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레레

김안 · 詩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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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중앙시선' 34권. '자폐적인 독백이며, 절망'이자 '신적 황홀로 가득한 언어들'로 고유한 서정성을 펼쳐온 김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언어라는 육체, 시라는 애인에 대한 농밀한 외설과 사랑을 감행하던 시인은 이제 당신과 나를 둘러싼 사회를 향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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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ビュー

7

目次

1부 사람 囊 백지 사랑의 역사 서정 식육의 방 이후의 방 시놉티콘 복화술사 살가죽부대 두려움의 방 이암 나의 이데아 동백 이명 비문 2부 측백 메멘토 모리 마리포사 자백의 기술 구주 검은 목련 치차의 밤 문화당서점 기억 후의 삶 맹동 홀로코스트 시취 일요일 일요일의 혀 폭설 연흔 3부 미제레레 소하동 지상의 방 개미집 선이 너무나 많지만 촛불이 만지는 밤 수목장 이후의 삶 지빠귀를 시작할 것 금언기 국가의 탄생 육식의 날들 실낙원의 밤 맹목 회음 우리의 물이 가까스로 투명에 가까워졌을 때, 불가촉천민 환절기 해설·시민-시인의 자격으로 쏘아 올린 물음들_조재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공동체 속에 투척하는 최후통첩 지적인 방식으로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진한 서정성이 남는다. ― 조강석 문학평론가 “자폐적인 독백이며, 절망”이자 “신적 황홀로 가득한 언어들”(박상수 시인, 문학평론가)로 고유한 서정성을 펼쳐온 김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미제레레』(문예중앙시선 034)가 출간됐다. 언어라는 육체, 시라는 애인에 대한 농밀한 외설과 사랑을 감행하던 시인은 이제 당신과 나를 둘러싼 사회를 향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높인다. 이 국가, 이 도시의 시민인 시인은 자신이 복무하고 있는 쓰기와, 그에 요구되는 온갖 윤리들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한 개인일 뿐인 시민-시인에게 정의란 사치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에게 정의는 사치일 뿐이에요. 정의가 단 한 번도 그들을 보호해주질 않았으니까요”(「살가죽부대」)라는 구절은 오늘날 정의라는 단어가 위정자들에 의해 어떻게 허위로 변질되었는가를 고발하는 서슬 퍼런 대목이다. “서로 다른 신들의 목소리로부터도/더욱 공평해지는 악(惡)들로부터도”(「이후의 방」) 자신의 방을 지켜내겠노라 선언하는 시인에게 ‘시 쓰기’는 사회와 몽상과 윤리가 서로 뒤엉키는 난투의 장이 된다. 그 난투 끝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탄탄한 어둠과 힘찬 우울, 명료한 비탄의 세계”(조재룡 문학평론가)이다. 주여, 사람을 불쌍히 여기소서 왜 사람이어야 합니까,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것이. 왜 군중들은 범죄자에게 네가 사람새끼냐, 라고 외칩니까, 언제 한 번 사람인 적이 있었다는 듯이. 그들을 향해 노동하는 시체, 라고 말한 이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 「사람」 부분 김안 시인은 “차라리 사람 아닌 것이 되고 싶었던 시절의 흔적들”(『오빠생각』 시인의 말)을 지나 “왜 사람이어야 합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집의 문을 열어젖힌다. 첫 시집에서 생활 밖에 있던 애인이 이제는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당신과 나를 생각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생각한다. 가정과, 가정의 행복과, 국가라는 평화와, 평화의 공포를”(「시놉티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설을 쓴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미제레레』를 “시민의 자격으로” 목소리를 내는 시인의 설의와 물음으로 읽는다. 조재룡 평론가는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을 언급하며, “말에 의해 생산된 것이 틀림없는 모든 것(플라톤)에 가장 주관적인 힘을 부여하고,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줄 자가 바로 시인이었기에, 저 철인정치의 수호자의 눈에 그들(시인)은 가장 위험한 존재로 분류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김안의 시는 “앙가주망을 외치면서 정치의 한 귀퉁이를 멋지게 돌아 나왔다고 생각하는 저 도덕률로 가득한 시”는 아니다. 시민으로서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런 부류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제 의식에 합당한 언어를 궁리하며, 세계의 경이와 우울, 놀람과 실망, 악과 선, 신비와 상처를 이 사회의 풍경 속에서 열어 보이”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언어의 투쟁을 자신의 방에서 전개해나간다. “공동체라는 것은 얼마나 깨지기 쉽던가. 이 밤이 지나면 자네는 자네의 공동체로 나는 나의 얼음 속으로 돌아가겠지.”(「자백의 기술」)라고 말하는 시인에게 방은 ‘백지’이며, “당신이라는 쓰기”(「복화술사」)를 만나는 곳, 나를 비롯한 온갖 죽은 것들에 대해 쓰는 공간이다.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는, 믿기 어려운 이 세계에서 “죽은 것만이 진실”(「백지」)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나의 쓰기라는 것은 이 싸구려 멜랑콜리와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할 만큼 굳어져버린 당대의 심장 사이에 있는 것”(「메멘토 모리」)이라 중얼거리며 죽음을 기억하는 그 순간, “사라져버린 사물과/죽은 영웅의 세계가 창백하게 얼어붙어”(「미제레레」) 있는 그 진실의 방에서 미제레레―죽은 이를 애도하는 성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 시편:50 눈을 감으면 그 방은 그곳에 있었다. ― 뒤표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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