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에르베 기베르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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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사진 칼럼니스트인 에르베 기베르가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쓴 자전적 소설. 7년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서 사진 및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84년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당대 프랑스 문화계의 명사 에르베 기베르. 서른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필립 베송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오히려 사후에 작가로서의 광휘를 문학사에 한층 뚜렷이 아로새겨나가는 인물이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는 그런 에르베 기베르가 199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동성애자였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밝힘은 물론 에이즈로 사망한 옛 연인 미셸 푸코의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하여 대중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에르베 기베르는 자신의 대표작인 이 소설에서 긴 문장으로 이어지는 몽환적 서술과 사진을 찍는 듯한 집요한 묘사가 어우러진 특유의 문체로써 실제인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한 세계 위에 그 자신과 주변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에이즈라는 정체불명의 병이 한 줄기 검은 바람같이 불어와, 마치 페스트처럼 냉량한 죽음의 공포로 육체에 스미어 정신마저 잠식하곤 끝내 한 인간을 치욕스러운 배신감과 함께 병몰(病沒)시키는 과정을 분노와 체념의 서늘한 필체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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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해설: 닉네임_김현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시나리오 작가이자 사진가 그리고 소설가, 에르베 기베르의 대표작 자신의 세계를 빌려 픽션으로 기록한 죽음의 세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사진 칼럼니스트인 에르베 기베르(1955?1991)가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쓴 자전적 소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가 알마에서 출간됐다. 7년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서 사진 및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84년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당대 프랑스 문화계의 명사 에르베 기베르. 서른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필립 베송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오히려 사후에 작가로서의 광휘를 문학사에 한층 뚜렷이 아로새겨나가는 인물이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는 그런 에르베 기베르가 199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동성애자였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밝힘은 물론 에이즈로 사망한 옛 연인 미셸 푸코의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하여 대중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에르베 기베르는 자신의 대표작인 이 소설에서 긴 문장으로 이어지는 몽환적 서술과 사진을 찍는 듯한 집요한 묘사가 어우러진 특유의 문체로써 실제인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한 세계 위에 그 자신과 주변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에이즈라는 정체불명의 병이 한 줄기 검은 바람같이 불어와, 마치 페스트처럼 냉량한 죽음의 공포로 육체에 스미어 정신마저 잠식하곤 끝내 한 인간을 치욕스러운 배신감과 함께 병몰(病沒)시키는 과정을 분노와 체념의 서늘한 필체로 그려냈다. 독자는 죽음의 시간에 내던져진, 예술적 감수성의 혈액을 지닌 이가 감각하는 예민하고 서글프며 처절한 투쟁의 기록을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사신과의 동거, 죽음의 유예기간 최후에의 갈망과 모순된 부정(否定)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불분명한 이 기록은 1988년부터 시작된다. 기억은 1981년으로 돌아간다.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아직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실체를 아는 이가 많지 않던 시기다. 에르베 기베르는 장차 자신을 죽음의 좁고 가는 고통의 길로 인도할 이 병에 대해 처음 듣는 장면을 반추한다. 그 기억 속엔 ‘뮈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베르의 옛 연인, 미셸 푸코가 있다.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암’이라는 이야기에 뮈질은 폭소를 터뜨린다. 이 치명적인 병에 대해 마약을 코로 흡입하다 갑자기 중단하면 감염된다거나 냉전 중이던 미국 또는 소련이 개발한 세균병기라는 말들이 나돌던 때였다. 뮈질은 1984년,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소설 속 기베르는 옛 연인이자 오랜 친구의 죽음으로 비로소 실재의 외피를 두른 공포와 대면하게 된다. 뮈질과 “공통적인 타나토스의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공포가 기베르와 그의 주변인들 사이에 만연해진다. 땅이 꺼지고 세상이 뒤집히는 듯 그들이 딛고 선 땅에서 연거푸 이어지며 그들의 근간을 흔드는 두려움의 여진이 에이즈, 곧 죽음이라는 불행으로 들이닥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방탕에서 비롯된 죽을병으로부터의 도피와 체념이 거듭되는 예민한 우울의 날들이 이어지고, 그러다 마침내 확진 판정을 받고부터는 기나긴 죽음의 유예기간이 시작된다. 줄곧 죽음에 경도되었다가 진짜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자 오직 더욱 깊어진 죽음과의 친밀감만이 필요해진 기베르는 “세상 무엇보다 고귀하고 혐오스러운 공포와 갈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에이즈의 잔혹함에서 감미롭고 황홀한 무언가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작품 속에서 ‘마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자벨 아자니는 인터뷰에서 오랜 친구 에르베 기베르에 대해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의 환상의 세계에 잠식당했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 상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다만 건강한 존재일 뿐인 것에 지루해했다”며 “그는 늙고 싶지 않아 했다”는 말로 기베르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증언한다. 그러나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세상의 이미지를 순간의 포착으로 현상(現像)하던 기베르가 자신에게 닥쳐온 죽음을 일관된 자세로 받아들였을 리 만무하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했고, 동시에 그러한 도피 가능성이 모래성처럼 덧없이 무너져 내려 스스로 영락없이 스틱스 강을 건너게 되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을 갖는다. 이처럼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에서 에르베 기베르는 자신의 입체적인 내면을 혼란스러운 서사 속에 투영해 적나라한 나체를 드러내 보일 뿐만 아니라, 가명으로 쓰인 주변 인물들의 온통 모순된 사생활까지 누출하면서 거침없는 망설임으로 부정(否定)의 서사시를 써 내려간다. 거푸 갈마드는 절망과 희망 피로 쓰인 배신과 체념의 기록 에르베 기베르로 하여금 이 “수치 또는 파렴치”의 기록을 가능케 한 것은 배신이다. 이 작품의 주요한 주제를 꼽으라면 ‘배신’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1981년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에이즈에 대한 소식을 기베르에게 처음 전해준 빌이라는 이가 있다. 빌은 대형 백신 연구소의 소장으로, “동시대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발견에 한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그는 한편으론 에이즈 백신의 개발을 자신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줄 수단으로 보는 것을 숨기려 들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 가장 제 욕망에 충실하여 그것에 추동되는 면모를 보이는 빌은 어쩌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이인 동시에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한 수단을 비열하리만치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일 것이다. 사형선고를 확신하며 즐거워하다가도 절망하고 그러다 또다시 죽음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순간을 기다리던 기베르들에게 그는 치유라는 이름의 희망을 던져준다. 그리하여 깜부기불 같은 삶의 의지와 점점 불어가는 고통 속에서 담담히 죽음의 기록을 써나가며 자신의 육체를 대신할 정신으로서의 작품에 남은 시간을 오롯이 바치고자 했던 기베르는, 어느덧 희원(希願)으로 지핀 강렬한 삶의 의지를 불사르며 발버둥 친다. 빌이 전해오는 소식 하나하나마다 일희일비하던 그는 결국 빌이 실패와 외면으로 그들을 배신했음을 깨닫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빌이 “구원이라는 허구의 마수”를 뻗치지만 않았던들, “이 친구들에겐 감추는 걸 저 친구들에겐 털어놓는 식”으로 자신이 대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놀이에 심취하지만 않았던들 기베르는 지하로의 기나긴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죽음의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목에 중의적으로 쓰인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가 빌만은 뜻하는 것은 아닐 게다.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소문을 공개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그녀와 공통의 운명으로 결속돼 있다 믿었던 에르베 기베르의 환상을 무참히 깨부순 마린, 뮈질이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진실”을 잔인하게 폭로하는가 하면 스스로 죽음을 갈망했으나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애썼던 기베르 자신 모두를 배신의 주인으로서 아우르는 것일 테다. 에르베 기베르는 자신의 바람대로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절규 속에서 갈가리 찢겨 흩어졌다”고 자신의 절망을 표현하면서 “죽음에 익숙해져야 함을 깨달았다”고 체념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증오하기를 반복하는 혼란스러운 마음 가운데서도 채혈 주사기의 실린더를 채우던 피의 선연한 붉은빛처럼 분명했던 것은, 연인인 쥘과 베르트의 사이에서 난 아이들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비록 나는 제발 그렇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고, 그들과 나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도록 나의 피를 그들의 피로부터 분리시켜달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들을 나의 절망 속 가시적인 피의 바다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는 생명 곧 영원이 죽음과 길항 또는 순환의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마치 소설 최종장의 “액자 구조 속에 갇혔다”는 그의 절규처럼. 시인 김현이 해설에서 말하듯 “산 자의 사실들은 허구를 향해 있”고 “그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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