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세계 그림책의 역사는 1930년을 전후로 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 출간된 《백만 마리 고양이》는 몇 사람만 돌려보는 수공 제작 그림책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대중적인 그림책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그림책이다. 《백만 마리 고양이》 이후부터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그림책 역사가 시작되었다. 가그의 그림책에는 장난기 가득한 유머가 풍부하지만, 가그는 어린이들에게 맞추어 자기 자신을 낮추거나 일부러 유아용 언어로 이야기를 쓰는 일은 없었다. 가그는 동생들을 돌보며 자기보다는 남을 더 배려하는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체험에 비추어, 어린이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지각있는 존재이며, 선천적으로 주어진 여건에 자기를 맞출 줄 아는 적응력을 타고난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로부터 지나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가그는 보헤미아 민화를 재구성한 이 책에서 구수한 옛이야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도록 선과 색채, 활자는 물론이거니와, 책크기나 장정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구불구불한 언덕이 잇따라 양 페이지를 가득 채운 화면은 할아버지가 복슬복슬한 고양이를 찾으러 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한눈에 보여 준다. 양 페이지를 벌여 한 장면을 담아 내는 기법은 요즈음에는 평범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고양이들이 저마다 서로 제가 가장 예쁘다고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이 그림책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고양이들끼리 싸우다 서로 잡아먹어 버리고 딱 한 마리만 남는다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그러나 잔혹한 내용이 많은 옛이야기나 설화의 매력을 잘 알고 있던 가그는 이 부분을 담백하고 다이내믹하게 처리한다. 살아남은 고양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속 사진처럼 배열해 점점 포동포동해져 가는 과정과, 우유 그릇을 비우는 과정을 겹쳐 보여 주는 화면에서도 가그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유머를 느낄 수 있다.
가그의 그림책은 딱 한 권만 빼놓고는 모두 흑-백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도 마찬가지로 검은색만으로 되어 있다. 그녀에게 검은색은 특히나 소중한 색이었다. 가그는 자신만의 검은색을 발견하고 줄곧 그 검은색에 집착해서 인쇄 담당자를 가르칠 정도였다. 그녀가 찾아낸 검은색은 인쇄소 사이에서 유명해져서 나중에는 ‘가그의 검은색’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의 검은색은 석탄의 시커먼 연기를 연상시키지만, 가그의 검은색은 우리 기억의 회로에 저장되어 있는 그 먼 옛날의 흑-백 화면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