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랑거리를 찾아서
K-팝에서 K-푸드, K-콘텐츠까지 세계에서 주목받고 인정받는다는 한국. 정작 한국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출생과 세계 1위의 자살률부터 깊어지는 정치적 갈등까지, 걱정거리가 수두룩 떠오르는 한국인에게 《한편》은 한국의 자랑거리를 한번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좋은 점을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나야 제대로 비판할 수 있으니까.
‘한국’ 특별호를 만들며 《한편》이 진행한 설문조사 ‘나에게 한국이란?’에는 600여 명의 독자가 응답해 주었다. 응답자들에게 한국은 답답하지만 떠나기보단 고쳐 쓰고 싶은 애증의 대상이다. 이곳 ‘한국’에서 잘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익숙한 역사와 인물을 낯설게 보고, 오래된 교과서를 새롭게 읽는다.
익숙한 교과서를 새롭게 읽고
역사 속 인물들을 낯설게 보기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탄핵을 거쳐 3년 만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한국’ 호를 여는 글은 한국 민주주의의 계보를 보여 주는 역사학자 김정인의 「아래위의 민주주의」다. 대한제국 시기 입헌군주제 도입을 주창한 개화파와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수입한 이론이 아니라 “인민과 개화파가 함께 빚은 역사”임을 알려 준다. 통번역가이자 정치학 연구자인 아브서브 자울의「《대화》라는 잡지」는 1960~1970년대 국가 주도의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주체의 합리적 공론장을 마련하려 했던 잡지 《대화》를 소개한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상대와 어떻게 차분하게 대화하고 협상할 것인가. ‘그날’ 이후 둘로 쪼개진 한국을 마주한 《한편》의 핵심 질문이다.
한국문학의 여성 인물들을 통해서도 지금 한국 사회를 다시 본다. 편집자 김지현의 「한국, 여성, 문학」은 남성적, 민족주의적 문학사를 성찰하며 여성문학사의 기준을 세운 『한국 여성문학 선집』 편집 후기다. 국문학자 김익균의 「춘향의 그네 노래」는 서정주의 시 「추천사」를 다시 읽으며 춘향이라는 인물을 ‘정절’에서 분리시켜 ‘해방’과 연결 짓는다. 여성문학을 중심에 놓고 문학 속 남성성을 다시 보고, 민족주의를 접어 둔 채 시구를 곱씹을 때 ‘젠더갈등’으로 빨려들지 않는 대화의 공간이 보인다.
다른 한국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지?
내가 동의하지 않는 한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같은 한국에 살고 있어도 성별, 나이, 직업, 사는 곳 등에 따라 한국인은 저마다 다르다. 나와 다른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작가 영이는 「빈틈에서 읽는 한국사」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학에서 누락된 트랜스젠더의 삶을 조명한다. “잿더미” 같은 현실에서도 트랜스여성의 삶은 기록되고, 그중 일부가 끝내 살아남아 전해진다.
미디어문화연구자 강보라와 문화연구자 최정은 내가 사는 이곳에 애정을 가져 보자고 제안한다. 「“K” 없는 K–푸드」는 ‘ K-푸드’를 매개로 한국문화가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매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한국인들에게 SNS를 점령한 음식 이미지에 압도되거나 빠른 유행에 피로해지지 않고 음식문화를 즐길 객관적 시선을 제시한다. 「노잼도시가 어때서?」는 지역언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잼도시’ 담론을 분석하고 이에 대항하는 담론을 꺼내놓는다. ‘노잼’으로 수렴되지 않는 지역의 이야기는 복잡한 지방 문제를 직면할 용기를 준다.
시야를 넓혀 국제 관계 안에, 다른 국가 옆에 한국을 놓아 보자. 외교학 연구자 오승희의 「대한민국의 인정 투쟁」은 일본, 중국, 북한 등 주변국과 대한민국의 관계 변화를 인정 투쟁 개념을 통해 살펴본다. 주권을 박탈당한 1905년,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재설정한 1965년과도 다른 위치에 있는 문화강국 한국이 맺어야 할 ‘상호 인정’의 외교를 상상해 본다.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의 「지금 우리에게 베트남전쟁」은 2025년 한국인에게 베트남전쟁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불의의 한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이미 저질러진 과오와 눈앞의 피해자들을 마주해 “동시대적 고민을 함께 해 나가자”고 제안하는 마지막 글이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7호 ‘한국’ 표지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가애 작가의 「고 와일드: 동물카드」다. 두 눈을 부릅뜬 종이호랑이와 변화를 준비하는 듯한 곰의 자세가 어떻든 앞으로 나아가는 한국의 기세를 보여 준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 ‘플랫폼’, ‘우정’, ‘집’, ‘쉼’, ‘독립’, ‘유머’, ‘한국’에 이어 2025년 9월 ‘축제’를 주제로 계속된다.
■ 필진 소개(게재 순)
김정인
춘천교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 3부작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모두의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 대학사를 다룬 『대학과 권력』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는 알라딘에서 ‘21세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아브서브 자울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한국어 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한국어 통번역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논문으로 「잡지《대화》(1965~1977)의 형성과 변화」(2024), 「제2공화국 전후 정권 교체기 한미관계에 관한 연구」(2012)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바하르 알리예바 공저, KOREYA TARIXI VE CEMIYYETI (한국 역사와 사회)(SimSim publishing, 2023)가 있다. 번역서로 MUSTEMLEKEUSAGI (식민지 소년)(Qanun publishing, 2023), KOREYANIN YENI VE EN YENI TARIXINE BIRGE NEZER(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공역, Qanun pubishing, 2021)가 있다.
김지현
7년 차 한국문학 편집자. 민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 여성문학 선집』, 『무지개 눈』, 『치치새가 사는 숲』, 『백합의 지옥』 등을 편집했고, 문학잡지 《릿터》를 만들고 있다.
김익균
2010년 《시작》으로 평론 등단. 저서로 『서정주의 신라정신 또는 릴케 현상』과 『오장환 연구총서』, 『근대 한국의 문학지리학』, 『미당 서정주와 한국 근대시』 등의 공저가 있다. 그중 『서정주의 신라정신 또는 릴케 현상』은 2025년 알라딘 ‘21세기 최고의 책’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우수논문 사후 지원을 받았던 「서정주의 체험시와 ‘하우스만-릴케·니체-릴케’의 재구성」 등이 있다. 문예지 《시와사람》, 《시와 반시》, 《발견》, 《불교문예》 등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예술사를 졸업하고 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드라마터지를 맡았다. 2023년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서 「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으로 수상했으며, 웹진 《연극in》에 비평을 게재했고 《게임제너레이션》에 비평을 게재하고 있다. 『호르몬 일지』를 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