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종교’와 ‘믿는 인간’을 이야기하는가
신을 믿은 인간의 역사가 말해주는 오늘
30만 독자에게 울림을 주었던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작가의 신작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를 가진 한 명의 신앙인이자 오랜 시간 법학을 공부해온 저자가 유럽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며,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법과 정치가 종교와 분리된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았고, 10세기 초반 유럽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 불안에 떨던 민중은 교회로 몰려와 신의 보호와 자비를 청하기도 했다”라고 말하며, 역사 속 종교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대 로마와 중세 시대는 비록 먼 과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인간 삶의 양식의 바탕이 된 큰 사건들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생활 면에서 혼돈의 시대이자 지옥의 시간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어느 시대라고 특별히 거룩하거나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 역사는 똑같지는 않아도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가장 좋은 예가 되어줍니다.” (97-98쪽)
저자는 특히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고통의 시기를 겪었던 중세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날을 비춰보며, 과거 인류가 중세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것을 계기로 의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되었고,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불거졌던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종교 행사나 각종 집회가 금지되고 있는 중에 몇몇 종교 공동체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는 과연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법학자의 시선으로 짚어낸다. 로마 시대 의사의 특권과 책무를 살피며 오늘날에도 윤리적, 사회적 책무를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우리 삶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이 있다면 신의 뜻은 ‘작은 것’에 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하는 것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보여 있는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달 간 머물렀던 경험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저자는 그곳에서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
“〈마태오복음〉 18장 10절을 보면, 청년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Ne contemnatis unum ex his pusillis).’ 우리말이나 라틴어 성경으로는 한 번에 감이 오지 않지만, 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보잘것없는(작은)’을 ‘미크론(μικρ?ν?)’이라고 씁니다. 영어 ‘마이크론(micron)’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의 말은 그처럼 보잘것없는 이조차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 작은 이’가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겁니다. 자연계의 모든 ‘작은 것’을 함부로 업신여기는 인간의 마음이, 현재진행형의 시대적 암울함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엄마를 만나고자 하는 어린 형제의 소원이 그렇게 큰 소원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바람 하나 이루어주지 못하는 정치 적, 종교적 신념에 얼마나 더 큰 신의 뜻이 있는 걸까요.”
베드로 회개 성당으로 알려진 ‘닭 울음 성당’을 방문한 저자는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가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자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실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하고, 구시가지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인간으로서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처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저자의 고민과 성찰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현대 사회를 비추고, 공존하기보다 개별적 삶을 우선하며 각박해져가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밖에도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인간 존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고통은 신이 아닌 인간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비롯된다는 지적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선형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역사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을 위하여
“인류의 역사와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아주 서서히 나선형 모양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145쪽)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이 같은 이야기로 문을 연《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역사 속 종교와 신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한국 사회는 경제발전을 위해 나머지 가치들은 무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현재는 그때로부터 벗어나 많은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이 상처만큼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았고, 그 결과 성별간의 논쟁, 종교 간 마찰, 정치적 대립 등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강하게 억눌려왔고,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지금과 같은 마찰은 양쪽 모두 자기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그 속에서 ‘변화의 씨앗’을 보며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와 신을 믿은 인간이 보여준 갈등과 변화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같은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