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불평등에 관하여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의 배후에서
재앙을 팔아넘기는 추악한 위선의 얼굴들
“기후는 절대로 혼자서 행동하지 않는다.
기후는 사회라는 옷을 입고 인간을 만난다.”
제로웨이스트나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같은 이른바 ‘착한 소비’가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기후재앙은 왜 점점 더 심해지고 가속화되는가? 각종 글로벌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녹색 성장’, ‘공정무역’, ‘친환경’, ‘유기농’ 따위의 구호와 라벨을 부착한 제품들을 쏟아내고, ‘윤리적 생산’을 촉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현실은 정작 그 반대로 치닫고 있다.
시종일관 노동의 관점에서 이 책을 써내려간 지리학자 로리 파슨스는 그런 ‘녹색 전망’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글로벌 공급망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파헤친다. 하나의 재화가 더 이상 하나의 국가에서 생산되지 않는 글로벌 생산의 시대에 국내 탄소배출량만을 토대로 ‘탄소 감축’을 외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기업들은 가난한 국가들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환경오염과 기후붕괴를 함께 팔아넘기고, 부유한 국가들은 그런 해외 생산의 폐단을 묵인하며 여전히 자국의 경계 안에서 배출된 탄소만을 집계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친환경과 탄소 감축 노력의 실체다.
저자는 이 낡은 탄소 회계 메커니즘을 추적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캄보디아)의 여러 생산 공장을 누비며 현장연구를 이어왔다. 환경저하와 기후위기가 중립적인 자연 현상이 아닌 ‘거대한 불평등’임을 직시하는 것이 그 논의의 출발점이다. 인상 깊게도 저자는 그간 숫자와 통계 자료, 충격적인 스펙터클로만 전달되어온 기후위기 현상을, (그 현상을 겪는) 한 개인의 삶 자체로 현현한다. 이런 ‘주관성’은 이 책만의 독특한 관점, 즉 기후변화를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직격하는 재앙으로 탁월하게 문제화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저자가 강조하듯, 기후는 절대로 혼자서 행동하지 않는다. 기후는 벽돌 가마와 의류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삶을 통해(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훌륭한 소비’는 왜 실패하는가: 녹색 자본주의라는 환상
“이 모든 것은 글로벌화된 세계의 환경에 관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진실을 가리킨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다.”
더 이상 기후변화가 사실이자 현실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두고 과학자들끼리 유의미한 논쟁을 벌였던 1970~1980년대, 그리고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과연 인간을 지목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던 1990~2000년대를 지나 인류는 드디어 ‘기후합의climate consensus’의 시대를 맞았다. 이제 그 누구도 기후변화가 이미 시작되어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합의의 시대가 열리까지, 홍수, 가뭄, 폭염, 산사태, 허리케인 등과 같은 무수히 많은 재앙이 있었고, 지구의 온도는 매년 꼬박꼬박 상승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여론의 지형 자체가 바뀌자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도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경제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경제 확장을 포기할 수 없는 글로벌 기업이 택한 해결책은 한마디로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위장술이었다. 그린워싱은 말 그대로 친환경을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와 거리가 먼 경영/생산을 지속하는 기업의 관행을 꼬집는 용어로, 기업이 제시하는 광고 및 홍보 문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환경 논의는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아닌 오직 지속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게다가 그린워싱 기술은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있어서 “새롭게 글로벌화된 오늘날의 경제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지속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품에 열광하며, 글로벌 기업은 그 기대에 부응해 진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친환경 이미지에 대한 홍보에 집중한다. 그 덕택에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번화가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친환경을 표방하지 않은 제품은 거의 없다. 바로 이것이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라는 환상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그린워싱이고 최악의 경우 노골적인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곳: 글로벌 공장이라는 거대한 공백
“글로벌 경제의 상당 부분이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다. 이 장벽은 소비자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의도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현실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훌륭한 소비’를 함정에 빠뜨리는 그린워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로리 파슨스는 그린워싱을 단지 기업/브랜드가 자사의 제품 광고에 새겨넣곤 하는 미심쩍거나 명백히 거짓된 문구에 국한시키는 대신,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근본 메커니즘으로 분석한다. 다시 말해, 그린워싱이란 ‘100퍼센트 천연’, ‘생태 시대를 위한’, ‘생분해 가능한’, ‘재활용 가능한’,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따위의 녹색 문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적 추출extractivism의 뿌리 깊은 관행 위에 안착한 21세기의 세계화는 그 역사적 기초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과거 제국들이 구축한 공급망은, 오늘날 통신과 물류 부문에서 이룩한 엄청난 기술적 도약에 힘입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국제 공급망이 가능해지기까지, 핵심 운송 수단인 컨테이너의 도입과 1970~1980년대에 중국의 주도로 이뤄진 규제 완화라는 두 가지 주요한 혁신이 있었다. 기계화된 컨테이너는 인간 노동자 없이 크레인만으로 적재, 하역, 운송 과정을 실행하기 때문에 표준 가격을 꾸준히 낮추는 데 기여했으며, 규제 완화는 외국인의 소유를 방지하는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기업이 (타국에)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혁신 덕택에 부유한 국가들은 원료를 추출하고, 재화를 가공하며, 폐기물을 글로벌 주변부로 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거리보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글로벌 공급망은 이런 식으로 (동떨어진) 생산국의 환경을 소비국들의 구미에 맞게 탈바꿈했다. 오늘날 생산이 더 이상 현지에서 이뤄지지 않게 된 이유다. 해외에 위치한 글로벌 공장은 각종 기술 지표에 의해 조정되는 원격 모니터링 방식으로 가동되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리적 실체를 지닌 (전통적인 의미의) 공장과 달리, 물자와 재화가 생산되는 흐름/공정을 볼 수도 없고, 물자와 재화가 이동할 때마다 직접 점검할 수도 없다.
심지어 브랜드 측이 점검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길고 복잡한 공급망에 자리 잡고 있는 각각의 기착지마다 점검에 필요한 여건을 충분히 갖춘 조사단을 주기적으로 파견해 유의미한 감독을 시행한다는 것은 대부분 어불성설이다. 브랜드를 대신해 공정을 감독하는 현지 중개인이 ‘점검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저 그 말을 덮어놓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떨어진 국가의 외딴 지역을 감독하는 과정에는 브랜드 자체가 설정한 기준을 이탈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다.
‘친환경 마크’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 탄소 식민주의
“만일 한 곳이 깨끗하기 때문에 나머지 한 곳이 파괴된 것이라면? 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