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인간은 왜 결국 죽을 걸 알면서도 동물을 기르고 사랑을 주는 걸까? “ 함께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슬픔을 탐구하다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를 배회하는 흰 양말을 신은 고양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색하게 마주치곤 하는 주둥이가 긴 윗집 강아지, 아침마다 창밖에서 부산을 떨며 지저귀지만 좀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어릴 적 하굣길에 사 왔던 병아리와 아버지의 어항에 살았던 형형색색의 열대어들.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판다와 구독자가 수백만은 족히 넘는 동물 유튜버에 이르기까지. 딱히 동물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아는 동물이 있다. 물고기를 변기에 떠내려 보낸 유년의 첫 이별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개의 유해를 매일 같이 산책하던 강가에 뿌리던 날까지. 평생 수많은 동물을 키웠던 저자에게도 헤어짐은 매번 처음 같았다. 이렇게 힘들 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이별을 반복하게 될까? 저자는 동물 애호가인 자신의 경험과,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인류와 함께해온 반려동물들의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별은 비할 길 없이 고통스럽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존재의 목숨을 책임지겠다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하지만 사랑에 말이 되는 선택은 별로 없다. 우리가 왜 기꺼이 이별을 계속하는지를 생각하자면 앨프리드 테니슨 경의 고전적인 경구를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랑은 결코 죽지 않고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 저자 E. B. 바텔스의 삶은 동물을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녀의 인생은 금빛이 감도는 케언테리어인 거스와 그웬, 노란빛의 글로스터 카나리아 키키, 보랏빛의 베타 완다, 갈색빛의 아프리카거북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반려동물의 몸빛으로 다채롭게 수놓였다. 다양한 종의 동물들은 그녀에게 온 생을 함께한 존재만이 나눌 수 있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사랑하는 나의 동물’이 생기는 가슴 벅찬 일인 동시에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이별의 시작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이별에는 예외가 거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토록 슬퍼할 거면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하지만 반려동물과 나누는 유대감은 이별의 두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들은 우리를 판단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런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경험되지 않는 슬픔 앞에서 반려동물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과 경험을 나누는 건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 책이 이별의 역사를 되짚으며 수많은 반려동물과 그 보호자를 만나 최대한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소개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을 잃었지만 이 슬픔은 결코 경험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주제를 취재하면서 반려동물을 향한 사랑과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인식이 지난 수백 년간 이어져 왔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이런 행위를 마뜩잖게 보는 인식 또한 늘 공존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저자가 만난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엄청난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저 고양이 한 마리”, “그냥 개 한 마리”라고 일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었다. 별것 아니니 ‘어서 극복하라’는 말, ‘걔가 평생 안 죽을 줄 알았냐’는 말. 상처가 되는 말들은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서조차 들려온다. 사람들은 동물을 잃고 ‘너무’ 크게 슬퍼하면 그것이 도를 넘었다고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박탈당한 슬픔”으로 본다. 삶을 반려해온 동물을 잃은 보호자들은 분명한 상실을 겪고 크나큰 실의에 빠져 있지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잃었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충분한 애도의 시간도 갖지 못한다. 전설적인 팝 가수 머라이어 케리가 기르던 고양이 클래런스의 무덤 앞에서 저자는 ‘가족(클래런스)의 죽음’ 때문에 해외 공연을 취소하는 톱스타의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중의 진심어린 공감과 위로의 반응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땅한 안내서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동물의 유골을 항아리에 넣어 장식장 안에 올려놓고,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불법이지만) 동물을 뒤뜰에 묻는다. 기르던 고양이의 털로 스카프를 짜는 사람도 있고, 개의 사체를 박제하는 사람도 있다. 곧장 새로운 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는 동물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 E. B. 바텔스는 자신을 포함해 이 낯선 이별을 맞닥뜨린 사람 모두가 스스로의 슬픔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대신 그녀는 죽음의 모든 과정을 정확히 보여주는 ‘이성’과, 동물을 향한 지극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감성’을 세심히 직조하며 애도의 최선을 찾고자 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솔직하고 선한 마음들의 결과다. 기원전 3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죽은 동물들의 발자국 위에 쓰인 애도의 여정 “사랑하고 잃는 것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 고대 이집트인들은 반려 고양이가 죽으면 추모의 의미로 온 가족이 눈썹을 밀었다. 또한 그들은 영혼에는 몸이라는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죽은 반려동물을 미라로 만들기도 했다. 육체가 무너지면 영혼은 목적 없이 방황하다 길을 잃을 테지만, 육체가 잘 보존된다면 영혼은 지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라에서 중세 시대의 박제, 현재의 유전자 복제 기술까지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떠난 동물을 기억하고 추모해왔다.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은 누가 뭐래도 동물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인류의 발자취를 훑어보니 반려동물을 다루고 떠나보내는 방식은 문화권마다 각기 달랐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매사추세츠에서 일본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로 종횡무진 독자들을 이끌며 바람직한 반려동물의 죽음을 탐색한다. 독자들은 여러 수의사와 고고학자,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며 소소하고 전통적인 방식(화장한 유골을 흩뿌리기, 초상화를 의뢰하기), 절차와 규모가 필요한 장례(장례식 치르기, 묘지 조성하기), 예상치 못했던 방법(박제, 유전자 복제) 등 시간을 관통하며 인류의 역사 속에 기록된 동물과의 다양한 이별 의식을 알게 된다. 여기에 사랑하는 존재를 기억하고 추모해 온 애도의 형태 중 일부를 소개한다. 동물 박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1862년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키우던 고양이 밥이 죽자 밥의 발 가운데 하나를 보존 처리해 편지 봉투 자르는 칼로 만들었다. 그 발에는 “1862년 C. D. (찰스 디킨스)가 밥을 추억하며”라고 새긴 상아 날이 달려 있었다. 이 칼을 사용할 때마다 디킨스는 죽어 있는 발과 악수하며 저세상에 간 밥에게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_본문 131쪽 〈어디서 무엇으로든 존재해준다면〉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4년을 함께한 개 사만다의 유전자를 복제한 강아지 두 마리를 기른다. 스트라이샌드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사만다를 잃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함께하고 싶었어요. 사만다의 일부를 살려둘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보내기가 조금 더 쉬워졌죠.” _본문 146쪽 〈어디서 무엇으로든 존재해준다면〉 반려동물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 추모의 그림과 무덤 중에 껴안을 수 있는 건 없다. 죽은 동물을 현실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