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칸디나비아 5인방을 명쾌하게 해부한다
이 책은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10년 동안 북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그곳을 답사하고, 인터뷰하면서 써내려간 ‘북유럽 장기 체험담’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유하며, 복지제도와 남녀평등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실현된 곳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5개국이다. ‘휘게, 폴켈리, 라곰’, 즉 ‘느긋함, 아늑함, 유쾌함’은 그들의 삶이 유토피아에 근접해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당신의 지인 가운데 북유럽에 이민을 가는 사람이 있는가? 이탈리아, 남프랑스, 스페인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대신 북유럽에 별장을 마련하겠다는 사람이 있던가? 실제로 여행지에서 스칸디나비아인을 만나면 루터교 신자다운 신뢰감은 줄지 모르나, 웃음기 없는 비사교적인 그들의 성격은 호감을 사는 데 실패하곤 한다. 덴마크 상점들을 훑어보자. ‘구두’ ‘빵’ ‘헤어’라고 써놓은 상상력 제로의 간판들은 소비자의 감각을 끌어당기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해버린 것만 같다.
이 책의 작가 마이클 부스는 세계 50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는데, 그가 보기엔 덴마크인, 스웨덴인, 핀란드인, 노르웨이인은 세계에서 제일 안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상위 25퍼센트에 들어가야 할 듯싶다. 이처럼 각종 사회적 지표와 주관적 경험의 괴리 사이에서 그는 북유럽 행복 현상을 깊이 파고들기로 결심한다. 이들 나라에서 마이클 부스는 평범한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와 인류학자, 언론인, 소설가, 예술가, 정치인, 철학자, 과학자, 요정 연구가와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북유럽 사람들 일부는 자기 나라의 밝게 채색된 면을 강조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흔들리는 동공(눈빛)과 모순된 발언 사이에서 빈틈을 파고든다. 이것은 북유럽 르포를 쓰는 기자로서 당연한 임무다. 북유럽인들이 세계의 모범이 될 만하다면, 빈틈을 찾아내 더 완벽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도 더 좋은 롤모델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삐딱한 시선을 갖고 출발하지만 이 책은 그러나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결국 스칸디나비아 5개국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유일한 사람들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덴마크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4월의 어느 어둑한 새벽, 코펜하겐에 있는 집에서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다, 담요를 두른 채 아직도 봄은 멀었나 추위에 떨면서. 그때 머리기사가 시선을 낚아챘다. “덴마크, 삶의 만족도 지수 세계 1위!” 오늘이 만우절인가? 이 어둡고 축축하고 따분하고 생기 없는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금욕적인 데다 세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이 나라가? 한편 미국은 23위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가 쏟아지는 항구 주변엔 방수복을 입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보행자들과 우산으로 서로 밀쳐대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달리는 트럭과 버스가 튀기는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난 아침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지난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날 슈퍼 직원은 값은 겁나게 비싸지만 질은 별로인 제품을 팔면서 내게 눈곱만큼의 친절도 베풀지 않았다. 집에 오니 세금고지서가 날아와 있었다. 내 소득에서 깜짝 놀랄 만한 액수를 뜯어가겠다는 정부의 통보였다(덴마크는 세계에서 세율이 가장 높아 직간접세를 합하면 소득의 최대 72퍼센트가 세금으로 빠져나간다).
2009년 오프라 윈프리는 마치 로마 교황처럼 코펜하겐을 찾아 “사람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카페 밖에 세워둔 채 엄마들끼리 이야길 나누고…… 누구도 아등바등 살려 하지 않는” 나라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덴마크는 2012년 갤럽 조사, 세계가치조사, 유럽가치조사, 유럽사회조사를 합계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 번만 1위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1973년 이후 내내 1위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순위권을 점하고 있다. 핀란드 2위, 노르웨이 3위, 스웨덴 7위. UN 인간개발지수에서는 노르웨이가 1위를 차지했고, 『뉴스위크』는 핀란드의 삶의 질이 전 세계 1위라고 보도했으며,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는 스웨덴이 1위에 올랐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날씨는 여전히 지랄 맞느냐고? 빙고. 세율은 여전히 50퍼센트를 넘고? 당연한 말씀. 가게는 갈 때마다 닫혀 있고?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현대의 바이킹 문화는 전례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딜 보나 이들 국가가 ‘약속의 땅’임을 확신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이 추운 잿빛의 북쪽 땅에 살면서 다른 얼굴을 봤다. 당연히 스칸디나비아의 삶에는 모범적인 면이 많고,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배워야 할 점이 숱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그림자도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만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자신들 나라의 행복 현상을 파헤치겠다는 나의 계획에 곤혹스러워했다. “왜 사람들이 우리를 알고 싶어하죠?” “우리는 하나같이 정말 따분하고 딱딱합니다. 차라리 남유럽이 어때요?”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실용적이고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한없이 지루한 데다 상대의 호기심을 확 꺾어놓는 겸손함(?)의 극치를 보인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쯤 존재하는 걸까.
유토피아에서 아주 살짝 어긋난
북유럽 5개국은 샘날 정도로 부유하고 평화로우며 화목하고 진보적인 나라다. 이런 전제를 밑에 깔고 여기선 장밋빛과 회색빛이 섞인 모습 몇 가지를 들여다보자.
내 경험상 세상에서 덴마크인만큼 사교적인 국민도 없다. 근사한 것은 이들이 나이, 계층, 세계관을 불문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점이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갔더니 저쪽에서 TV 쇼 진행자가 지붕 수리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바로 뒤에선 국회의원이 딸기농사꾼과 핸드볼 경기 승률을 놓고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처럼 평등은 그들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국민은? 틀림없이 핀란드인일 것이다. “저는 스웨덴인도 아이슬란드인도 믿지 않지만, 핀란드 사람은 언제든 믿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한 외국인의 발언은 믿을 만하다. 저자인 나도 고백컨대, 핀란드는 환상적이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으며, 핀란드인이 세상을 정복하면 완전 행복할 것 같다.
한편 지구상에서 가장 말없는 국민이 핀란드인이기도 하다. 핀란드 남자들의 과묵함은 최고인데, 애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핀란드인들은 다른 식으로 애정을 표현해요. 가령 남편이 세탁기를 고쳐주는 방법으로요.” 말없기로는 노르웨이인도 뒤지지 않는다. “노르웨이인들은 말도 못하게 따분하죠.” 한 아이슬란드인의 증언이다. 노르웨이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혼자 지내는 경향이 있다. 스웨덴인은 어떨까. ‘침묵’은 스웨덴의 국민적 악습이다. 한 영국 기자는 “나는 스웨덴인보다 서로 대화를 안 하는 나라에 살아본 적도 없고, 그런 나라를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즉 대화 쪽으로는 제일 답답한 파트너로는 핀란드인이 1위이고, 스웨덴인이 그다음이다.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이 그 뒤를 바짝 쫓는다. 덴마크인은 그 부분에서는 스칸디나비아답지 않게 거의 남유럽 사람 같다. 핀란드 등의 이런 면모는 사실 ‘한없이 지루한’ ‘퉁명스러운’이란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의사소통을 할 때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발휘한다.
복지제도를 잘 갖춘 나라들의 그늘은 ‘나태지수가 높다’는 데 있다. 너무 오래 잘살다보니 전투의지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덴마크는 나태지수가 OECD 2위다. 형제 국가 스웨덴인이 진보적 사회 의제를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덴마크인은 후퇴했다. 게다가 복지가 워낙 잘 돼 있다보니 덴마크인은 ‘미루기 대마왕’들이다. “아이 학교에 일이 있다” “치과 진료가 있다” 등등 변명은 끝없어 덴마크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노르웨이에선 ‘메이드 인 노르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르웨이인 생산 연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