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상자들로 가로막힌 대한민국의 풍경
얼마 전 공개된 전 세계 대표 관광 도시들의 상징적인 건물 스탬프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밴, 베이징의 자금성,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꼽힌 건축물이 한강변을 따라 빼곡하게 늘어선 성냥갑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들은 도시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아파트를 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리고 거대한 아파트 숲은 수도권과 경기도 일대를 넘어 전국으로 번졌다. 국민의 60%가 아파트에서 그 가격의 등락에 몸을 기댄 채 살아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비난을 피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왜 하필 아파트에 살게 되었으며, 또 아파트는 어떤 집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마저도 건축학이나 주거학이 아닌 사회학이나 언론 같은 분야에서 먼저 관심을 기울였지, 정작 오늘의 한국 아파트가 생겨나 진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이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자타공인 아파트 전문가 박철수 교수는 지난 35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형 아파트의 탄생비화부터 강남 중산층과 아파트 단지의 결합, 공적 투입을 최소화하는 단지 개발의 정치경제학, 발코니 확장과 공정사회 등 내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단지'식 개발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논의를 단초를 제공한다.
최초의 아파트 논쟁
아파트라는 용어는 1925년 『조선과 건축』에 실린 '동윤회의 아파트먼트'라는 제하의 기사로 3층 콘크리트 아파트 건설계획이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초의 아파트가 무엇이었는지 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는 당시 유입된 아파트를 내진내화 성능을 갖춘 3층 이상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수도·전기·가스·수세식 변소 같은 근대적인 설비를 갖추고 독립된 생활을 보장하는 단위주택을 근대적인 가로체계에 따라 도로와 면하도록 배치한 근대 건축물로 정의하고, 이 조건에 따라 1930년 충정로3가에 건설된 유림아파트를 최초의 아파트로 지목한다. 그리고 광복 이후 최초의 아파트 논쟁에 대해서는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중앙산업이 건설한 4층 4개 동 총 152가구(각 가구 면적은 17.3평)의 종암아파트를 대답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해방 이후로 범위를 한정하는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아파트는 식민지 수탈을 위한 도구였으며, 또 일본인의 역량으로 만들어졌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마치 1941년 5월에 일본에 설립된 일본주택영단을 모델로 같은 해 7월에 우리나라에 설립된 조선주택영단과, 이를 모태로 1963년 7월 설립된 대한주택공사가 사실상 같은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한국토지공사와 합병해 LH공사로 이름을 바뀐 대한주택공사의 설립 시기를 애써 1963년으로 보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59쪽)
아파트단지 개발의 배경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마포아파트단지 준공식 치사(책 79쪽)는 당시 고층아파트 공급정책 이면에 숨어 있는 문화·정치적 상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포아파트단지 개발 사업(1962~1934)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부로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거지 고층화 시도였다. 쿠데타 세력은 아파트라는 현대적 시설을 내세워 불합리한 전통생활양식을 현대적 집단공동생활양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연장하고자 했다. 또한 그곳에 사는 입주자들에게 선진국의 국민들과 동등한 문화시민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동시에 반공태세의 강화를 시도했다. 마포아파트는 기존의 주거 형식과 판이하게 다른 고층주택이라는 점에서 대중에게 매우 낯선 생활방식이었지만, 고밀고층주택 건설은 도시의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때 정해진 기조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 주택정책을 지배하는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서울시에 75개 동, 전국적으로 750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전까지는 생소했던 '단지'라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한다. 특히 1972년은 강남 일대의 아파트들이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의 주거지로 자리매김하는 분기점이 됐다. 그 해에 민간건설사의 아파트 개발 사업에 공공자금의 지원을 제도화한 주택건설촉진법과 영동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특정지구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었고, 1976년에는 아파트 지구로 지정된 곳에는 다른 유형의 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까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개막된다.
"정부의 공간 기획, 새로운 중산층, 그리고 민간 건설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렇게 맺어진 정부와 민간의 밀월 관계는 오늘날에도 강력히 연대하면서 정책과 제도로 유지되고 있다."(94쪽)
그 결과 여의도와 영동 일대 개발이 촉진되었고 압구정동을 포함한 한강변 일대는 아파트 중심의 신중산층 집단 거주지로 탈바꿈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에만 단지당 평균 470호에 달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18개가 들어서고, 한강 이남에 총 11개 지구 372만 평에 이르는 땅이 아파트지구로 개발되었다.
문제는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는 상가, 주차장, 어린이놀이터, 경로당, 보육시설, 주민운동시설, 관리사무소 등 아파트단지 거주자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주택과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 시설이나 공간의 설치비용은 물론 입주자의 부담이다."(138쪽)
저자는 단지식 개발 안에 담긴 공간정치학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정부는 법률이라는 절대적인 공권력을 행사해 단지에 공동 거주에 필요한 부대시설과 편의시설 일체를 입주자의 부담으로 확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의 거주자가 집 앞 도로의 가로등이 고장났다고 해서 자비로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아파트단지만은 관리비로 이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결국 공공의 재원으로 담당해야 할 도시기반시설 확보를 사적 비용으로 해결토록 전가한 것이 아파트단지 개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똑같은 논리가 교육과 보육, 건강 부문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개발 정책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아파트단지가 거주자들의 무리지음과 서열화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는 비난이 일면서 주택정책 입안자들은 아파트 문제의 해결책으로 타운하우스와 블록형 단독주택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공간구조라는 측면에서 타운하우스나 블록형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모두 '단지'라는 점에서 결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라진 발코니와 전용면적이 빚어낸 마술
저자는 한국 아파트의 또 다른 특징은 발코니 확장과 고무줄 같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평면구성을 든다. 2005년 12월을 기점으로, 발코니는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에서 당연히 확장되어 거실이나 방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사적 공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정부는 이미 발코니 확장이 만연한 상황에서 건설 당시부터 건물의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고 주거 편리성을 제공한다는 논리로 구조변경 합법화 조치를 단행했다. 이제 발코니 확장을 통해 전용면적의 70% 이상의 추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건설업체는 주택 시장이 활황일 때는 서비스 면적을 줄여 이윤을 늘리고, 주택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서비스 면적을 늘려 판매를 촉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