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전의 한 인간으로 남긴 생생한 육성!
7세부터 75세까지, 카미유가 주고받은 편지들
‘로댕의 연인’으로, 광기 어린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역사에 묻힐 뻔한 이 예술가의 존재는, 1979년 그녀의 남동생 폴 클로델이 한 트렁크 분량의 자료들을 역사학자 자크 카사에게 넘기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 뒤 영화 <카미유 클로델> 등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카미유의 이미지는 다분히 사랑과 실연, 광기로 한정돼 있다. 그녀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자극받고 감동했으며 그녀는 페미니즘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카미유의 자료를 조사하고 해석해왔으나, 작품 제작 연도와 일대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녀가 주고받은 편지가 선택적으로 인용되면서 윤색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은 현존하는 모든 편지의 원문을, 정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카미유가 7세부터 75세까지 주고받은, 개인과 기관에 흩어진 편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무엇보다 서명과 주소를 포함한 전문을 가감 없이(밑줄까지 그대로) 실었다는 점, 상세한 주석을 통해 카미유와 그 작품을 총체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책을 펼치면 편지 아래 덧붙인 꼼꼼한 주석이 눈길을 끈다. 주석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인물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인용하는 한편, 그들의 정보와 당시 정황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분실 혹은 파기된 편지들까지도 수신인과 발신인, 추정 날짜를 기록했다. 주석들은 이 책을 엮은 두 연구자, 안 리비에르와 브뤼노 고디숑이 작성한 것이다. 더불어 작품과 인물 사진 등 도판 83컷을 실어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제야 우리는 카미유 클로델의 온전한 목소리를 접하게 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 예술가 이전의 한 인간인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자.
실연과 광기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예술과 삶을 사랑했다!
카미유 클로델은 열세 살부터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고 열여덟 살이던 1881년, 남동생을 모델로 본격적인 첫 작품을 완성한다. 카미유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에서는 작품에 대한 언급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절친한 영국인 친구 플로렌스 진스를 비롯해 아틀리에 동료 제시 립스콤, 가족 등에게 소소한 안부를 전할 때도 데생이나 조각품의 진전 상황을 언급했다. 일찍부터 생활과 작품 활동이 분리돼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친구와 주고받는 소소한 안부와 추억담은, 우리의 학창시절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카미유 클로델을 이야기하면서, 그녀의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로댕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댕이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에는 절절한 사랑 고백과 함께 관계에 대한 서약, 작품과 처세에 대한 조언 등이 담겨 있다. 또, 로댕을 향한 카미유의 애정이 차츰 냉담함으로, 분노로 변해가는 과정도 읽을 수 있다.
카미유는 1898년 무렵 로댕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는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의욕은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왕성하게 창작에 힘을 쏟아, <클로토> <중년> <페르세우스> <깊은 생각>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등의 작품을 완성한다. 재정적인 후원자가 될 인물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대는 여성 예술가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였다. 이미 대가가 된 로댕을 통해 카미유의 재능을 인정한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었던 듯하다. 카미유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더욱 고되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욕심 많던,
그지없이 외로웠던 조각가의 초상
가족 역시 카미유에게 힘이 돼주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동생인 폴 클로델만이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고 사교 모임도 함께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카미유는 특별한 개인 생활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쏟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료비에, 제작 조수와 주조업자 등에게 지불할 돈이 모자라 허덕이고 집세를 내지 못해 여러 차례 재산을 압류당한다.
편지에서 보이는 그녀는 자존심 강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다. 열정이 컸던 만큼 결핍감과 소외감도 커질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사람에 늘 목말라했다. 조각 없이는 살 수 없었지만, 고달프기만 한 삶에 지쳐 원망 섞인 한탄을 하기도 한다.
카미유가 로댕의 제작 조수였다는 이유로, 당시 평자들은 카미유의 작품을 로댕의 것을 모방한 작품, 혹은 로댕의 작품으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바로 그런 시선이 카미유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점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과 분함, 그것이 그녀를 못 견디게 했다.
정신병원에 갇혀 자유를 갈구한 25년간의 기록
“나의 삶이 꾸는 꿈은 악몽입니다”
힘겨운 가난, 불안한 입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의심 등으로 카미유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녀는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서, “견디기 힘들 때마다 하는 일”이라며 “망치를 들고 조상을 부숴버”린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점차 집 밖으로 나오길 꺼렸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탓으로 보인다. 급기야 1913년, 카미유는 가족의 요청으로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이후 30년간, 즉 사망한 1943년까지 한 번도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정신병원에 감금된 1913년 3월 10일자 편지부터 카미유가 남긴 마지막 편지로 알려진 1938년 12월경의 편지까지, 자신을 내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그녀의 요청은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아틀리에와 작품과 재산을, 로댕 일당이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 등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린다.
카미유의 어머니 마담 클로델은 한 번도 병원에 있는 딸을 찾지 않은 듯하다. 동생 폴이 누이를 퇴원시키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카미유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자료
예술상이자 주조업자 외젠 블로는 정신병원에 갇힌 카미유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애정을 고백했다. 천재 예술가를 잃은 슬픔과 원망, 그리고 위로가 절절히 담겨 있다.
당신은 결국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로댕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솜씨에서뿐 아니라 상상력의 영역에서도 위대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당신의 서명이 있는 첫 주조 작품은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볼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낍니다.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당신을 다시 보는 것만 같습니다. 반쯤 벌어진 입술, 벌렁거리는 듯한 콧구멍, 시선에 담긴 빛, (중략) 당신과 함께라면, 사람들은 허상의 세계를 버리고 생각의 세계를 따라갈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천재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왜 우리에게서 이런 아름다움을 앗아갔단 말입니까?
―1932년(69세), 외젠 블로가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명료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한 문을 두드렸던 카미유 클로델. 그녀는 결국 그 깊은 구렁과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잠들고 말았다. 1943년, 80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라는 외젠 블로의 말처럼,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카미유는 세상의 빛 속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당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그녀를 로댕 못지않은 뛰어난 예술가로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카미유 클로델』은 그녀의 공적?사적 연대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