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さん他1人 · エッセイ/社会科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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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건물 출입구의 경사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공하는 수어 통역과 자막, 점자 보도블록,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등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의 인권 의식이 향상되어서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온갖 비난과 모욕을 무릅쓰며 투쟁한 끝에 하나씩 겨우 마련된 것이다. 주디스 휴먼은 1970년대의 재활법 504조 투쟁부터 1990년 미국장애인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소송과 시위, 조직과 점거를 불사하며 최전선에서 싸운 장애 운동가이자, 클린턴‧오바마 행정부와 세계은행 등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하려 한 장애 권리 행정가이다. 또한 모든 투쟁과 업무의 현장에서 겹겹의 차별과 배제를 돌파해나가야 했던 여성이자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이기도 하다. 『나는, 휴먼』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고, 소외된 이들의 시민권이 보호받는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말로 정리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가 다다른 장애에 관한 인식, 시민의 권리와 평등에 관한 생각들이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연대하고 협력한 결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자, 공고한 차별과 배제의 벽을 결국에는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하나의 증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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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한국어판 서문 주디의 메모?? 들어가며?? 1부 뉴욕 브루클린, 1953 1장 나비?? 2장 반항하는 사람?? 3장 싸울 것인가, 싸우지 않을 것인가?? 4장 비행 공포?? 2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77 5장 억류 6장 점령군?? 7장 전쟁터의 군사들?? 8장 백악관?? 3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81 9장 결실?? 10장 친고나, 유능하고 나쁜 여자들?? 11장 사람들?? 12장 우리 이야기??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글?? 추천의 글? 주디스 휴먼 연보?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194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주디스 휴먼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는 장애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랐다. 같은 블록에 사는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밀었고 주디가 같이 할 수 없는 놀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화재 위험 요인’이라며 유치원과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지나가던 아이에게 “너 아프니?”라는 공격적인 질문을 듣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점차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 할 수 없는 일과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수학교, 이어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장애인을 위한 여름 캠프에 참가하던 휴먼은 장애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한편, 장애인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기회와 권리,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삶을 위한 싸움에도 눈을 뜨게 된다. 롱아일랜드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가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이 주체가 된 시민권 단체 ‘행동하는 장애인’을 설립한다. 1972년 이 단체의 동료들과 함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재활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항의하며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차선을 점거한다. 이후 휴먼은 미국 서부의 대표적 장애 운동가 에드 로버츠의 제안으로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성장하던 자립생활 운동에 합류하고, 장애 동료들과 미국장애인시민연합을 설립하여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포드 행정부에서 카터 행정부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1977년 4월 100명이 넘는 장애 동료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하고 청문회, 언론 보도, 백악관 방문 등 다방면의 압력을 가한 끝에 마침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 조지프 칼리파노의 서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서명 이후에도 장애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시민권법의 틀에서 보장하는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기까지 휴먼은 늘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에 서명하던 순간을 휴먼은 이렇게 썼다. “나는 마흔한 살에 마침내 동등한 시민이 되었다.”(246쪽) 이후 휴먼은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에서 장애 권리 행정가로 일하며 장애 당사자로서 정부 최고위직에 올랐고, 세계은행 최초의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으로 활약하며 세계 장애 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그는 정부와 기관의 모든 업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와 인식 개선에 힘썼으며, 자신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어떤 자리에서든 일할 수 있도록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모든 과정을 회고하며 휴먼은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이다”(289쪽)라고 말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던 아이가 부당한 사회에 맞서며 스스로 시민이 되고,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게 된 이 긴 이야기는 오늘도 거리에 선 장애 운동가, 당사자들의 투쟁이 향하는 곳을 짐작케 한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으로, 내 목소리를 내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어갈 것인가 24일간의 점거 농성, 그 안에서 꽃핀 소통과 존중의 문화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서사의 정점에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의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 서명을 이끌어낸 과정이 놓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점거 농성에 돌입한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은 서로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팔과 다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각자의 장애 유형과 건강 상태, 가능한 소통 방식을 고려하여 음식과 약품 조달, 언론 홍보 등을 담당할 위원회를 꾸리고, 중요한 의사 결정은 반드시 모든 사람의 동의를 거친 뒤에야 했다. 회의는 수어 통역사 없이는 시작되지 않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발언을 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다. 느린 속도, 어눌한 발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과 약품 반입이 금지되고, 온수와 전화까지 끊기며 고립되어가던 시위대가 수어를 통해 창문 밖의 시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공통의 목표 아래 모인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자원을 동원해 협력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어였다. 우리는 모든 발표 자료와 메시지를 청각장애인 시위자들에게 주고, 그들을 우리의 지지자들이 철야 농성을 하고 있는 광장이 내다보이는 창가로 데려갔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창문을 통해 수어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 다시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전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167~168쪽 휴먼은 목표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신념가였지만, 성의를 다해 동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거창한 약속을 하기보다는 “하루만 더 함께해주시겠어요? 하루만 더 버티면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160쪽)라며 시위대를 독려했고, 결국 함께 시위를 시작한 열 개 도시의 시위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의 시위대만 유일하게 10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 채 끝까지 버텼다. 상호 소통과 존중을 통해 운동 내부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 휴먼은 장애 운동을 바깥의 다른 시민권 운동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 장애 유형별로 모이거나 장애 자녀의 재활이나 교육 등 한정된 주제로만 접근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휴먼과 동료들은 그들의 운동이 강력한 권력에 맞서는 약자들의 연대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흑인, 노동조합, 게이 커뮤니티, 교회 등 다른 시민권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장애인의 권리도 시민권 이슈로 다루어야 함을 역설했다. 흑인 운동 단체 블랙팬서가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안의 ‘불구자 점령군’을 위해 매일 밤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모습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다양한 시민권 운동이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4년에 제정된 시민권법Civil Rights Acts은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조항은 포함하고 있었지만 장애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장애인을 시민의 범주에 넣지 않은 것이다. 휴먼과 동료들의 오랜 투쟁과 설득, 협력의 결과 1990년 7월 마침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시민권법인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이 책은 주디스 휴먼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이지만, 동시에 여러 시민권 운동이 교차하는 가운데 성장한 미국 장애 운동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해온 한국의 장애 운동에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 여성은 여성 운동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 장애인, 운동가로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싸워야 했다. 정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협을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며 모인 장애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비난을 당하기 일쑤였고, 이유 없이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재활법 504조 투쟁 당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시위대가 동부의 워싱턴으로 대표단을 파견했을 때, 동부의 시위대는 여성이 다수였던 서부의 지도부가 싸우려고만 들고 시민적 저항의 관행을 무시한다며 불편해했다. 동료 활동가인 에드 로버츠, 조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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