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과연 진정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 영화계의 거장으로 평가받은 영화감독과 톱 여배우의 불륜 스캔들이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당사자들이 밝힌 “사랑하는 사이”라는 표현에 일부 사람들은 “활동 접고 반성이나 해라.” “부끄러움도 모르고 파렴치하다.”라고 분노하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 얼마 전 사이판에 큰 태풍이 불어 1,000여 명의 여행객의 발이 묶였다. 비행기는 줄줄이 결항했고, 건물은 무너졌으며, 사이판은 폐허가 되었다. 위협을 느낀 여행객들은 국민청원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개인이 놀러 가서 그런 건데 왜 국가기금으로 도와줘야 하느냐.”라며 비난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타인의 일에 분노하는 것일까? 어쩌면 연예인의 불륜은 누군가의 사생활이며, 부부관계 또한 타인이 보는 것과 달리 그 이면에 너무 많은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의지에 따라 여행을 떠났다고 해도 자연재해로 인한 긴급한 상황이라면 국가는 해당 국적을 가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자, 그럼 그들은 과연 이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할 일을 했을까?
이 책은 어쩌면 ‘정의’라고 주장되어지는 것들이 알고 보면 왜곡되어 더 위험한 논쟁으로 불거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정의를 내세워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과연 순수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행위 이면에 있는 사회적, 심리적 근원을 탐색한다.
“당신의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불의일 수 있다!”
정의의 사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진짜 속내
자신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신호에 걸리면 짜증이 나지만, 자신이 보행자일 때는 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를 보면 화가 치민다. 자신이 보행자인 경우에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가 우선이지.’라며 천천히 걸어서 건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천천히 횡단하는 보행자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면 ‘빨리 건너라, 이 느림보야!’라고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게 된다._203쪽
사람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생각하기 마련이다. 정의로움을 판가름하는 일 역시 그렇다. 애당초 논쟁의 여지가 많다. 입장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올바르다고 믿는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전력 부족으로 원자력발전소 한 곳을 확충할지 아니면 대체 에너지를 활용할지에 대한 논쟁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원자력의 효율을 이유로 원자력발전소를 당장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원자력 폐기물의 안정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의 효율을 생각하면 원자력발전소가 적합할 수 있고, 장기적인 환경 비용 측면을 고려한다면 지금 당장 비용은 많이 들더라도 후자의 주장이 적합할 수 있다. 다양한 사안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이렇듯 단칼에 결정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때 ‘상대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보일 수 있구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나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정의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머리로는 알겠어요. 그런데 나는 외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상대편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아요.”_32쪽
흔히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특히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관점에 집착한다. 따라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기준에 상대가 반하면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며,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는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잘못을 들추고 잘못된 점만 더 크게 부풀린다. 가령 소방차를 가게 앞에 잠깐 세워두고 식사한 소방대원을 보고 “관용차를 저렇게 사적으로 이용하다니, 문제가 많아.”이라고 비난할 뿐, 긴급한 출동 사이에 겨우 끼니를 때운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면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배척했다고 생각한다. 호의적이라고 평가했던 사람에게도 “배신자, 내 편 아니었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며 180도 달라져 공격적인 태세를 취한다. 자신의 욕구가 저지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공격적 성향은 욕구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이 주장에 대해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든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인 진 트웬지는 특정 그룹에 소속되었다가 배척당한 사람이 제3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 욕구불만을 해소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심리학자 페테르손은 과제하는 동안 방해를 받아 성적 평가를 안 좋게 받은 사람들이 타인을 평가할 때 얼마나 부정적으로 변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욕구불만을 느낀 사람들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변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저자는 덧붙여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왜곡’이나 ‘적대적 귀인 편향’에 빠져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근거 없이 추론하거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과대망상에 빠져 해석하는 심리적 성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그런 성향은 사람을 끊임없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만드는데, 이런 감정이나 욕구불만이 사람을 공격적으로 변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런 내적 욕구불만이 사회적 욕구불만과 맞물리면 공격성은 더 커진다. 가령 옳은 말을 했다가 권력자에 의해 사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람을 목격했을 때의 무력함, 부정부패를 일삼고도 뻔뻔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보며 끓어오르는 분노, 사익을 위해서라면 소비자를 농락하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기업을 보고 느끼는 배신감….
“정의가 힘이 된다.”가 아닌 “힘과 권력이 곧 정의다.”라는, 정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생긴 욕구불만은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을 더욱 삐딱하게 만들고, 어떻게 해서든 힘을 가지거나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다.
정의로운 사람이 알고 보면 더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이유 없이 타인을 비난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당하게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을 물색한다. 가장 좋은 대상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잘못한’ 사람이다. 가령 불륜 스캔들을 일으켜 비도덕적이라고 지탄받은 연예인, SNS에 자기 자랑으로 도배한 인플루언서, 막말한 정치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 대상을 찾아내면 ‘정의로움’으로 포장해 마음껏 공격하며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고 든다.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에게 감정 노동을 시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어떤 고객이 한 편의점 직원에게 일솜씨가 형편없다고 따지고 든다. 한 승객은 사고가 나서 지연된 전철이 언제 오냐
며 역무원에게 소리를 지른다. 어떤 환자가 병원 대기실에 자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다고 병원에 거칠게 항의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상대의 입장과 기분을 배려하는 여유가 없다. 오직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자기주장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고객도, 승객도, 환자도 사실 옳은 일을 주장한다기보다 일상에서 감정노동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풀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_148쪽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자신이 정의롭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점점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며 잘못한 대상이 자신으로 인해 파괴될 때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도 타인을 맹렬하게 공격하여 상처 입히고, 가해자란 이유로 사생활을 공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