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글쓰기는 동의어다
나는 사랑할 때가 아니면 언제나 글을 쓴다
퀴어 문학의 상징, 천쉐
여성들 사이의 정욕 묘사로 논란에 섰다가 절판 후 복간된 첫 소설집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생명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악녀서』는 천쉐의 첫 소설집이다. 1995년 대만에서 발표됐을 때 여성들 사이의 정욕 묘사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숱한 논쟁을 일으키며 ‘18세 이하 열독 금지’ 딱지가 붙었고 얼마 후 절판됐다. 독자와 연구자들은 그러나 이 책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특히 첫 수록작인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는 퀴어 문학의 상징이었고 끊임없이 복간 요청이 들어왔다. 작품들은 되살아나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 잡았고, 한국에서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악녀서』를 선보인다.
천쉐는 대만에서 첫 동성결혼을 한 인물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춘 적이 없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소설에서도 그런 면은 투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자위, 첫 성 경험 상대였던 남성에게서 여성으로 옮겨가는 이들, 남성이 채워줄 수 없는 여성들 사이의 사랑, 근원적 이탈의 계기가 된 어머니에게로의 회귀 등이 작품마다 등장한다.
이십대 중반에 쓰인 이 글들은 젊고, 욕망으로 흘러넘치며, 죽음충동이 선명하다. 여성들 사이의 성관계인 까닭에 묘사는 더 적나라한데, 상대 여성이 ‘나’에게 접근할 때 심리적 우회를 거치지 않고 벌거벗은 세계로 곧장 이끌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성관계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 검은 구멍 속의 기억,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 이어지면서 ‘사랑’과 ‘기억’이 번갈아 쓰인다.
“손가락이 젖꼭지 위에 가볍게 원을 그렸다. 가벼운 전율에 이어 따스하고 부드러운 조수가 밀려왔다. 아쑤의 입술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내 하체에 덥수룩하게 자라난 음모를 헤치고 한 겹 한 겹 음부를 벌려 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생명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눈물 냄새가 나네.’”(「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이 단락처럼 극도로 민감한 내 몸속으로 들어와 어떤 음경도 건드리지 못할 깊이에 닿는 묘사들이 작품을 지배한다. 감각의 열림은 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내달리고, 거기에는 어머니가 있다. 이것은 죄책감, 증오 혹은 회복하고 싶은 사랑이다.
천쉐 소설 속의 ‘나’는 거의 언제나 글 쓰는 자아다. 산문집 『같이 산 지 십 년』에서 천쉐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랑’과 ‘글쓰기’ 두 가지를 꼽는데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위 작품에서 아쑤는 ‘나’ 차오차오에게 계속 글을 쓰라고 권한다. “아쑤는 펜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나를 안고는 가볍게 책상 앞 의자에 앉혀주었다.” 「이상한 집」에서는 타오타오가 내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앉아 있다. “유백색 엉덩이가 잉크가 잔뜩 묻은 종이 위에서 꿈틀거리자 황금빛 허벅지 위로 촘촘한 글씨들이 가득 기어 올라왔다.” 주인공에게 사랑(섹스)과 글쓰기는 거의 동의어이고, 기억의 진창길에서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에서 몸을 일으켜 ‘나’는 문자의 사다리를 타고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간다.
인내와 기다림은 이미 차고 넘쳤다
슬픔이 차오르면 나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문자의 사다리를 타기 전 주인공들이 들어서는 곳은 언제나 미궁이다. 삶에서 길을 잃거나 혹은 기억 속에서 검은 구멍으로 빠져 현실과 유리되기 때문이다. 이때 돌아올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예외 없이 사랑이다. 환각 같은 성관계. 네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언제든 충분한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아쑤의 젖가슴을 빨면서 한때 자신에게 주어졌던 영아 시절을 생각했다. 한 번도 늙은 적이 없는 엄마의 몸에 있었던 아쑤 것만큼 아름다운 유방을 생각했다. 이 땅에 나오자마자 요절해버린 사랑을 생각했다.”(「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어느덧 엄마처럼 ‘나’를 잉태하고 양육하는 자궁이 된다. 그리고 그 자궁은 죽음 이후에 나를 묻을 무덤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작품 곳곳에는 죽음과 부고訃告가 도사리고 있다. 치명적인 동성애가 죽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의식, 혹은 죄책감이다. 이들의 사랑에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공포감이 늘 스며 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 레즈비언으로서 천쉐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작가’였다고 말한다. 그녀가 소설을 써온 것은 “스스로 미치광이임을 증명하는 표식”이나 다름없었다. 동성 간의 욕정을 과감히 드러내는 묘사는 그러나 오늘날 그녀를 1990년대 젠더 연구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삶에서 남성과 성관계를 먼저 가진다. 그런 후 우연히 어떤 여성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발견한다. 남자와의 관계는 단지 보복의 쾌감 같은 것이었다. 이 남자들은 여주인공과 성관계를 맺고 나면 거의 불능이 되어버린다. 상대 여성의 성기는 그들에게 ‘가위’나 마찬가지여서 관계 후 남자들은 그 여성을 ‘악마’라고 부르게 된다. 반면 동성과의 관계는 오감을 동원한 가장 깊은 애무로 표현된다. 남녀는 체액의 냄새도 다르다. 내가 아쑤에게서 처음 맡은 것은 “가장 색정적인 냄새”였다. 과거 정액 냄새를 맡았을 때 평생 남자의 몸에서 쾌감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과 정반대다.
과거는 재해석되며 연대순으로 쓸 수 없다
사랑은 근원이자 무덤이다
천쉐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설가와 레즈비언으로 나누어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에세이 『같이 산 지 십 년』을 보면 나이 들어 안전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랑에 만족감을 느끼는데, 사실 이런 관계는 『악녀서』를 쓰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다. 지금 중년이 되어서는 상대의 삶 속에 녹아드는 평온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젊은이의 사랑은 무덤덤하기 힘들다.
기억은 연대순이 아니다. 모든 것이 뒤엉키고 감정은 시간에 따라 모양을 바꾸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말한다. “내 기억은 산산이 부서진 파편들이며 사실은 환상과 꿈속에서 비틀리고 왜곡되었다.” 수치심과 원한, 이것은 그들에게 ‘과거’와 동의어다. 이런 감정은 구멍들을 만들어내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으며, 완전한 스토리의 잔해를 긁어모은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천쉐의 작품은 여성 동성애, 여성 성욕, 정신질환에서부터 최근의 계급과 가족관계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데, 그럼에도 소설을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언제나 육체와 글쓰기 그리고 감정과 세계의 뒤얽힘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에서 나는 아쑤라는 여성의 음탕한 웃음소리에 심취해 무의식중에 엄마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깨닫는다. 엄마가 자살하면서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썼지만, 이제는 엄마를 닮은 아쑤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아쑤는 발기하고 사정하는 음경이 없지만 내 몸 가장 깊숙이 들어왔다. 아쑤는 내게 말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네게 이 일을 드러내주기 위한 거였어. 영원히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거지.” 여기서 천쉐의 그림자를 얼핏 보게 된다. 오로지 사랑과 글쓰기밖에 없는 삶을.
「이상한 집」에서 색정소설가인 나는 타오타오라는 여성과 사랑을 나눈다. 마흔 살의 나는 사실 욕정으로 가득한 방에서 온종일 침을 흘리며 혼잣말하는 침대나 다름없다. 이런 쓰레기인 나를 타오타오는 좋아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는데, 그 안에서 또 다른 동성애가 펼쳐진다.
「밤의 미궁」의 주인공은 남편 아페이와 나, 그리고 그녀다. 우리 셋은 한 몸으로 찰싹 달라붙어 관계를 이어간다. 사건은 ‘미궁’이라는 술집에서 일어나지만, 이 모든 것은 환영일 수도 있다. “모든 인생은 미궁 속으로 들어간 흰쥐 같아. 미궁 속에서 계속 실험 대상이 될 뿐이야.” 처음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