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하고 홀대 받던 육체,
근대와 만나 다시 태어나다!!
웰빙, 다이어트 열풍의 기원을 찾아,
100년 전 조선으로 간다!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자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어떤 몸을 가졌는가’가 그 개인의 능력과 지위, 나아가 품성까지 규정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웰빙 열풍이나 다이어트 중독, 건강 염려증, 성형 중독이 유행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한때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몸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 건강이나 몸매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으니, 오랜 역사 속에서 육체는 은밀하거나 하찮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육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해졌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30대 여성 학자가 개화기 조선 사회 곳곳을 누볐다. 이 책은 그 흥미진진한 여정의 결과물이다.
★ ‘육체에 사로잡혀 있던 나’로부터 출발한 연구
지금은 얼짱, 몸짱이라는 말이 어느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대, 아름다운 육체가 곧 자본이 되는 시대다. 연예인의 쌩얼이나 학창 시절 사진을 (성형 수술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타인의 육체에 대한 평가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희한한 풍토까지 만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 아니 모든 국민들이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러나 현재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게는 쌍꺼풀 수술부터 안면 윤곽 교정, 지방 흡입, 근육 퇴축술, 전신 성형까지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성형 수술을 했다는 사람들을 두고 은연중에 비난 아닌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나도 손봐야 될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얼굴이며 몸매를 꼼꼼히 뜯어보는 것은 결국 온 사회가 개인의 육체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지대한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언제부터 사람들은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생김새로 개인의 품성을 규정하고, ‘체력이 국력’이라 믿으며, ‘몸짱’이 최고의 목표인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여기 30대 초반의 한 여성 연구자가 있다. 그녀는 “한시도 다이어트나 미용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하고, 건강 염려증에 사로잡혀 의학 관련 기사나 지식에 휘둘리곤” 했다. 누가 딱히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근면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결혼이나 출산 문제를 염려”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됐다. “왜 나는 몸을 통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의해, 몸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들 속에서 이 책의 테마 ‘육체의 탄생’이 탄생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가 이토록 ‘몸속에 갇혀’ 살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 그것이 이 글이 목표로 삼은 것이다.―이영아(「들어가며」 중에서)
1976년생인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고백하길 “항상 좀 ‘늦된’ 인간이었던” 저자는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완전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를 하던 중, 한 선배가 던진 짧은 말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해, ‘학문을 한다는 것’과 ‘이영아가 학문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선배가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학문을 한다는 건 자기모순을 해결해 간다는 거야.” 저자 이영아가 두려움을 이기고 직면한 ‘그녀의 자기모순’은 ‘육체의 문제로부터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었다.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논문 「신소설에 나타난 육체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였다. 저자는 이 논문으로 2005년 채 서른도 되지 않은 기록적인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는 한 연구자가 그만큼 자신의 연구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그런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그 후에도 저자의 관심은 ‘근대의 몸’에 관한 담론 및 문화 연구에 집중되었고, 2007~2008년에는 태평양학술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고민을 국문학 연구자들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더해 고심 끝에 내놓은 책이다. 상아탑 안에 갇힌 학문이 아닌 그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 탐구를 하고 싶다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연구와 글쓰기를 ‘신나게’ 하고 싶다”는 저자의 포부를 그녀의 첫 번째 저작 <육체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근대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 육체, 그 탄생의 현장 개화기 조선을 목격하다
이제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권미(美)징추(醜)가 새로운 도덕률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이토록 육체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은 우리가 육체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그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는 서양 문명과 제국주의를 맞닥뜨린 조선이 육체, 육체적인 것을 인식하고, 탐구하고, 관리하고, 욕망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대중이 즐겨 읽던 신문, 잡지, 소설 등을 통해 이러한 흔적들을 살핀다.
● <육체의 탄생> 본문 맛보기
1 몸의 탄생
한때는 정신보다 덜 중요했고, 그저 은밀하거나 하찮은 것이었고, 딱히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었던 몸이, 어느덧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죽은 듯 숨어 지내던 몸이 새로이 생명을 얻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 사회에서 몸이 이다지도 중요해진 것일까?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그 균열의 지점을 찾아 개화기 조선 사회로 찾아간다.
2 몸 공부하기
몸이 중요해졌으니, 이제는 그 구석구석을 공부해야 할 차례다. 생김생김은 어떠하며, 병들고 상한 몸과 건강한 몸의 차이는 무엇이며, 이 몸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몸 공부하기는 의학에서부터 출발해, 근대의 지식 체계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등장한 신종 학문들(박물학, 생리학, 위생학 등)은 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3 몸 관리하기
체력은 국력이고 건강한 육체라야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제 건강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개인의 몸을 관리해 줄 만큼. 그렇다면 개화기 그 시절에 ‘건강한 몸 만들기 실천 계획’은 어떤 강령들을 제시하고 있었을까. 학교, 군대, 가정 어디서나 권장되었던 체력 단련 및 생활습관 그리고 성생활에 관한 지침을 한번 구경해 보자.
4 몸 이야기하기
사회적으로 학술적으로 중요해진 몸이 문학에서라고 소홀히 다루어졌을 리 없다. 우리나라 근대 서사물의 시발점이었던 신소설 가운데 ‘몸’이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다. 문학이라는 허구의 세계 안에서 ‘이야기되는’ 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당시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읽어 본다.
5 몸 욕망하기
‘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바로 ‘섹슈얼리티’다. 건강한 몸도 중요하지만 성적 매력이 넘치는 몸도 중요하다. 성은 사적인 것이고 은밀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 등장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글쓰기라는 공적인 행위를 통해 사적인 것을 침범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개화기 신소설에서는 이 사적인 문제, ‘성적인 육체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 조상과 후손을 위해 존재하던 몸에서 국가의 영달을 위해 존재하는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