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토토로

친구 데려가서 두번째로 관람하고 감명받아서 쓴 리뷰 1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길을 잘못 든다. 아빠가 뒷문을 찾아서 열어달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뒷문을 지나쳤다가 돌아온다. 안 그래도 되는데 굳이 그렇게 그렸다. 사츠키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메이를 찾으러 갔을 땐 메이가 언니를 부르며 왼쪽으로 가는데 버스 문이 오른쪽으로 열려서 돌아서 간다. 아빠는 병원가는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홀로 뒤쳐진 메이는 뜬금없이 염소를 만난다. 염소 씬은 너무 쌩뚱맞지만 하야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나갔다. 계속해서 길을 잘못 드는 게 인간인데, 아빠는 말한다. 엄마가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늦춰졌을 뿐이라고.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았다. 2 토토로를 다시 볼 수 있냐는 사츠키의 물음에 아빠는 대답한다. 운이 좋으면 볼 수 있겠지. 강에서 발견된 신발이 메이의 신발이 아님을 확인한 사츠키는 주저앉더니 불현듯 녹나무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쪽으로 달려간다. 길을 단단히 잘못 든 것인데, 놀랍게도 그곳에 길이 있었다. 사츠키는 나무들이 고양이 버스에게 길을 터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본인에게도 길을 터주고 있었다. 3 초반에 어른들은 이사를 하고 아이들은 아빠의 지시에 따라 이사를 돕는데,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따금 어른들의 이사가 교차편집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이사 시퀀스에는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 어른들에겐 일하는 시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전부 노는 과정의 일부인 셈이다. 할머니가 최초로 등장한 씬은 아이와 어른의 시간이 잠시 합쳐진 순간이었다. 이어 칸타의 시간이 추가된다. 해석이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볼 때마다 탁월한 표현에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다. 영화 전체가 다, 안 그런 거 같으면서 촘촘하게 짜여있다. 그래픽만 화려하고 깊이있는 표현을 찾기 힘든 요즘 애니들이 다시 찾아보고 배워야 하는 영화. 4 음악이 너무 좋다. 고양이 버스가 병원을 향할 때 당찬 메인테마는 회오리처럼 휘몰아치고, 소리가 작아지면서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투박한 방식으로 첫 구절이 두번 반복된다. 뒤에 매달린 달력에는 8월이라 적혀있고, 그러니까 봄부터 여름까지 진행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고, 아빠와 엄마는 애들이 잘 견뎌줬다, 퇴원하면 아이들을 좀 더 내버려두겠다, 이런 식으로 이미 퇴원할 것을 믿고 있으나, 그 말은 엄마와 아빠 둘이서만 나누고 있다. 그런 다음 음악이 일순간, 거의 1초도 안 되는 순간만큼 멈췄다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점점 빠르게 음악이 커지면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낮은 음역대의 현악기로 (첼로인지 더블베이스인지) 우아하고 아련하게 클라이막스가 20초 가량 변주되기 시작하면, 창문으로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소나무 위에 앉아있는 사츠키와 메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엄마는 응답이라도 하듯이 빨리 나아야겠다고 말한 다음, 창가에 옥수수 떨어진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음악이 일순간 사라진다. 토토로를 만났던 그 모든 일들, 아이들만의 환상이던 그 모든 사건들이, 엄마에게 옥수수를 줘야겠다는, 엄마가 나았으면 좋겠다는 모든 염원이, 아이들의 꿈과 환상이 비로소 어른에게 전달될 때, 어른도 걸어서 세시간 걸린다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달될 때, 영화라는 거짓말이 진실이 될 때, 영화 속 모든 소리는 일순간 마법처럼 사라진다. 아빠가 옥수수를 발견하면, 엄마는 나무 위에서 아이들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아빠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옥수수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클로즈업되면 쓰여있는 "엄마에게". 그런 다음 아즈미 이노우에가 부른 주제곡 "이웃집 토토로"가 울려퍼진다. 고양이 버스가 집에 데려다주는 장면이 나오고, 짧은 소동이 종료된 뒤의 마무리 장면들이 소리 없이 이어진 다음,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한 엔딩 크레딧이 나타난다. 엔딩크레딧의 그림들이 바램인지 미래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든 일이 잘 풀려 엄마와 집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실제로 벌어진 일로 설정하고 그렸을 것이다. 메이가 혼자 글을 쓰거나 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중간에 식물 그림을 그린 그림일기가 잠깐 나오는데 사츠키 건지 메이 건지 두번 보고도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옥수수에 새겨진 글은 사츠키가 직접 썼거나 사츠키가 메이에게 쓰도록 도와준 것이라 생각된다. 한번도 엄마에게 편지한 적 없었던 메이는 마지막에 옥수수를 전달했다. 환상인 동시에 현실인 영화. 메이가 꽃을 올려놓으며 "아빠는 꽃가게 주인이야" 라고 말할 때, 그게 진실은 아니지만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는 바로 그 미묘한 지점에 관한 영화. 아이들이 보면 토토로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나무가 자라는 꿈을 꿀 때 아빠가 바깥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눈에 띈다. 어린 시절을 겪었던 아빠가 한때 보았던 것을, 그래도 아직은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역시 주인공이며, 뛰어노는 아이들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아직 동심이 남아있는 어른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누구나 단 한번밖에 겪지 못하는 어린시절이지만, 그 시절 역시 나였고 지금의 내게도 그때의 내가 어딘가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어른들도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 5 머리카락을 살짝 흩날리는 저녁바람처럼, 아이들의 웃음을 본 듯한 느낌처럼, 아이들의 꿈과 환상은, 바람처럼 어른에게 가닿는다. 경찰 아저씨를 보면 숨어서 캬라멜을 먹는 아이들. 6 그냥 봐도 좋지만,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층위의 영화가 보인다. (카메라는 없지만) 가장 낮은 초목의 높이에 시선을 위치시키면서 아이들의 관점을 쫓아가다가, 이따금 카메라는 사람의 키보다 높은 자연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칸타가 전보를 전해주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사츠키가 걱정할 때 칸타, 할머니, 사츠키의 쓰리숏이 바스트로 나오는데, 뜬금없이 메이의 단독 클로즈업을 따로 보여준다. 찰나의 메이의 표정은, 가장 어리지만 메이도 나름대로 뭔가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있음을, 어쩌면 그때 옥수수를 직접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그건 볕을 많이 봐서 몸에 좋은 옥수수라 했기 때문이다. 사츠키가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며 메이에게 화내자, 메이는 "언니가 바보야!" 하면서 쌩뚱맞게 바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처음 볼 땐 나이를 더 먹은 사츠키가 메이보다도 죽음에 대해 좀 더 잘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번째 보니 고양이 버스를 타고 재회할 때 메이에게 다시한번 "바보"라고 할 때 메이가 이번엔 그 단어에 대해 더이상 화내지 않는다는 차이를 발견했다. 그때의 바보라는 말은 "드디어 만나서 다행이다"라는 뜻이고, 메이도 그걸 알고 있다. 메이는 사츠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이는 바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라 무서워서 울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공포는 영화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컨대 자연은, 마냥 고맙고 혜택을 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폭풍을 몰아쳐서 두려움에 떨게 하기도 하며, 강에 빠지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토토로와 고양이버스, 마쿠로쿠로스케는 귀엽지만, 그 크기와 디테일 때문인지 무섭기도 하며 기괴한 목소리로 말한다. 메이가 아빠와 사츠키에게 토토로를 증명하는 데 실패하고 삐쳤을 때, 이어 셋은 산에 올라가 자연에 감사드린다. 롱숏으로 나오는 이 장면을 보며 압도되었다. 이 영화를 큰 화면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바로 나무에 있다. 달밤에 나무가 자라날 때도 그랬는데, 장엄하고 환상적인 걸 넘어서 너무나 광활해서 거꾸로 인간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녹나무의 시점쇼트로 이루어져있다. 나우시카 때부터 "씨앗"(치코 열매)은 생명을 의미했고, 토토로 역시 메이에게 씨앗을 준다. (나우시카의 씨앗에 대해서도 조만간 리뷰를 써보고 싶다) 그리고 라퓨타의 나무. 자연은 오이, 토마토, 콩, 감, 무와 같은 혜택을 주지만 동시에 위협적이다. 극장에서 봐서 그런지 그 위대함 앞에서 인간이 왜소해보일 지경이었다. 생명의 의식이란 자연에서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나우시카는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는데, 이 영화의 자연은 오히려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메이를 찾으러 뛰어다니는 익스트림 롱숏에 담긴 사츠키는 광활한 자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게 그려져있다. 사츠키의 간절함과는 관계없이 구름은 끝없이 높고, 매정한 노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자연"처럼 "인간적인 것" 역시 이중적으로 다가오는데, 그건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편리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방이 달려들어 타 죽고마는 전등 같은 것이기도 하다. 토토로는 그 사이 중립에 있는 듯하다. 도깨비는, 즉 자연신이라는 것은, 자연인 동시에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산을 받아 쓸 줄은 알지만, 접는 방법은 배우지 못해 버스 안에서도 계속 쓰고 있는 존재다. 애초에 토토로에겐 비를 막을 이유도 없고, 우산을 접을 이유도 없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은 이따금 해결사 역할을 해내지만, 그럼에도 전지전능한 존재라기보다는 순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는 "인간의 미소"를 띄고 있다. 신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는 인간의 의식을 반영해 완성된다. 가족이 이사 온 뒤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밤, 마쿠로쿠로스케는 인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녹나무로 이사 간다. 바로 직후 함께 잠자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어 할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그것이 마쿠로쿠로스케가 이사가는 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생각이 스친다. 꿈에서는 종종 생각지도 못한 때 무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곤 하는데, 마지막에 토토로에게 도움 청하러 갈 때 녹나무로 이사온 마쿠로쿠로스케가 잠깐 지나가는 디테일 역시 꿈결 같다. 마쿠로쿠로스케는, 즉 자연은 인간으로부터 숨는다. 마쿠로쿠로스케는 여러 개념이 합쳐진 존재일 것이다. 그건 쥐과 동물들의 발소리일수도, 날벌레일수도, 날아다니는 먼지일수도, 숯검댕일수도 있다. 계단을 내려올 때부터 자세히 보면 이미 발바닥이 까만 게 보인다. 인간이 이사 오면 사라진다는 말은, 집을 대청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직 아이일 때만 잠시 자연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아이들만이 영원한 시간 속에 살며 나비가 날아다니는지도 모르고 토토로가 나오길 숨죽여 기다릴 수 있다. 어른이 그러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고, 영원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7 이처럼 "자연"은 아름다움과 공포를 동시에 주는 것이지만, "사랑" 역시 이중적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들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영화. 인간이라는 존재는 홀로 세상에 와서 홀로 떠나갈 존재들이다. 그리고 사츠키처럼, 언젠가 홀로 동굴을 지나갈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은 타인을 향한 집착을 불러오고, 그러한 심리적 과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저주나 다를 바 없다. 유전자의 명령이 없었다면, 이렇게 사랑 때문에 아플 일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사랑은 죽음을 전제로 존재한다. 모든 사건들이 아슬아슬하게 잘 해결되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불안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따라서 갈등과 악몽이 발현되었다가 해소되는 과정이 꿈결처럼 펼쳐지는 옴니버스 영화라 보았다. 스토리가 없다는 말은 맞지만, 애초에 그렇게 만들 생각이 없는 영화다. 할머니와 단둘이 남은 메이는 울면서 사츠키의 학교에 온다. 메이가 처음 도토리를 쫓으며 토토로에게 갈 땐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길을 잃는데"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떨어진 모자를 클로즈업할 땐 불안감이 증폭되지만, 아이의 눈을 쫓아가면 전부 모험이다. 나무 뿌리 틈새로 빠지는 건 현실적으로 볼 때 무서운 장면이지만 영화는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시킨다. 마치 꿈 속에서처럼, 그 모든 불안감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사츠키가 전화하러 갈 때도 메이는 혼자 길을 잃는데, 결국 5분 뒤에 바로 만나게 될 건데도 굳이 그 장면을 넣었다. 사츠키가 메이를 찾으러 다니는 씬은 물리적으로 길게 보여주어 간절함이 강조되고, 우산을 들고 기다릴 때는 나무덤불 뒤로 공포스러운 사당이 있으며, 적막 가운데 자전거가 휙하니 지나간다. 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아빠가 오자마자 품에 안기며 토토로를 만났다 한 뒤, 무서웠다고 말한다. 엄마는 병원에 있고, 아빠는 일하고, 언니는 학교에 갔고, 친구는 없다. 아빠에겐 자꾸만 도시락 안 먹냐고 보챈다. 혼자 된 상황에서 더욱 더 간절하게 상상 속 존재를 찾기 시작했을 메이. 이제는 메이가 사츠키를 단순히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언니를 "따라하고" 있는 게 보인다. 사츠키는 철이 일찍 들었고, 엄마는 그걸 알고 오히려 미안해 한다. 그 와중에 메이는 어설프게 언니를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고, 심심해서 혼자 산책 나가는 아이이다. 커서 보니,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영화. 8 인간이 날아오른다는 건 불가능의 실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환상은 언제나 불가능의 실현이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 필생의 테마는 비행이다. 장난감 비행기를 만드는 소년 칸타를 보며 "날아오르고 싶다"고 꿈꾸는 어린 시절의 하야오를 상상하는 건 과잉 해석일까?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도 소년은 비행기를 만들었고, <바람이 분다>에서도 계속해서 비행기를 만든다. 토토로의 씨앗 싹틔우는 춤을 목격한 사츠키와 메이는 즉각 뛰어나간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뛰쳐나간다. 마치 별세계로 뛰어들듯이. 토토로들은 그들이 올 것을 진작부터 알았다는듯이, 애초에 왼쪽에 사츠키와 메이 자리를 비워둔 채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은 토토로들과 춤을 추며 거대한 나무를 키워낸다. 그러고 나서도 씬은 종료되지 않고 작은 토토로들과 아이들이 토토로에 타서 함께 비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바람이 된다. 9 마지막에 토토로가 네 번째로 등장하는 씬. 메이를 찾아야하는 사츠키가 토토로의 배 위로 뚝 떨어진다. 낮에는 늘 잠만 자는 토토로의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배 위로 뛰어들어 잠을 깨운 인간 여자애가 동생이 없어졌다고 울면서 부탁하는 쌩뚱맞은 상황이다. 토토로는 씩 웃으며 사츠키를 끌어안는다. 거대한 털짐승 입장에서는 아마도 인간이 귀엽게 생각됐을 것이다. 그런 다음 나무 위로 날아가 고양이 버스를 부르자, 고양이 버스는 마치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괴성으로 응답하며 즉각 출동한다. 사츠키가 고양이 버스에 올라타면 일순간 음악이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남는다. 고양이 버스는 움직임을 멈추었는데도 말이다. 고양이 버스에 타기 전 사츠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토토로는 씩 웃어보인다. 마치 메이는 무사하니 안심하고 버스에 타라는 듯이. 그리고 고양이 버스가 출발하는데, 토토로는 타지 않고 그저 손 흔들며 보내준다. 안달복달하는 대신 여유로운 모습이다. 친구를 통해 우는 아이를 보내주는 "이웃"의 포지션이다. 고양이 버스에 태워 보낸 뒤, 토토로는 잠을 마저 자러 들어갔을 것이다. 혹은,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날이었을 것이다. 마치 토토로가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살면서 그런 일들은 벌어지기 마련이고, 이 또한 지나갈 일 중에 하나일 터이니 슬피 울지 말라고. 금방 메이를 찾을 거라고. 10 용산에서 보고 감명 받아서 밑에 있는 지브리 매장에 갔다. 정작 필요한 건 아이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품들이 저렴하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이 책을 샀다. 11 책 리뷰 토토로의 작업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아트북 가장 흥미로운 건 사츠키가 메이를 찾으러 다니는 시퀀스에서 노을의 변화를 그려낸 것. 둔감해서 알지 못했지만, 그런 구석까지 신경쓴다. 버려진 집의 원래 주인이 아팠던 환자라는 숨은 설정도 흥미롭다. 창문이나 문을 열 때 뻑뻑해서 열기 힘든 디테일을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작화도 하나하나 너무 섬세해서 만든 사람의 노력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다. 수록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가 매우 재밌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 일본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당시 일본의 도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며 해방감을 느끼며 귀농을 꿈꾸기도 하지 않았을까.

1. 「첫머리는, 유독 그 한 곳만 나무로 뒤덮힌 집이 거리 한복판에 있고 그 집 주위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차츰 집이 사라지고 밭이 나타나며, 빌딩이 있던 자리는 숲으로 변하고 그 숲의 나무는 점점 작아진다. 자동차가 달리던 길이 어느새 논두렁으로 변하고, 주위의 주택들이 사라지면서 밭이 나타나고, 보도가 있던 자리에 수로가 나타나고, 그 사이에도 그 집의 큰 나무는 점점 작아지다가 거기에 사츠키들이 사는 집이 살짝 나타난다. 그곳에 삼륜차가 털털거리며 굴러온다는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다가 끝날 때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할머니 그럼 토토로는 이제 없어요?' 하고 물으면 할머니는 '글쎄, 있을까? 없을까? 하고 대답하죠. 그 후 네온이 보이는 도시의 숲 꼭대기에서 토토로가 쓸쓸하게 호우-호우 하고 울고 있어요. 그 소리는 소음에 묻혀 들이지 않지만 토토로가 오카리나를 불고 있는 풍경으로 끝내려 생각했었죠.」 (미야자키 하야오) p.30 그러니까 <이웃집 토토로>는 원래는 도시에서 과거를 돌이키는 내용이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회상이라는 소리. 위 이야기 속 도시에서 토토로는 잊혀진 존재지만, 동시에 할머니에게서 아이들에게로 전해지는 존재다. 이 이야기가 담긴 다음 페이지에 있는 토토로의 초기 콘티에는, 빌딩이 빼곡한 도시 중간에 뜬금없이 울창한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나무는 토토로가 선물로 준 도토리를 심은 것. 사실 <이웃집 토토로>는 (도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시골마을로 이사오는 가족을 보여주며 시작하기에 영화의 공간 배경은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감독이 구상했던 것은 도시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얘기였다는 점이 꽤 의미있게 다가왔다. 과거 안에서 종결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전승되어지고 기억되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랬다. 이 영화는 정말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이 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구나, 그리고 도시화 된 현대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토토로를 위한 것이었구나. 2. 배경 셀화를 보다가 알아챈 것. 낮에 사츠키네는 모든 창문을 열어놓는다. 그게 너무 좋다.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혹은 바람과 같이 사는 것처럼. 그리고 이 집은 알고 보니 아직 미완성이었다. 곧 집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채였다. 3. 토토로는 아마도,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모습부터 저녁놀이 피어오르고 모두 지는 순간까지의 하늘을 가장 성실하게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다. 심지어 실사 영화가 아닌데도. 작화 담당이었던 오가 카즈오의 말에서 조금의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 저녁때는 해가 한참 기울어도 하늘이 붉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빨갛다는 것은 정말 태양 주위를 망원렌즈로 크게 잡았을 때 붉게 보이는 정도로, 정말 붉어지는 것은 해가 저문 다음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붉게 물들게 하지는 않도록 했습니다.」 (오가 카즈오) p.134 아주 멋진 관찰. 정말 붉어지는 것은 해가 저문 다음. 뒤늦게 붉어진다는 것. 마음을 닮았다. 일출도 그렇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붉다. 4. 「엔딩에서는 어쨌든 엄마가 돌아와야 합니다. 엄마가 돌아오는 부분은 본편에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같이 목욕도 하고, 한 이불에서 잠자는 의식을 치러야 하죠. 그 다음은 안심하고 밖에 놀러 나가서 나무에도 오르고, 싸움도 하고, 그러는 동안 토토로는 점점 멀어져서, 토토로와 만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로 좋습니다. 그러니까 토토로와 사츠키들이 같이 등장하는 그림은 한 장도 없습니다. 토토로는 변함 없이 도토리를 먹고 삽니다. 그래서 도토리가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신이 나서 나무열매를 모으고 진수성찬을 즐기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그런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p.151 엔딩 크레딧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코멘트. 슬프고 당연하고 아름답다. 그저 지나가는 한 시절을 나눴던 토토로. 그런데 동시에 토토로는 언제나 누군가의 부재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기도 했다. <이웃집 토토로>를 생각할 때마다 왜 이 영화는 항상 죽음을 암시하는 상황의 곁에서 진행될까 싶었다. 병에 걸린 엄마, 비가 오는 날 유난히 늦는 아빠, 실종된 메이. 그 모든 걸 가장 커다랗게 맞닥뜨린 사츠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츠키의 영화이기도 했다. 사츠키는 죽음을 이 시절만큼 온 몸으로 두려워할 수 있을까. 이런 이상한 질문.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고도 느꼈다. 부모님이 조금만 늦어도 집에서 혼자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나. 온갖 상상을 다 했었지. 고아가 되면 어떻게 살게 될까. 확장되어가던 상상.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은 집에 왔고 그 시절은 점차 지나가고 우리는 무뎌진다. 사츠키는 일상으로 돌아와 메이와, 친구들과, 엄마와 논다. 이 엔딩크레딧엔 죽음의 그림자가 없다. 비로소 그 그림자가 걷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질감을 느꼈나 보다. 그런데 그 이질감도 좋았다. 사츠키를 아무렇지 않게 지켜준 토토로는 그로부터 멀어져 자신의 일상을 즐겁게 여행한다. 어쩌면 토토로는 죽음과 삶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존재를 초월한 존재 같다. 죽음의 두려움마저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토토로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그 오카리나 소리는 대체 어디서 들려오고 있는 걸까? 5. <이웃집 토토로>만의 특별한 디테일. 빛의 사용, 아이들의 감정, 흙의 종류 등 전부분을 아우르는. 아래는 그런 점이 드러나는 몇몇 부분을 발췌했다. 「이 영화를 하면서 생각했는데, 외국이나 다른 세계를 무대로 한 작품을 만들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엄청나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예를 들면 일본의 집은 기본적으로 전부 남향으로 설계하잖아요? 마당에 섰을 때 어느 쪽에 그림자가 지는지 분명합니다. 5월이라면 집안에 아침해가 비친다고 할 때 어느 정도까지 빛이 드는가, 그런 게 애니메이션에서는 참 곤혹스러워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대강 해치우지만(웃음). 보통 집은 여름에 해가 비쳐도 차양이 달려 있어서 툇마루까지는 볕이 들지 않아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막도록 되어 있지요. 정남향으로 집을 짓고 서쪽에 건물을 좀 튀어나오게 해서 ㄱ자로 만들면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일몰이 다가와도 강한 서쪽 햇볕이 방까지 들어오지 않죠. 혹은 볕이 들어올 때 발을 친다거나, 여러 가지 생활의 지혜가 있는 겁니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고 서쪽에서 쨍쨍 빛나고 있을 때 집안은 어두컴컴하고 밖은 환히 빛나는 것이 아마 일본의 여름 풍경일 겁니다.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니까 일본의 영화에서 계절감이나 토속성이 안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멘 미야카와 카즈오 씨도 말하더군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빛을 쓰지 않는다'. 라고. 즉 모든 것이 형광등 조명이라는 겁니다. 일본 가옥은 바깥 풍경 없이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해도 아침저녁이나 계절감이 나옵니다. 햇빛이 어디까지 들어오는가, 방안과 밖이 어떤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갖고 있는가로 표현되니까요. 그런 설정을 확실히 하면 다들 공통된 풍토에 사는 일본인이므로 계절감이 전해질 거라고 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p.166 「부모들은 아이들을 겉으로만 보고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태연히 잠을 잘 수 있다니, 아이들은 역시 천진난만하다"라고요.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태연이고 뭐고가 아니라,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라 자기방어를 위해 잠을 자는 거라고, 그러니까 자고 있는 것은 사실 가장 힘들어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p.129 「정원 등 흙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씨가, 관동 롬층의 적토가 대부분이니까 빨갛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흙이란 검정이나 회색 등 그다지 색감이 없는 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거부감이 꽤 있었지만, 그래서 점점 빨갛게 하면서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할 때마다 미야자키 씨는 '아니 아직, 더 빨갛게!' (웃음) 그래서 저렇게 붉은색이 나온 거죠」 (오가 카즈오) p.84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