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문제작
두 뜨내기 일꾼의 꿈과 우정을 그린
현대 사회의 슬픈 우화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뉴욕타임스》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이고 날카롭다. 스타인벡은 천재이며 별종이다.” ―《커커스》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존 스타인벡의 초기 대표작인 『생쥐와 인간』이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스타인벡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참혹한 미국의 현실을 그려낸 대작『분노의 포도』로 1940년 퓰리처상을, 미국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타락을 그린 『불만의 겨울』로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37년 작인 『생쥐와 인간』은 뜨내기 일꾼 조지와 레니의 오랜 우정과 자기 땅을 사서 일구려는 소박한 꿈이 경제 대공황의 척박한 현실에 부딪혀 철저히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길지는 않지만 짙은 여운을 남기는 중편 소설이다.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을 떠돌며 근근이 살아가는 일꾼들의 쓰디쓴 외로움과 비애, 무자비한 운명의 손아귀에 힘없이 바스러지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고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평단의 찬사는 물론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스타인벡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편 소설로 읽히는 동시에 연극 대본으로도 쓰일 수 있도록 구상했다는 스타인벡의 바람대로 『생쥐와 인간』은 간결한 대화와 극적인 장면 구성에 힘입어 수백 회 이상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세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작인 존 말코비치 주연의 영화 『생쥐와 인간』은 199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생쥐와 인간』은 꿈, 우정, 폭력 등 청소년기에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굵직한 주제들을 담은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여, 미국, 영국, 캐다나, 호주 등 대부분의 영미권 국가에서 고등학교 문학 수업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미국 도서관 협회(ALA)의 발표에 따르면 이 책은 거친 표현과 작품에서 제기되는 안락사라는 화두 때문에 21세기에 이른 오늘날까지 학부모와 기독교 단체로부터 미국에서 금서 지정 요청이 네 번째로 많이 들어오는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생쥐와 인간』이 현 사회에서도 여전히 시사점이 많은, 긴 생명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우정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작품
“그런 정신 나간 친구랑 자네처럼 영리하고 작은 친구가 함께 돌아다닌다니 재미있지 뭔가.”
대부분의 일꾼들이 혼자서 떠도는 반면, 성격과 외모가 정반대인 레니와 조지는 늘 함께 붙어 다닌다. 힘이 장사이고 거구인 레니는 순수하지만 어수룩해서 늘 말썽을 일으킨다. 한편 작고 기민한 조지는 그런 레니를 타박하면서도 살뜰히 보살핀다. 독자는 조지가 레니만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일자리를 잃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레니와 함께 다니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된다. 조지가 마부 슬림에게 털어놓는 이야기에 따르면, 친한 사람과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으며, 사람이 너무 오래 혼자 다니면 ‘아무 재미도 없이’ 지내게 되고 결국 ‘속이 꼬여서’ 남을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지는 레니와 함께 다니는 데 ‘익숙해졌다.’ 이렇듯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인 조지도 레니에게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농장의 여느 고립된 등장인물들과 대조를 이루던 이들의 순수한 우정은 애석하게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일 수밖에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비록 해칠 마음은 없었다 해도 레니의 커다란 손아귀에서 작은 짐승들이 죽어 나가듯, 결국 레니도 조지의 손에 죽고 만다. 오랜 우정과 아름다운 꿈을 나누었던 두 친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약자를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일부로 포섭되고 만다. 비록 조지의 선택이 레니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소외된 자들의 ‘아메리칸 드림,’ 그러나 끝나지 않은 희망의 메아리
조지와 레니를 비롯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제각각 외로움에 허덕이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일을 하다 한쪽 팔을 잃은 늙은 일꾼 캔디는 병든 개를 벗 삼아 지내는데 동료 일꾼들은 냄새가 지독하다며 그 개마저 안락사 시켜 버린다. 농장의 유일한 ‘검둥이’이며 곱사등인 마구간지기 크룩스는 백인 일꾼들의 숙소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그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실은 외로움에 쩔쩔 맨다. 또한 농장주 아들인 컬리의 ‘헤픈’ 아내는 실은 남자들뿐인 농장에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외로운 젊은 여자일 뿐이다. 농장의 일꾼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작은 땅덩이를 꿈꾸며, 컬리의 아내는 영화배우를 꿈꾼다. 이들의 ‘꿈’은 일견 개인들의 노력과 헌신, 혹은 행운을 통해 이뤄질 듯 보이지만 실제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에 다름 아니다. 스타인벡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부드러운 온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 친구와 함께 일하고 즐기며 살고픈 소박한 바람이 허황된 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묵묵히 고발하며 그 어떤 탈출구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조지와 레니가 마지막까지 돌림노래처럼 함께 되뇌던 희망의 구절은 독자의 귓전을 맴돌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쩐을 모아 작은 집과 삼천 평짜리 땅과 소 한 마리와 돼지 몇 마리를 갖게 될 거야…….”
간결함의 미학이 거둔 승리
작품의 문체적 특징을 꼽는다면 연극적인 특성과 간결함이라고 하겠다. 연극의 대사처럼 군더더기 없이 응축된 대화문은 각 인물의 성격을 탁월하게 드러냄은 물론 사건의 단서와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 각각이 경험하는 소외와 그들이 지닌 한계는 그들 자신의 입을 통해 선명히 제시되며 화자는 일련의 사건을 담담한 문체로 쫓아간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믿을 수 없이 참혹한 결말을 마주하고도 그 책임을 특정한 한 인물에게 돌릴 수 없게 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일은 이렇게 끝나 버렸다는 현실의 무게감만이 독자를 짓누른다. 한편 화자는 닫힌 공간으로 스며든 햇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교차와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데 이는 짙은 서정과 함께 숙명론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보물섬』, 『로드』,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을 번역한 베테랑 번역가 정영목이 농장 일꾼들의 은어와 남부 캘리포니아의 향토색이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살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