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일본 사상계를 뒤흔든 아즈마 히로키의 최신 정치사상서
『일반의지 2.0 ― 루소, 프로이트, 구글』 한국어판 발간!
정치사상가로 변신한 아즈마 히로키의 새로운 얼굴
2000년대 이후 일본 사상계와 문화 비평계에서 아사다 아키라와 가라타니 고진을 잇는 비평가로 떠오른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최신 정치사상서(『一般意志 2.0 ― ルソ?, フロイト, グ?グル』)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되었다. 『일반의지 2.0』은 지난해(2011년) 일본에서 발간된 후 3만 부 이상이 팔리며 현대 정치에 관한 대중적 논의에 불을 붙인 화제작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아즈마 히로키는 ‘서브컬처 비평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이 차례로 번역되어 일본의 서브컬처 문화를 비평의 대열에 올려놓은 선구적인 비평가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서브컬처 비평가이기 이전에, 자크 데리다에 관한 논의를 펼친 『존재론적, 우편적』으로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현대 사상가로 지목된 바 있다. 『일반의지 2.0』은 그동안 서브컬처 비평에만 몰두했던 아즈마 히로키가 사상계에 귀환하며 펼쳐낸 책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서브컬처 비평가가 아닌,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서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는 그의 다채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루소, 프로이트, 로티를 경유한 전복적 민주주의론
‘소통 없는 민주주의’란 가능한가?
아즈마는 『일반의지 2.0』에서 ‘소통 없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소통 없는 민주주의’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기묘한 민주주의이다. 우리 사회는 논의와 타협을 거쳐 대의에 도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소통 없는 민주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봉착한 곤란을 해결할 새로운 민주주의이다. 아즈마는 ‘소통 없는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장 자크 루소, 지그문트 프로이트, 리처드 로티에서 찾으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먼저, 아즈마는 루소의 ‘일반의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새롭게 추출하고 분열된 루소를 통합시킴으로써, 일반의지를 현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정립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개개인이 계약을 통해 사회를 만들 때 추상적인 주권자로서 ‘일반의지’가 탄생하고, 이어서 일반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인 정부(국가)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일반의지는 토론과 타협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다. 충분한 정보를 가진 인민들이 어떤 소통도 하지 않는다면, 작은 차이가 모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일반의지가 생성된다는 것. 여기에서 아즈마는 일반의지의 기본 요건으로 ‘소통의 부재’와 ‘다양성의 확보’를 도출해낸다. 즉 루소가 꿈꾼 민주주의란 소통을 통해 다양성을 감소시킨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양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통 없는 민주주의’, ‘일반의지 2.0’의 발현은 현실 정치에서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허무맹랑한 사상놀음에 불과한가? 250년 전 루소가 살던 시대에는 토론과 의견 조정을 거치지 않고 개개인의 의지가 다양한 모습 그대로 가시화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개인의 의사가 ‘데이터베이스’라는 ‘집합적 무의식’으로 집적될 수 있다는 것이 아즈마의 주된 논의이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com)이나 아마존(amazon.com). 이용자들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할 뿐이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검색 패턴과 행동 이력이 축적되어 ‘검색어 완성’이나 ‘도서 검색의 경향’이라는 집단적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별 의식 없이 행한 행동들의 축적,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매일 전 세계적으로 2억 개 이상의 ‘재잘거림(twit)’이 만들어지는 트위터의 데이터를 적절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면 이용자 전체의 무의식적인 욕망의 패턴을 추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개개인들의 다양한 의지가 집적되는 장인 것이다.
폴리스에서 대중의 무능력과 정치 환멸을 드러내다
무의식/의식의 연대로 구상한 ‘민주주의 2.0’
아즈마는 이 소통 없는 무의식적인 욕망의 패턴을 ‘일반의지 2.0’이라 부른다. 그러나 대의제와 소통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대의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 소환된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토론을 통한 의식적 합의가 아니라 정념이 넘치는 집합적 무의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이란 어디까지나 제어해야 할 대상이었다. 정신분석의 치료 과정은 무의식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언어화하면서 진행되는데, 언어화 혹은 가시화 과정을 거쳤을 때 욕망의 폭발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즈마는 미래의 정치를 사유할 때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의식 민주주의’는 정치가 대중의 무의식을 배제하지도 그 무의식에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으면서, 무의식을 가시화한 다음에 그것의 제어를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토의를 인민의 무의식에 노출시켜라.” 이것이 이 책에서 아즈마가 내거는 미래 정치 강령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대중의 ‘의식’을 대변하는 정치인들만 모여서 정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외부에 있는 대중의 ‘무의식’과 대결하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사례를 들자면 국회의사당에서 논의나 표결을 할 때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에 관한 국민들의 트윗을 스크린에 띄운다면, 국회의원들은 적어도 자신의 주장이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후 의사 결정에 그 반응을 반영할지 여부는 물론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일이다.
무의식 민주주의는 사실상 전통적인 정치사상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정치란 ‘이성’, 즉 의식에 기초한 ‘공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즈마는 리처드 로티를 검토함으로써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뒤흔든다. ‘소통을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 모델은 대중에게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닫혀 있었으며, 이 모델에서 정치는 대중의 일반의지를 반영하기는커녕 ‘밀실의 정치’로서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고 아즈마 히로키는 지적한다. 바로 여기에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일반의지 2.0의 세계에서는 대중의 사적인 행동이 집약된 ‘집합적 무의식’이 공적이고 논리적인 정치의 장의 한계를 무너뜨린다.
환경 관리 권력으로서의 데이터베이스가 만든
미래 정치의 지형도 ‘민주주의 2.0’
이렇듯 아즈마는 구글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킹을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의 토대가 될 환경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아즈마가 말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민주주의란 대안적 의사 전달의 창구로서의 공간이라는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 낙관론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낡은 통념 대신에 ‘데이터베이스(집합적 무의식)가 민주주의를 바꾼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민주주의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2.0으로 호명되는 것이다. 별 다른 의식 없이 입력한 검색어들, 트위터에 내뱉은 중얼거림과 불평들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한다. 여기에 토론이나 논의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정보환경은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비(非)소통의 공간이다.
이와 같은 정보환경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일반의지 2.0』의 배후에 있다. 아즈마는 21세기 정보환경의 변화를 푸코의 ‘규율 훈련형 권력’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