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발표수업, 학예회, 학부모총회…. 이런 날 한 번도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늘 반장을 도맡아 하고,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8살 터울의 남동생을 돌보는 씩씩한 여고생 슬구. 학원을 다녀본 게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한 번도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학원을 다닐 만큼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지만, 굳이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대신 부모님은 슬구에게 많은 책을 쥐어주셨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는 걸 허락해 주셨다. 열일곱의 생일이 지나자마자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 해가 끝나갈 즈음 쌓아두기만 했던 돈에 이유가 붙기 시작했다.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사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무식하기에 용감했던 첫 여행을 마친 후 든 생각은 '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그 후로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우물 밖을 나왔다. 열여덟 살의 여고생이 혼자 여행한다. 처음에는 다들 신기해했다. 대부분 좋은 시선으로 봐주었지만, 학생이 공부는 뒷전이냐며 타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돌아다녔다. 단순한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이 아니었다. 직접 발로 뛰며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홀로 아파하다, 즐거워하다, 울적해지는 '나만의 여행'이었다. 특별한 여행지나 대단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에 올린 셀카 사진과 여행담은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다. 낯선 여행지를 혼자서 뽈뽈거리고 다니는 여고생이 흥미로워서? 여고생의 발칙한 일탈이 재미있어서? 여기에 대한 슬구의 답은 단순하다. 홀로여행을 하며 세상의 온기를 느끼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슬구의 목표는 명문대학의 입학증명서가 아니다. 바로 지금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좀 더 나다운 삶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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