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그가 남긴 다섯 편의 찬란한 단편 소설
미국 문학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위대한 개츠비』라면 다 알고 있을 만큼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작가다. 국내에서는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부드러워』 등의 장편 소설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단편 소설을 더 많이 써낸 작가였다. 아내 젤다의 낭비벽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단편 원고를 많이 기고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생전에 출간한 단편 소설은 모두 160편에 이른다. 때문에 문예 평론가 중에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상업적이고 얄팍한 작품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작품들을 그저 그런 저급 소설로 평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그렇게 단순하게 일축하기에는 그의 작품이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실로 어마하다. 수많은 문호들이 피츠제럴드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받았으며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은 연극과 영화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대를 초월한 그의 작품 세계,
그 힘은 바로 전 인류적인 보편성에 있다
최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화되면서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재조명되고 있다. 쟁쟁한 현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범람하고 있는 요즘, 고전이라면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자꾸만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가진 보편성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 바로 그것이 피츠제럴드가 현대에서도 주목받는 까닭일 것이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허황된 물욕을 좇다 종국엔 스러지고 마는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식으로는 ‘일장춘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이 그 과정 중에 겪는 상실과 고독의 순간이 통절하리만큼 예리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령 『겨울꿈』에서 피츠제럴드는 한 여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주인공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변화해가는 모습을 무척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젊은 날 한 번쯤은 사랑의 열병에 괴로워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당시에는 마치 죽을 것처럼 가슴 아파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잊고 마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망각하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해 자신의 작품 세계에 온전하게 녹여냈다.
미국 문학계에서는 피츠제럴드를 가리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공허를 들춰낸 작가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런 것보다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감정들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잘 표현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감정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쉬운 주제는 없다.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달라도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동일할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은 피츠제럴드가 1920년부터 1925년에 걸쳐 발표한 작품으로 그가 20대에 썼던 소설이다. 젊은 나이에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다섯 편의 소설에서는 이미 완성된 작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발표 후 8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도 계속 읽히는 그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 소설집을 통해 피츠제럴드의 섬세하면서도 통렬한 문체를 느껴보자.
겨울꿈
캐디 일을 하며 용돈 벌이를 하던 덱스터는 어느 날 필드 위에서 마주친 주디 존스라는 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자신을 깔보는 듯한 소녀의 태도에 덱스터는 묘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불친절한 언행으로 소녀를 대한다. 급기야는 충동적으로 캐디 일마저 그만두게 된 덱스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한 덱스터는 우연히 주디와 재회하고 그녀의 집에까지 초대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녀와 사랑에 빠진 듯했지만 덱스터는 자신이 주디를 둘러싼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참을 수 없는 갈망을 견디지 못하고 주디를 떠나 새로운 여자와 약혼하게 된다. 그러나 주디가 또 한 번 나타나 그의 삶을 뒤흔들었을 때, 덱스터는 자신은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만다. 파혼까지 감행했음에도 주디에게 완전히 버림받게 된 그는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 순간을 회피한다. 그리고 또다시 몇 년이 흐른 뒤, 뉴욕에서 성공을 거둔 서른두 살의 덱스터는 사업차 만난 데블린이라는 인물에게 주디의 소식을 듣게 된다. 덱스터는 아름답고 활력 넘치던 주디가 현재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지독한 상실감을 느낀다.
메이데이
모교의 소재지인 동부에서 휴가를 만끽하던 딘에게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방문한다. 그는 바로 딘의 동창인 고든 서터렛이라는 남자.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고든은 난처한 얼굴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동창의 방문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딘은 결국 이리저리 말을 돌려가며 대답을 미룬 채 고든과 함께 예정되어 있던 동창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한편, 퇴역 후 귀환선에서 막 내린 키와 로즈는 술을 구하러 가자는 키의 제안에 키의 형제가 일하고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거리에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곧 관심을 잃고 다시 식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키의 형을 만나 술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 그들은 그곳에서 유명 대학의 동창 모임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듣고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술을 잔뜩 훔치자는 계획을 세운다.
이곳저곳 손을 벌려도 돈을 구할 수 없자 낙심한 고든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딘이 언급했던 동창 모임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첫사랑인 이디스를 만나지만 고든은 무의미한 넋두리만 거듭할 뿐이다. 반면, 고든과의 재회를 고대하고 동창회에 참석했던 이디스는 무참하게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실망하고 오빠가 일하고 있는 신문사로 향한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고 있던 그곳에서 이디스는 데모에 휩쓸리고, 한 남자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술에 취해 키와 함께 엉겁결에 데모에 참가했던 로즈는 성난 군중에게 휘말리는 바람에 창문 밖으로 떨어져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키를 애도한다.
한편, 연인인 주얼의 손에 이끌려 호텔로 돌아온 고든은 자신이 지난 밤 동창회 모임 직후, 그녀와 돌이킬 수 없는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면죄
루돌프 밀러는 영성체를 앞둔 어느 날, 고해 성사를 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명을 어긴 데다 죄까지 저지르고 만다. 죄를 사하지 못한 상태로 영성체를 받게 될 일이 내심 두려웠던 그는 영성체 당일 아침, 어떻게든 영성체를 피해보려 하지만 아버지에게 들켜 강제로 교회에 끌려간다. 다시 한 번 고해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루돌프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고해 성사를 거부한다. 결국 엄숙한 사제의 기도문 아래, 루돌프는 성수를 맞으며 자신이 ‘블래치포드 샤네밍턴’이라는 또 다른 존재로 변했음을 깨닫는다.
리츠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
미시시피 강변의 헤이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존 T. 웅거는 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세인트 마이더스 명문 기숙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존은 퍼시라는 동갑내기 소년을 만나게 되고 여름 방학 무렵, 그의 집에 초대받는다. 처음에 존은 리츠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로 이뤄진 집에 살고 있다는 퍼시의 말을 허풍이라고 여겼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퍼시의 집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존은 퍼시의 여동생인 키스마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키스마인을 통해 퍼시 집안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 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퍼시 가문의 화려한 저택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