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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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다, 가자” 사람 곁에서 먹고 자고 숨 쉬는 시들, 끝내 우리는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운다 한국 민중시의 도도한 물줄기를 이어가는 동시에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문학성을 입증받은 김해자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니들의 시간』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줄곧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곁에서 목소리를 함께 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온몸으로 쓰는 리얼리즘의 시세계를 한층 벼려내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들며 “삶과 세계의 비극을 증언”(안희연, 추천사)한다. 구상문학상 수상작 『해자네 점집』(걷는사람 2018) 이후 5년, 암 투병 중의 생(生)체험과 사회적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 소시집 『해피랜드』(아시아 2020)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시대의 고통과 슬픔을 관통하는 역사 인식과, 폭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야만적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시선으로 가득하다. 이 시집의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길어 올린 진정성 있는 시편들이 무겁고 아프게 다가오는 한편, 시인은 곳곳에 익살스러운 유머를 배치해놓았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웃음을 찾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바 『니들의 시간』은 그야말로 민중과 발걸음 그리고 눈높이를 맞추는 시집이다. “두 눈을 뜨고 읽어야 하는”(송종원, 해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곱씹고 주위의 삶을 둘러보게 되며, 이윽고 벼랑 끝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곁, 그 모든 곳에 김해자의 시가 있다 일찍이 한 시인이 “가난한 영혼이 고통을 받는 모든 곳에 김해자의 시가 있다”(문동만, 『축제』 추천사)라고 말했듯이 김해자의 시는 쓸쓸하고 외롭고 가녀린 영혼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의 노래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정의롭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해설)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발 디딜 땅 한뼘 없”고 “허공마저 비싸서/숨 쉴 만큼의 공기도 허락되지 않”(「감긴 눈꺼풀 곁에서」)는 자본의 땅을 떠나 “마늘에서 막 돋아나는 뿌리처럼/늘 희푸른 말”(「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이 살아 숨 쉬는 마을로 내려온 지 벌써 십오년째, 시인은 “희망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같은 마음”(「어마어마한 도시락」)을 다독이며 “살자 살아보자”(「양미숙의 철화분청사기」) 다짐한다. 김해자의 시는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개인과 시대의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여행을 떠난다(「시간 여행」 연작). 이 연작은 역사의 아픔을 격정적인 목소리로 토해내기보다는 차지고 구성진 사투리를 통해 그날의 마음들을 해학적으로 풀어놓는다. 물론 가볍지만은 않다. 전쟁 당시 양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된 장소에서 “탄피 박힌 두개골”과 “불에 탄 뼈”(「수철리 산 174-1번지」)가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는 침묵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비명을 깨물다 돌처럼 굳어간 아무개”들의 “관짝 같은 백비(白碑)”(「비명 곁에서 비명도 없이」)를 돌아보며 한국 현대사의 그늘진 이면과 암흑의 시대를 살아온 민중의 삶을 간곡한 언어로 되살려낸다. 시인의 관심은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내 이름은 아르카」)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달이 내 창문을 서성이고 있다」)으로 이어지는바 “십년 삼십년 육십년 백년 후에 올”(「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 세대에게 우리가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지를 독자로 하여금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에 가득한 신음과 고통, 아직 부를 노래가 이렇게나 많이 남은 이유 시인은 1998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노동자 시의 대모’(김정환)로 불리며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리얼리즘 시의 영토를 굳건히 지켜왔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공생하는 자리”(해설)에서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민중의 삶을 시로 써온 지 사반세기,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한세기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살과 뼈 타는 냄새”(「두통의 환각」)가 진동하고, “늙어보지도 못한 어린 노동자의 머리통이 스크린도어에 끼이고” “컨베이어벨트 속으로 반죽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두통의 환각」)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시절에 시라니?”(시인의 말) 자문한다. 그럼에도 쓴다. “아직 부를 노래가 남아”(「농담」) 있기에, “죽어가는 나무에게 물을 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은 봄맞이꽃 같은 희망”(「바다에 달이 뜨고 쪽파 같은 오늘이 운다」)의 불빛 같은 시를 써나간다. “내가 아닌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로 너인 것이 내가 될 때까지”(시인의 말). 김해자의 시를 읽는다는 것이 희망을 읽는다는 것과 똑같은 말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