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홀로 남겨질 것이다!”
가난/ 디지털 기술/ 능력주의는 어떻게 외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외로움은 어떻게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무너뜨리는가?
대한민국 안에서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외로운가?
인류는 어떻게 외로움에 맞서 싸울 것인가?
2018년 1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이 탄생했다.
놀랄 일도 아니다. 영국에서 발표된 <외로움과 맞서 싸우기>라는 보고서를 보면, 수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자주 혹은 항상’ 시달리고 있으며, 노인들 중 압도적인 수가 TV가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이 고립되고 공동체가 단절된 상황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비용은 대략 5조 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외로움이 단지 개인의 정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시사해 주는 지점이다.
외로움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노인들은 외로움과 생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다. 한국 또한 가장 외로운 국가 중 하나다. 인구의 26%가 상시적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20대의 경우엔 그 수치가 40%까지 치솟는다.
지금 세계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문만 열면 바로 다른 이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도시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놀라운 기술의 발전 덕에 모두가 연결된 ‘초연결 사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고독부 장관’을 임명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the lonely century’라 이름 붙였다.
외롭거나 외로워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일일이 알아낼 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외로워지는 이유와 과정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회·정치적으로 접근해 보는 건 가능하다.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면, 분명 우리를 이렇게 만든 21세기만의 조건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철학이 할 일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첫 장은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외로움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어권에서는 16세기까지 외롭다는 단어가 없었으며, 이 감정은 이후 사회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것이었다. 결국 이 시대 사람들을 더욱더 외롭게 만드는 원인은 가난, 디지털 기술, 데이터가 지닌 편향성, 능력주의 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에 더해 외로움으로 뒤덮인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들을 짚어 가며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엔 어떤 식으로 외로움에 맞설 것인지, 조금은 서투르더라도 함께 그 대안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늦은 나이에 어린 생명을 이 세상에 오게 한 아빠로서, 그 아이가 더는 외로운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책을 썼다. 그 여정에 많은 이들이 함께해 주길 바란다.
가난/ 디지털 기술/ 능력주의가 만드는 외로움의 시대!
인류는 어떻게 이에 맞서 싸울 것인가
이렇게 외로운 시대는 없었다
어떤 이들은 외로움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종의 사치품에 가까운 감정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 봐라, 외로울 틈이 있나!” 하지만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수많은 통계들이 보여 주고 있다. 21세기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치열한 시대인데 이 시기에 외로움이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로움이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적 삶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하고 일본에서 ‘고독부’를 신설했겠는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대의 경우만 놓고 봐도 10명 중 4명이 ‘상시적으로’ 외로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1인 가구로 살아가는 20대일수록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과 팬데믹, 디지털 기술 등이 불러온 공동체의 단절 속에 고립의 강도는 점점 높아만 지고 있다. ‘외로운 세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21세기, 사람들이 미처 인식할 틈도 없이 외로움이 우리의 삶을 습격한 것이다!
외로움이 디지털 기술을 만날 때 벌어지는 일
인류가 외로워지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AI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 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놀라운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른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나 빠른 나머지 평범한 이들은 따라잡기조차 어렵고.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자로 전락한다. 물론, 디지털 기술의 등장 이전부터 사회는 그리 평등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분배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며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노동자들은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형성된 노동 시장에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데, 플랫폼 회사들은 중간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다. 이런 컨시어지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은 중개만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다. 기술의 발전이 가난과 불평등으로 고립된 이들을 점점 더 외로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AI가 유일한 대화 친구라면
이렇게 관계가 단절되고 사람들이 고립되어 가는 시대에, 때마침 등장한 대화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기나긴 팬데믹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대면 활동이 적었던 젊은 세대일수록 사람과 관계 맺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설문 조사에서 20대의 47%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소통하는 것이 두렵다.”고, 50%는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상황에 놓이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부터 걱정이다.”라고 답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젊은 세대가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를 이용하며 사적 영역에 홀로 갇혀 있음에도 실제로는 인간과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외로움 문제를 많이 호소하는 20대에게 인공지능이 유일한 대화 친구가 된다면,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인간과도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인류가 과연 AI로 대표되는 기계들과는 올바른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 지닌 편향성이 우리를 더욱더 외롭게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AI가 사람보다 더 객관적이고 공정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사용하는 빅데이터 안에는 이미 오랫동안 인간이 답습해 온 편견과 차별, 혐오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편향성을 지닌 AI를 이용해 면접을 보고,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현실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온갖 행정 시스템에 도입된 AI는 복지 혜택이 필요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더 많은 정보와 더 까다로운 자격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구빈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일터에는 온갖 디지털 기술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일상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이 생겨나고 있다. 발전된 기술이 우리의 삶을 외롭게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능력주의 세상에서 각자도생하느라 더욱더 외로워지는 사람들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자 이를 능력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격화되자 공정성에 집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유일한 해결책으로 거론된 능력주의에 열광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만큼 능력주의는 공정하지 않다. 능력이라는 것의 많은 부분이 생득적으로든, 세습적으로든 운에 좌우된다. 특히나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