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

앙리 보스코 · 小説
3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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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7권. 프랑스 작가 앙리 보스코는 아비뇽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치며 3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여러 문학상을 탄 작가다. 그의 신비로운 소설 <이아생트>(1940)는 <반바지 당나귀>(1937), <이아생트의 정원>(1946)과 더불어 3부작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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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3

目次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성(聖)가브리엘 고원 늪터 불 이아생트 회복기 돌아온 이아생트 정원 그 옮긴이의 글 앙리 보스코 연보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이아생트'의 탄생 나는『이아생트』를 읽고 또 읽었다. 그 감명이 동일했던 때는 결코 없었다. (…)『이아생트』의 30쪽 정도를 한 줄 한 줄 주석해나간다 하더라도 섬세하면서도 심오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중에서 프랑스 작가 앙리 보스코는 아비뇽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치며 3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여러 문학상을 탄 작가다. 그의 신비로운 소설 『이아생트』(1940)는 『반바지 당나귀』(1937), 『이아생트의 정원』(1946)과 더불어 3부작을 이룬다. '이아생트'라는 한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이 소설에서 이아생트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책의 3분의 1이 넘어갈 무렵이다. 갈리마르 출판사 폴리오판에 실린 서문은 3부작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콩스탕탱과 이아생트라는 두 아이는 남다른 모험을 겪으면서 지혜와 사랑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게 되는데, 그러기에 앞서 마법사 시프리앵의 주술을 벗어나야 한다. 권능을 탐하는 마법사 시프리앵은 신의 작품이 불완전하며 인간들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이 세상에서 재창조하고자 하며, 두 아이를 그의 지상 낙원의 최초의 피조물들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영혼들에 대한 초자연적 지배력은 있다 해도,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반면 콩스탕탱과 이아생트는 차츰 사랑을 경험하게 되며, 사랑이야말로 그들의 삶의 방향을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아생트란 불가능하고도 불가결한 사랑, 인간들과 신의 비밀인 사랑, 그것 없이는 어떤 삶도 현실성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의 비밀인 사랑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막상 작품을 읽어보면, 이아생트를 둘러싼 세 편의 이야기는 그리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반바지 당나귀』가 동화적인 분위기 덕분에 청소년 도서로 발간되기도 하는 데 비해 『이아생트』는 작가의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며, 3부작을 완결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이아생트의 정원』 역시 또 다른 의문들을 낳는다. 즉 여느 3부작과는 달리, 이 세 작품에는 별로 일관성이 없다. 『이아생트』가 『반바지 당나귀』의 후속작이며, 뒤이은 『이아생트의 정원』과 함께 3부작을 이룬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 이미 『반바지 당나귀』를 읽은 독자라 하더라도 이 세 작품에서 일관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반바지 당나귀』는 열두 살 난 소년 콩스탕탱 글로리오의 시점에서 산 위의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동경을 그리는 데서 시작하여, 거친 자연을 길들여 그 지상 낙원을 건설한 마법사 시프리앵이 소년을 후계자로 삼으려다 좌절하자 소년의 집에서 자라던 어린 고아 소녀 이아생트를 유괴하여 사라진다는 열린 결말로 끝맺는다. 그러니 이아생트가 다시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 후일담을 기대함직도 하지만, 실제로 『이아생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3부작은 그 연대와 줄거리가 조금씩 어긋난다. 이는 30여 년 전 『이아생트』를 발견하고 오랜 시간 거듭 읽으며 옮겨온 번역가 최애리가 「옮긴이의 글」 에서 분석했듯, "미리 정한 바대로 지은 소설"을 기피하는 작가의 소설관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보스코가 소설에 관한 강의를 위해 준비했던 원고에 의하면, "소설은 써나가는 동안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 살아 있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반바지 당나귀』를 발표한 이후 보스코는 독자들로부터 소설 말미에서 사라진 이아생트의 행방에 대한 질문을 받기 시작해, 결국 그 역시 이아생트의 행방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가진 바 없었으므로" 소설가는 "탐험"을 떠나는데, 이 탐험은 『반바지 당나귀』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었으니, 그는 전작과는 정반대의 풍경을 그려나가며 『이아생트』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눈 덮인 벌판에 문득 드러난 발자국. 이름 모를 화자의 집 주변에 나타난 발자국의 주인은 한 여자가 된다. "소설가는 마음속에서부터 그녀가 누구인지 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이아생트!라고." 기다림 끝에 비로소 나타난 이름."지옥에서의 한 철"과도 같은 "정련된 진수", 『이아생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기다림에서 기다림으로 거기서 나는 등불을 보았다. 나를 붙잡은 것은 그것이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말 없는 다정함으로 바라다보았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켜놓은, 내 등불이었다. 그 따스한 불빛 아래서 그처럼 밤늦도록 깨어 있는 그 사람을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그리기에 이르렀다. 때로는, 그러한 유사성을 넘어서, 겨울밤의 유일한 별이 빛나는 라 주네스트의 그 창문 뒤에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명상에 잠겨 있을 그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도 했다. 나 자신, 그러나 내가 모르는, 나를 사로잡기 시작한 나 자신이었다. (본문 23~24쪽) 들판 건너편에 자리한 집(라 주네스트) 창문에 켜지는 등불에 관한 묘사로 시작하는『이아생트』는 화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지난여름부터 성가브리엘 고원의 두 집 중 한 집(라 코망드리)에 머물기 시작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을 잃어버린 이 익명의 존재는 내적 공허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흔적들을 찾아 헤맨다". 좀처럼 맥이 잡히지 않는 그의 행보는 신비함을 증폭시키고, 그 가운데 찬연히 드러나는 몽상적인 문장들은 라 주네스트 창가에 켜진 등불이 이름 모를 화자를 매혹하듯, 아득하고도 분명한 빛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실상 『이아생트』의 대부분은 이아생트가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보스코는 이 화자에 대해 『이아생트의 정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불안에서 생겨난 구름에 뒤덮여, 환상과 꿈과 황홀경과 절망에 온통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자기 영혼이 바라보는 대상과 영혼 자신을 더 이상 구별하지도 못한다." 작가의 강연 원고에 따르면 바로 보스코 그 자신이었던 화자는 자신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다른 이가 켜놓은 등불의 기다림에 기대게 된다. 이처럼 기이한 기다림의 구도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겨울밤, 정확히는 성탄절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에, 이아생트는 라 코망드리의 문을 두드린다. (…) 하지만, 그녀가 사랑을 호소하는 영혼의 모습이 확연해질수록 화자는 자신이 그 영혼이 아님을 깨닫게 되며, 마침내 환한 달빛 속에서 그를 정면으로 마주한 이아생트는 자신의 착각을 발견하고 떠나가버린다.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인가! 화자가 상상한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 속 소녀 이아생트는 자신도 그 고향을 찾아 돌아오지만, 그가 지어낸 상상 속의 고향으로는 그녀를 맞이하지 못한다. 내적인 공허는 대상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되고, 간절한 기다림은 주문(呪文) 과도 같이 미지의 대상을 불러오지만 - 이아생트는 그렇듯 전 존재를 건, 절대 동경의 이름이라 할 것이다 - 그 대상을 맞이할 실체는 없는 것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즉 이아생트는 (등불의) 기다림에 더해진 (화자의) 기다림이 불러낸 대상이다. 이러한 등불들, 즉 기다림들이 비추는 자리마다 드러나는 화자의 고뇌와 번민, 방황은 읽는 이를 이끄는 새로운 등불들이 된다. 아래의 인용은 도입부에서 화자가 자신이 머무는 집이 거한 땅 아래에 펼쳐진 정신적인 지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땅 아래에 정신적인 지세(地勢)가 펼쳐져 있는 것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바위, 진흙, 물, 나무, 인간 그리고 짐승만으로는 그러한 지세를 만들어내기에 충분치 못하다. 거기에는 신비로운 만남들, 이 요소들 사이에서 감지되는 미지의 조화, 그리고 알지 못할 지하의 자장(磁場)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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