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특정 브랜드에 끌리는가?
감각 자극을 통해 잠재력을 깨워라!
무의식의 욕망을 창의력으로 바꾸는 ‘취향의 인문학’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
우리는 왜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질 들뢰즈에 따르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은 감각이 자극받을 때 능력으로 현실화된다. 현대 사회에서 브랜드는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다. 특정 브랜드가 대체 어떤 지점에서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지 살피다 보면, 나의 무의식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게 된다. 결국 브랜드 취향은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창의력을 깨우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 브랜드는 메시지다!
『브랜드 인문학』은 문화적 현상을 통해 동시대 문화의 깊은 차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의 모든 가치와 행동은 신념을 반영하며, 그 신념의 기저에는 어김없이 세계관이 있다. 고전학자 김동훈은 특정 브랜드와의 접속이 욕망의 결과이며, 그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지적한다.
브랜드(brand)의 뿌리어는 그리스어 ‘스티그마’로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 또는 신분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어느 참주가 충직한 종의 머리를 깎고 살갗에 ‘스티그마’를 새긴 뒤에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린 다음 사위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은 바로 페르시아에 반란을 꾀하라는 ‘메시지’였다. 따라서 “브랜드는 새겨진 자에게 소속과 사명의 정체성을 틀 잡아 주는 도구”였다. 들뢰즈는 우리 내면에 (잠든) 과거를 ‘잠재력’이라 불렀다. 이 과거(잠재력)는 자극을 받으면 깨어나기도 하는데, 현대 소비사회에서 브랜드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특정 브랜드와 접속하여 생기게 된 우리의 정체성은 잠재력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권태와 탈진 속에서 어떤 욕망도, 어떤 삶의 의욕도 생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할지라도 감각 자극이 없거나 그 강도가 약하다면 그 능력은 발휘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감각에 자극받아 무엇을 욕망하게 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욕망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
그런데 느닷없이 고전학자가 왜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되셨을까?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그 욕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잠시 멈춰 성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속하는 브랜드를 통해 나의 욕망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지 살펴보면, 나의 정체성을 찾거나 자신의 욕구불만이 무엇인지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비의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사치란 불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것이므로 명품이 불필요한 소비가 될 때는 사치가 되지만 필요한 것이 될 때는 취향이 된다. 예컨대 명품 부티크에서 명품을 판매하는 매니저는 고객과 접속하고 그 매장에 배치된 이상 그(녀)는 고가의 명품을 입게 된다. 이때 그(녀)를 향해 사치스럽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우리는 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취향’을 형성할까? 유명한 브랜드들에는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우리는 딱히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특정 디자인에 대한 선호를 느끼게 되는데,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의 ‘욕망’이 어떤 감각에 자극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이때의 욕망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계적 욕망’이라 불렀다. 브랜드에 대한 욕망도 그와 같다. 우리 손이 운전대와 접속하면 운전하는 손이 되고 지휘봉을 잡으면 지휘하는 손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손과 접속하면 악수하는 손이 된다. 운전자인지 지휘자인지, 아니면 친구인지 하는 정체성은 내 손 자체에 있지 않고 접속과 배치를 통해 확립된다. 그때 무엇과 접속하고 싶은지는 전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대상과 내 욕망의 문제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프라다에 끌린다면 그 저변에 흐르는 ‘우아한 실용성’이, 발렌시아가에 끌린다면 ‘귀족적인 품위’가 내 감각의 지향하는 바일 수 있다. 이러한 ‘취향’은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이나 시장적 취향에 대한 저항력이 되기도 한다.
“자본에 의한 문화의 평준화는 무취향을 만든다. 그것은 결국 후기 시민사회에서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사치를 조장한다. 대중문화가 아니라 ‘무취향적인’ 사치가 하류문화인 것이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 잠재력을 능력으로 현실화하라!
디자이너로 성공한 샤넬은 한동안 모든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미국으로 돈을 벌러 갔기 때문에 친척집에서 성장했다며 가상의 자아상을 꾸며댔다. 사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시골 수도원에서 고아로 성장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을 일구도록 도와준 연인 보이 카펠이 사고로 죽자 샤넬은 또다시 절망 속으로 침잠하다가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 악취 나는 과거 속에는 샤넬은 수도원 시절 수녀원들이 가꾸던 시나몬, 레몬 같은 향기를 기억해 내고는 다시 일어나 향수 넘버5를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과거는 감각 자극을 통해 잠재돼 있던 가능성(잠재태)이 집념(욕망)과 결합되어 능력(현실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나 상처를 겪지만, 과거의 아픔을 어떻게 승화하느냐에 따라 그 기억은 ‘능력’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프라다의 경우도 미우치아의 과거 잠재력이 혁신의 계기가 된다. 골목마다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던 선동가였던 미우치아는 갑자기 쓰러져 가는 가업을 물려받게 되는데, 그녀는 사회당원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을 특별한 패션 감각으로 승화시킨다. 당시에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려고 애쓴 반면, “미우치아는 우아함을 살리면서도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히” 선보였던 것.
군용 소재에 눈길을 돌리고(접속) 그것을 가방의 소재로 활용(배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지 패션 스타일의 변화를 선도했다고만 보기 부족한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몸의 노출보다는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 이러한 철학 위에서 미우치아는 지속적으로 패션의 개념을 파괴해 나갔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
● 감각의 자극을 창의력으로 바꾸는 추상화의 신비
세네카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는데, 디자이너들은 이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끌어낸다. 발렌시아가는 엘 그레코, 수르바란 같은 스페인 화가들에 대한 경외감을 패션에 표했는데, 바로크의 우아함까지 담아냈기에 그의 작품 또한 예술품처럼 경이롭다.
발렌시아가는 왕실에서 왕가 사람들이 즐겨 입은 의상을, 그것도 3세기가 지난 시점에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시민에게 입힌다. 그의 스페인 취향은 파리쿠튀르의 전통과 구별되는 극적 효과를 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신비감이었다. (…) 이때 발렌시아가의 작업은 엄격한 건축가나 조각가의 작업 과정에 종종 빗대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조각에 비유될 정도로 신비한 단순성을 드러내는 의상들이 탄생하게 된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