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류성룡 · 歴史/戦争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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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분야별로 아뢰는 글', '평양을 수복한 뒤 세자에게 아뢰는 글', '굶주리는 백성의 구원을 진정하는 글', '훈련도감을 설치한 기록', '이순신을 애도하는 시' 등의 기<징비록>록을 통해 <징비록>과 임진왜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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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개정판을 내며 유성룡과 《징비록》 스스로 쓰는 서문 징비록 1권 징비록 2권 녹후잡기 유성룡 종군의 기록 참고문헌 유성룡 연보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징비록》의 밑바탕이 된 《서애집》 그 속에서 찾아내 엮은 ‘종군의 기록’ 추가 수록! ‘2014 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분야별로 아뢰는 글’, ‘평양을 수복한 뒤 세자에게 아뢰는 글’, ‘굶주리는 백성의 구원을 진정하는 글’, ‘훈련도감을 설치한 기록’, ‘이순신을 애도하는 시’ 등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징비록》과 임진왜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사년 10월, 거가가 환도하니 불타고 남은 것들만이 성안에 가득하고, 거기에 더해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은 자들이 길에 겹쳐 있으며, 동대문 밖에 쌓인 시체는 성의 높이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 냄새가 너무 더러워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어, 죽은 시신이 보이면 순식간에 가르고 베어 피와 살이 낭자했다. - ‘유성룡 종군의 기록’ 중에서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입체적인 역사 기록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1592년 왜군은 조선을 침략,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약탈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하던 왜군의 기세는 평양성에서 멈췄고, 명나라 군대의 개입과 의병의 활약 그리고 이순신 등 뛰어난 장수들의 노력으로 왜군은 후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에도 1597년 정유재란으로 침략은 재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끝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전쟁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 그리고 참전국인 명나라, 명나라와 경쟁하던 청나라 등의 전쟁 관련국들에게도 임진왜란이 끼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다만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조선 정권은 붕괴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이 《징비록》에 동영상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명재상 유성룡이 눈물과 회한으로 쓴 반성의 기록 유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성룡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성룡은 자신의 잘못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러기에 《징비록》이라는 책을 통해 수백 년 후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가 흩어지고 무너져 내린 때를 맞아 나라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를 맡아 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산골 전답 사이에서 쉬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 이 어찌 두려움을 씻어 주시는 임금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부끄러워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 유성룡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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