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아프면 보이는 것들』(부제: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은 의학이 설명하거나 포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아픔’을 인류학의 시선으로 톺아보는 책이다. 의료인류학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열세 명의 필자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만난 ‘아픔’을 가진 삶들을 경유해 다양한 주제들을 사례 중심으로 살핀다. 이들이 만난 의료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존엄하게 살 기회를 박탈당한 삶들은 불평등과 차별,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1부 “아픔의 경험이 연결하는 관계들”은 산후풍, 가습기 살균제 참사, HIV/AIDS, 난임, 희귀난치성 질환(지중해빈혈)을 통해 아픔의 관계성을 다룬다. 2부 “아픔의 구조가 드러내는 문제들”은 중증 환자의 병원 사망 경로, 조선족 간병사의 돌봄 노동, 의료와 근대성의 역학, 사회적 고통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보며 아픔을 만들어 낸 구조를 분석한다. 3부 “아픔의 경계가 던지는 질문들”은 장애, 성매개감염(HPV), 국가유공자, 흡연을 소재로 아픔이 경계 지은 것들을 살핀다.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서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학의 기술적 진보나 법·등록제·가이드라인 같은 정치적·제도적 장치에 포섭되지 않는 아픔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아픔은 개인과 가족이 알아서 감당할 문제로 미뤄지거나, 부당한 낙인으로 공격받거나, 정치의 무능 또는 무책임으로 고통이 가중되거나, 또 다른 불평등과 차별을 초래하게 된 것들이다. “난 아니에요? 난 왜 아파요?” 의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아픔 ‘산후조리를 못해 걸리는 병’ 산후풍은 오랫동안 심리적 문제나 노화, 근육통, 기능 저하 등의 다른 병/문제로 여겨지면서 인정받지 못했던, 또 난치병·불치병이라는 속설 때문에 환자 자신도 치료를 기대하지 않았던 ‘아픔’이다. 출산하자마자 고된 노동으로 내몰리며 미역국 한 그릇 떠먹지 못한 노년 여성과1980년대 가족과 격리된 채 수술실에서 간호사의 꾸중을 들으며 제왕절개 출산을 한 여성과 IMF 시기 출산휴가를 엄두 못 낸 여성의 산후풍은 다 다르지만, 이들의 질병 서사에는 모두 임신·출산을 둘러싼 한국 여성의 위치와 사회적 맥락이 반영돼 있다. 산후풍은 한국의 출산 장려 정책이 한의학으로 확대되면서 한의학의 질병으로 포함됐고, 증상과 치료법이 표준화된 치료 가능한 증후군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의료화된 산후풍 치료가 산욕기 여성 위주로 구성된다면, 중년·노년 여성의 산후풍은 또다시 잊히고 만다(1장 「산후풍의 바람風, 그리고 바람望」). “온 세상이 내게 죄 지었다고 외치는 느낌”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 병원에는 의료 종사자의 안전을 위한 “표준주의 지침”이 있어 환자가 누구든 이 원칙을 지켜야만 한다. HIV는 이런 표준주의 지침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질병이지만, 지금도 진료받는 감염인의 의자 전체를 비닐로 싸 놓거나 감염인이 사용하는 식기나 침상에 따로 표시하거나, 심각하게는 감염인의 수술이나 입원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2016년 “한국 HIV/AIDS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102명의 감염인 응답자 가운데 64.4%가 죄책감을 느끼며, 50%가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을 느낀다. 동일한 조사에 응한 다른 5개국(태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 독일)에서 독일 감염인 31.2퍼센트가 수치심을, 남아프리카공화국 감염인 14.5퍼센트가 죄책감을 느낀다. 필자(서보경)는 유병률이 낮고 치료가 보편화된 한국에서 왜 유독 광범위한 자기 부정성이 나타나는지 질문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운동의 “AIDS가 동성애자에 대한 형벌, 죽음의 천형”이라는 구호들, 메르스 사태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경험한 패닉과 부조리한 반응들을 비춰 본다. “어서 감염자를 찾아내서 격리부터 하라는 요구,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거라는 편견, ‘비정상적’ 사람들을 솎아 내면 사회가 다시 안전해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리고 질병과 고통의 경험을 스캔들화하는 언론의 태도”는 HIV/AIDS를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한국 사회가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이다(3장 「당신이 내게 남긴 것」). “여자로서 임신은 가장 큰 축복이잖아요.” ‘아이 없음’의 ‘비정상’에서 벗어나기 난임은 “1년이나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피임을 하지 않는 정상적인 성관계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임신이 이뤄지지 않는 생식 계통의 질병”이다. 보조생식기술의 발전으로 ‘불임’은 ‘난임’이 되었다. 현재 난임 치료의 목표는 생식 기능의 회복이 아니라 ‘아이 없음’을 해결하는 것이며, 당사자는 검사 결과 문제가 없더라도 임신·출산에 성공할 때까지 난임 환자로 규정된다. 난임 여성들은 임신·출산에 성공하면 사회적 정상성을 얻는 듯하지만, 자신의 임신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 다만 기술로 대체됐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출산이 사회 유지의 과제로 여겨지는 지금, 기술이 주도하는 ‘재생산’ 영역에서 난임 부부들은 난자·정자를 제공하는 몸으로, 배아를 양육하는 인큐베이터로 수단화된다. 의료화된 난임 속에서 ‘아이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겪는 아픔은 한국 사회에서 강화된 ‘아이 없음’의 ‘비정상’성과 무관하지 않다(4장 「아이 없음의 고통」).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전” 더 나아질 것 없는 상태로 삶을 이어 가다 지중해빈혈은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만드는 DNA 염기서열 변화로 적혈구가 파괴되는 희귀 유전병이다. 지중해빈혈 환자 J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상실로 가득하다. 그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오랜 입원 후 집에 돌아와 보면, 집이 작아졌고, 부모가 운영하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1990년대 한국은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부실했고, ‘전 국민 의료보험’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많은 가정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했다.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침체는 사회복지 체제의 미비로 연계됐고, 이런 상황은 J의 신체적 취약성, 가정의 경제적 취약성과 맞물려 J의 질병 경험을 더욱 악화시켰다. 질병으로 인해 그와 가족은 가난해졌고, 직장을 구해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 나아질 것 없는 상태가 그와 가족의 현재가 되었다. 해외에는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한 네트워크가 다양해, 그를 통해 교류하거나 의학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의 시도가 많지만, 한국에는 이런 네트워크가 전무하다. 그러나 치료에 관한 의학적 연구 못지않게 긴급한 것은 질환자들의 삶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채널이다(5장 「한 희귀난치 질환자의 삶과 연대」). “좋은 죽음” 죽음은 법이 정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 것이 한국인의 보편적 생사다. 1995년 전체 사망자 중 66%가 집에서 죽고 22.8%이 병원에서 죽은 것에 비해, 2018년 전체 사망자 중 76.2%가 병원에서 임종했다. 필자(강지연)는 중증 환자 A를 통해 그가 지역 거점 병원에서 서울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말기 병동으로, 호스피스로 옮겨 가는 죽음의 경로를 쫓는다. 중증 환자들은 소수의 서울 상급 병원에 쏠리고 병동이 부족해 응급실에서 장기간 대기하지만 지역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겨우 들어간 병동에서 쉽게 퇴원하기 어렵다. 비용뿐 아니라 간병을 가족이 분담할 수 있어야 하고, 가족들은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말기 고지를 해야 하는 부담도 갖는다.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대신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을 하러 가족 ‘전원’이 모이는 동안 연명의료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또 호스피스로의 전원 과정 또한 간단치 않다. 필자는 “의학이 CPR, 인공호흡기, 집중치료 시설, 장기이식술 등을 발전시키는 동안 특정한 죽음이 생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