는, 술집에서 서럽게 번 돈으로 도청에 가서 향을 사다 피우고 무명옷을 사다가 시체에 입혔던 술집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한다. 또 송희성 씨는 술집 여자들과 넝마주이들이 헌혈을 하러 온 이야기, “우리는 총 맞아 죽어도 된다”며 자신을 숨겨주었던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5·18에서 여전히 가시화되지 못한 주체들의 공백을 채워 주는 동시에, 여전히 채워지지 못한 역사의 한켠을 과제로 남겨 두고 있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그 이후로 많이 변했제”
이 책은 5·18의 ‘현재’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5·18의 현재는 비단 이들이 과거에 입었던 물리적·정신적 상처의 후유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80년 5월이라는 과거의 경험은 이들에게 고문의 육체적 후유증과 정신적 외상을 통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그들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들의 현재 삶을 버티게 해주는 자부심과 자기 정체성의 원천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옥주 씨는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철저히 파괴된 일상을 견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남긴” 전라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또 이정희 씨에게 광주는 5·18 이후 협박에 의해 회사를 그만두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직 한번 못한 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2억에 달하는 사측의 회유금을 뿌리치며 꿋꿋이 양심을 지킬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5·18로 인해 사회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들의 삶은 5·18이라는 체험이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고, 5·18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5·18 이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갖가지 봉사 활동을 하며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멈추고 있지 않은 이들의 삶 역시 이 책의 이름 없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살려내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5·18은 잊힌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역사인 것이다.
* 광주, 여성들
김막님_____딸이 넷이어서 이름을 막님이라 했어라
화순에서 태어나 열일곱에 결혼해 주남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주남마을은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 작전에 투입될 때까지 주둔하던 곳으로, 이들은 이곳에서 광주로 통하는 외곽 도로를 차단·봉쇄하고 인근을 지나는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일용직 근로자로 생활하다가 1980년을 맞았다. 1980년 5월 21일, 공수부대원들이 주남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녀는 마을 앞 하천둑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일용 근로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무조건 총으로 쏴죽이던 그날 밤의 계엄군을 잊지 못하지만, 여전히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여백이 상당히 많다.
박수복_____우리가 다 그렇게 빨갱이로 보여요?
나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공부를 곧잘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기집애가 공부해 봤자 시집가서 친정에다 편지나 쓴다”며 반대했다. 그래도 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