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개요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서평 전문지
“지금껏 한 말이 맞다면 이 글부터 마땅히 비평의 대상이어야 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 2021 여름호가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라는 특집 주제를 들고 출간되었다. 로라 호스페스(Laura Hospes)의 자화상 사진과 임효진 사진가의 책 사진들을 곁들여 디자인 장정에서도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3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편집위원 이석재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편집실에서>에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참여한 소회를 밝힌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서울리뷰오브북스》를 통해, 얕고 금세 사라져 버리는 지식이 아닌, 깊고 굵직한 지식을 길러낼 수 있는 힘을 갖자고 제안하다. 그 ‘힘’의 비밀은 ‘비평’에 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의 말”을 따지는 “비평 연습”이 필요하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서 건네는 글을 읽고, 똑똑히 따져 묻다 보면, 우리의 ‘비평의 근육’이 단련될 수 있다. 건강하고 질 높은 비평 문화가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 교수가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그는 “자격증이나 학력”에서 오는 지위가 아니라 전문가의 글을 꼼꼼히 따져 물으며 활성화된 “비평 문화”가 우리 사회를 한층 발전시킨다고 믿는다. 이에 《서울리뷰오브북스》가 만드는 ‘더 나은 지식 공론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2호 특집: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
《서울리뷰오브북스》 2호에서는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특집 서평을 다루었다. 또한 철학, 과학철학, 경제학, 사회학, 언어학, 천문학, 역사학 전공자들의 서평을 비롯하여 은유, 한정원 그리고 정혜윤의 에세이를 담았다.
2호 특집 :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
《서울리뷰오브북스》 특집은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라는 키워드로 6편의 리뷰와 1편의 에세이를 통해 사회적 수단으로서의 ‘약’에 대해 살핀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지난 1년간 우리 삶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퍼진 팬데믹의 공포가 다른 국면을 맞은 것은 ‘백신’의 등장이었다. 백신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다시 잃어버린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고, 백신 접종이 실제로 지구의 여러 곳에서 하나 둘 시작되자, 그 ‘약’에 대한 희망이 TV와 인터넷, SNS를 통해 전달되었다. 백신을 아직 맞지 않은 이들에게도 ‘약발’을 끼쳐 회복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주었다. 그러나 ‘백신’이라는 ‘약’의 등장이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백신이라는 ‘약’을 반기는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기제 또한 발동하기 시작했다. 재난과 위기의 상황에서 ‘약’의 필요성, ‘약’을 갈망함과 동시에 ‘약’이라는 ‘해결책’이 주는 한계와 경계, 고통까지도 가늠해 보게 된 것이다.
약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것이 ‘마약’이다. ‘마약’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깊은 욕망과 현실 도피, 쾌락을 채우는 도구로서 지난 세기 동안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마약이 지닌 “중독성”과 “장악력”은 사회를 불문하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 영향력이 증명되어 왔다. 마약의 위험에 넘어가는 것은 비단 개인뿐이 아니다. 국가는 이러한 마약의 특징을 이용해, 정치사회적 통제 수단으로 사용했고, 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계층과 인종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이 받곤 했다.
‘약’을 찾으려는 인간의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갈구는 팬데믹 시대의 우리를 더욱 고무시켰다. ‘백신’이라는 약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피해 속에 꿋꿋하게 발견되어 팬데믹의 실제적 해결을 앞당겼고, 약을 애타게 좇는 인간의 모습은 물리적인 ‘약’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숱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회적 의미로서의 약, 이를테면 사회를 구원할 정치인이나 제도, 기술의 출현 때마다 그 모습은 다를 뿐, 해결책으로서의 ‘약’이 지닌 본질은 우리 곁을 늘 서성인다.
《서울리뷰오브북스》 2호 특집 ‘우리에게 약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 질문을 통해, 개인적·국가적 의미로서의 ‘약’과 물리적, 사회적 실체로서의 ‘약’의 정체를 밝힌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갈망이 ‘약’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올 때, 어떤 얼굴을 하는지, 그 얼굴은 얼마나 위험하며 동시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또 약이 가지는 한계와 사회적 얼굴을 한 약은 지금, 여기 우리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약’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현상을 해석하고, ‘약’이라는 주제로 미래를 내다보는 일을 이번 2호에서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의약품 역시 사회에 일방적 영향을 주는 유리된 실재가 아닌, 사회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박한슬은 「강원도 면장은 어쩌다 아편쟁이가 됐나」라는 글에서 한국의 지난 역사 속에서 ‘마약’이 정치·사회적 통제를 위해 다양하게 이용되었던 현상을 쫓는다. 민간 진통제로 쓰였던 ‘아편’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지기도 하고, 메스암페타민 밀수가 외화벌이의 역군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등 국가가 ‘마약’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역사를 낱낱이 드러낸다. 마약을 물리적 실체로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을 넘는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소설 속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잘 알면서도 누군가는 기어이 선을 넘는다.” 심채경의 「약, 그 중독성과 장악력에 대한 이야기」에서 ‘마약’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두 권의 소설책을 다룬다. “잘 나가던 칼럼니스트”에서 가난 때문에 마약 중개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의 가장 이야기 그리고 마약을 이용해 “거대한 음모론”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조직의 이야기를 통해 “흥미와 윤리 사이에서 애써 균형을 잡”으며 ‘마약’이 한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속속들이 톺아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의 아편계 마약 사태는 단순한 약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가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는 인종의 문제, 의료복지의 문제, 경제 양극화의 문제다.” 박상현은 「진통제가 만들어낸 고통」이라는 글에서 2000년 전후 미국 동부 지역의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마약이 어떻게 소비·유통되는지 살펴본다. 아편 계열 진통제가 백인 커뮤니티에 확산되는 현상과 이에 대한 미국 언론과 정치계의 반응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마약 문제가 “인종, 질병, 범죄”를 넘어 “경제”와 “계층”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파악한다.
“시절마다 고유의 병증이 있다면 요즘은 ‘우울증의 시대’겠죠.” 권보드래는 「종말 이후, 화학적 생존 너머」에서 ‘우울의 시대’를 맞이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조망한다. 미셸 우엘벡의 소설 『세로토닌』을 읽으며, ‘제1세계’, ‘백인 남성’의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 플로랑클로드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 무역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프랑스 낙농업자들의 삶을 저버림으로써 보여지는 우리 사회에 노동과 생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행복 호르몬”을 불러오는 “캅토릭스”라는 알약으로 애써, ‘화학적 생존’을 유지하는 그들의 모습은 ‘다친 데 없는데 아픈’ 한국 사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