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 돈과 명예, 법률과 유대인 문제를 둘러싼 희비극
사랑의 시험과 목숨을 건 모험, 그 속에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걸작
셰익스피어가 32세 무렵이던 1596~1597년에 쓴 비교적 초기 작품 『베니스의 상인』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번으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 외에도 유대인 샤일록과 지혜로운 여성 포셔까지 모든 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희비극이다. 1605년에 초연된 후 지금까지 수없이 공연되었으며, 각각의 인물의 시선으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다. 또한 1914년 무성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2004년 알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으로 영화화되기까지 수차례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한 『베니스의 상인』은 기존에 번역된 ‘셰익스피어 4대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과 마찬가지로 연세대 최종철 교수가 셰익스피어의 원문에 충실하게 운문으로 번역하여 그 의미가 한층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 최종철 교수가 원문을 그대로 살린 운문 번역
3·4조 운율을 살린 리듬감 있는 대사
이번에 출간된 『베니스의 상인』은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과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을 모두 번역한 바 있는 최종철 교수(연세대·영문학)의 운문 번역으로 선보인다. 최종철 교수는 여러 판본을 꼼꼼히 검토하여,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원문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표현하였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운문과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 희극적인 분위기나 신분이 낮은 인물들의 대사, 저급한 내용 또는 정신이상 상태를 나타낼 때 쓰이는 산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약강 오보격 무운시(iambic pentameter blank verse)라는 운문 형식이다. 최종철 교수는 이런 시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한 행을 16자 정도로 제한하고, 3·4조 또는 그것의 변형된 자수율을 지키는 운문 형식을 사용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시적인 대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 그 가운데서도 음악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번역자의 소신이다. 이렇게 번역한 결과, 독자들도 대사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운문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그대로 연극 대본으로 삼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사 간의 리듬이 살아 있다.
(본문 119쪽 처음~120쪽 19행)
로렌초 달빛이 참 밝네. 이 같은 밤이었지.
달콤한 바람이 나무에게 부드럽게 입 맞추면
나무는 소리 없이 서 있는 이런 밤에
트로일로스는 트로이 성벽에 올라가
크레시다 잠자는 그리스 편 천막을 향하여
혼 빠진 듯 한숨을 쉬었겠지.
제시카 이런 밤에
디스비는 겁을 내며 이슬 밟고 걷다가
사자의 그림자를 사자 앞서 보고는
놀라서 도망을 쳤었지.
로렌초 이런 밤에
황량한 바닷가 제방에 디도는 홀로 서서
버들가지 잡은 손을 애인에게 흔들었지,
카르타고 다시 찾아오라고.
제시카 이런 밤에
메디아는 아이손 노인을 정말로 회춘시킨
마법의 약초를 모았었지.
로렌초 이런 밤에
제시카는 부유한 유대인에게서 도망쳐
반편이 애인과 더불어 베니스를 벗어나
저 멀리 벨몬테로 달아났지.
제시카 이런 밤에
로렌초는 확실한 사랑을 맹세하며
수많은 서약으로 그녀 혼을 훔쳤는데
진실된 건 하나도 없었지.
『베니스의 상인』의 번역은 셰익스피어 원문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영국 아든 판(The Arden Shakespeare. 존 러셀 브라운(John Russell Brown) 편집)을 기본으로 하고, 리버사이드 판(The Riverside Shakespeare. 블레이크모어 에번스(G. Blakemore Evans) 편집)을 비교, 검토하여 완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의미들을 각주에서 자세히 설명하여, 셰익스피어에 대한 한층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왔다. 또한 셰익스피어 당시의 공연 관행을 최대한 반영하여 막과 장의 숫자만을 장면 시작 부분에 표기하고, 각 장의 무대를 명기했다.
세 가지 계약을 둘러싼 불꽃 튀는 간계와 지략, 그 속에서 빛나는 한 여인의 지혜와 혜안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가장 악의적이지만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 유대인 샤일록
“빛난다고 다 금은 아니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겠지.
나의 이 겉모습을 보려고
많은 이가 목숨을 팔았다.
금빛 묘엔 구더기만 들어 있어.
담력만큼 지혜만 있었어도
젊은 몸에 노인 판단 갖췄어도
이 대답을 글로 받진 않았겠지.”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명망을 얻기 시작하던 32세 무렵에 쓴 작품이다. 그는 이 시기에 『로미오와 줄리엣』과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1부』를 쓰기도 했다. 목숨과 사랑이 걸려 있는 기막힌 계약과 예상치 못하게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셰익스피어 특유의 극적인 요소와 기지가 엿보이는 희비극이다.
부유한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에게 절친한 친구 바사니오가 보증을 부탁한다. 바사니오는 벨몬테의 부유한 상속녀 포셔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러 가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둘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가는데, 사실 안토니오는 그동안 샤일록을 대놓고 비난하면서 그에게 돈을 빌렸다가 궁지에 몰렸던 사람들을 구제해 준 바 있었다. 그런 안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삼천 다카트를 빌려 주고 이자는 한 푼도 안 받는 대신, 정해 놓은 일시까지 그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고운 살 정량 일 파운드를 당신 몸 어디든지 내가 좋은 곳에서 잘라 낸 뒤 가진다.”라고 조건을 단다. 곧 상선들이 돌아오면 돈을 갚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안토니오는 흔쾌히 응한다.
한편, 포셔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해 놓은 조건에 따라서 신랑감을 맞아야 하는 형편이다. 각각 금, 은, 동으로 만든 궤를 골라 그 안에 적힌 지시대로 결혼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구혼자들이 금이나 은으로 만든 궤를 골랐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 바사니오는 “겉과 속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며 동으로 만든 궤를 골라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되고 증표로 그녀의 반지를 받는다. 그러나 빚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의 상선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샤일록은 계약 이행(살 1파운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사니오는 급히 베니스로 돌아온다. 그는 법정에서 포셔가 준비해 준 돈으로 빚을 갚겠다고 하지만 샤일록은 법대로, 즉 안토니오에게서 살을 도려내겠다고 우긴다. 그때 법학 박사로 변장한 포셔가 등장한다. 그녀는 계약대로 살을 도려내라고 판결한다. 그러나 “계약서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 주지 않소. 명시된 문구는 “살덩이 일 파운드”요. 그러니 계약대로 살덩이 일 파운드 가지시오. 하나 그걸 잘라 낼 때 기독교인 핏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재물은 베니스 국법에 의하여 베니스 정부로 몰수될 것이오. (중략) 피 흘리지 말 것이며, 정확히 일 파운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