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불가능한, 과학 자체의 토대가 와해된 소설,
과학 밖 소설이 가능한가?
과학소설(Science-Fiction)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아예 과학의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과학소설,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 밖 소설(Fiction Hors-Science)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다면, 이러한 세계는 어떠할 것이며, 이러한 소설은 무엇일 것인가? 이 책, 형『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은 전통적인 과학소설의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과학소설 바깥의 세계를 상상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유한성 이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는 이 책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 「반중력 당구공」과 흄, 포퍼, 칸트에 대한 그의 독해를 바탕으로 "과학 밖 소설"이라는 신조어를 "과학소설"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과학 밖 소설"과 "과학소설"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과학소설과는 달리, 메이야수의 과학 밖 소설은 오늘날의 과학과는 다른 과학이 적용되는 세계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과학이 불가능한, 과학 자체의 토대가 와해된 소설이다. 메이야수는 과학 밖 소설과 과학소설을 구분하기 위해 데이비드 흄과 아이작 아시모프가 각기 제시한 두 가지 당구 시합을 비교한다. 흄은 자연법칙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과 충돌하였을 때 이 당구공들이 안정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를 물은 바 있다. 어째서 우리는 다음 순간에 당구공이 사라져버리거나 임의의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대신 충돌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흄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자연법칙의 안정성을 확신시키는 정당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원인과 결과의 항상적 연관에 대한 습관적 믿음을 통해 자연법칙의 안정성을 믿는 것이다. 인과의 존재를 우리의 습관에 정초시키는 흄의 답변은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상상을 동반하는 것이고, 그러한 상상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만일 인과가 우리의 습관적 연합에 불과한 것이라면, 인과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까? 하루아침에 자연법칙의 안정성이 무너진다면 세계는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날 것인가?
과학에서 벗어난 우연적 세계에 대한 사유 가능성과 기술 가능성을 모색하다
메이야수는 흄이 제기하는 당구대의 사례를 아이작 아시모프의 「반중력 당구공」과 비교함으로써 양자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흄의 당구대가 과학 밖 소설의 상상력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라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당구대는 당구공의 불규칙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소설적인 상상력에 기대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중력 당구공」에서 발명가 에드워드 블룸은 자신이 발명한 반중력 광선을 통과한 당구공의 불규칙한 궤적으로 인해 심장을 관통당해 사망한다. 소설 속의 물리학은 반중력 당구공의 궤적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당구공의 예측 불가능한 궤적으로 인한 사고일까? 하지만 소설의 화자인 기자는 블룸의 라이벌이었던 저명한 물리학자 제임스 프리스 교수가 당구공의 불규칙한 궤적을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제기한다. 비록 소설 속의 물리학 이론이 반중력 당구공의 궤적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궤적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권리적으로 유지되어 있으며, 이 소설의 서사는 프리스 교수가 당구공의 궤적을 순간적으로 계산했을 가능성을 통해 수립되는 것이다. 아시모프가 보여주는 이 세계는 인과 자체가 무너진 흄의 과학 밖 세계라기보다는 우리의 과학이 다른 과학으로 대체되는 과학소설적인 세계이다. 다른 모습일지라도 과학은 언제나 존재하며, 이것이 과학소설적인 상상력의 근본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반대로 흄이 제시하는 과학 밖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상 예측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권리상 예측 불가능한 법칙 자체의 존재론적 변모 가능성으로,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상상은 법칙과 우연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재규정을 요구한다.
메이야수가 보기에 이 일련의 질문들을 통한 과학소설과 과학 밖 소설의 구분은 의식과 세계의 관계, 즉 세계에 대한 의식적 앎이라는 고전적인 철학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속의 사건들 간에 내적 연관, 말하자면 사건들 간의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과학 밖 세계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칸트는 흄이 제시하는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상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과법칙의 필연성을 경험의 조건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의식(意識)과 과학을 한데 묶어버린다. 칸트의 기획 속에서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아무런 규정도 갖지 않고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카오스의 세계이다. 칸트는 흄과 마찬가지로 세계 속에서 인과의 토대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과가 없다면 세계에 대한 어떤 서술도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소설"의 가능성에 대한 메이야수의 질문은 과학과 세계, 그리고 의식의 상호 연관을 끊어냄으로써 과학 없는 세계와 그것을 살아가는 의식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과 같다. 이는 단순히 과학에서 벗어난 우연적 세계가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세계에 대한 사유가 가능한지, 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다. 과학 바깥의 세계를 서술하는 소설이 성립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러한 세계의 사유 가능성과 기술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서양철학의 거대한 문제들을 경유하여 이루어지는 다양한 SF 소설에 대한 메이야수의 섬세한 분석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메이야수가 감행하는 사유의 여정을 정확히 보여준다. 자연법칙에 대한 흄의 회의와, 그 법칙의 안정성을 인간의 의식에 결부시킨 칸트의 비판철학은 전통적으로 인간 외부의 절대를 탐구하던 형이상학에 종언을 고했다. 흄과 칸트는 형이상학이 특정한 필연적 법칙의 존재성을 전제하고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 과학소설에 불과함을 지적함으로써 세계의 유일한 질서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을 독단론(dogmatisme)으로 기각한다. 그렇다면 비판 이후의 철학에서 다시 절대를 탐구한다는 것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메이야수가 제시하는 "과학 밖 소설"의 개념은 비판 이전의 형이상학이 제시하는 절대의 필연성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도, 흄과 칸트가 다룰 수 없는 것으로 선언하는 과학 밖 세계에 대한 사유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서양철학의 거대한 문제들을 경유하여 이루어지는 다양한 SF 소설에 대한 메이야수의 섬세한 분석은 독자들에게 즐거운 사유의 자극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