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에서 박찬욱까지
장르문학에서 개념미술까지
“예술은 자기 자신과 이별하는 파동의 사건이다”
현대문학상·팔봉비평문학상·김달진문학상 수상자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비평 에세이 출간
부재의 현전을 응시하는
오르페우스적 글쓰기에 관하여
이 책은 총 5부 구성으로 2013년에서 2023년 사이, 10여 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스물네 편의 글을 엮었다. “1부 ‘문학 장치’에서는 한국문학과 사회의 이슈에 대응하는 메타비평을, 2부 ‘문학이 아닌 모든 것’에서는 문학의 범주를 넘어서거나 경계에 있는 문화 예술에 대한 글들을, 3부 ‘얼굴 없이’에서는 특정한 문학적 테마와 역사적 주제를 다룬 글들을, 4부 ‘작별의 리듬’과 5부 ‘시간은 기억보다’에서는 각각 작품론과 작가론을 묶었다”(p. 8).
저자는 한국문학장 안팎에서 발생했던 주요 사건을 다루며, 그 과정에 있었던 비평장의 논의와 이후의 시간을 면밀하게 짚어본다. 표절 사태로 점화되었던 문학권력 문제 그리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그로부터 새로이 출현한 ‘탈장소화’의 주체에서 젠더·페미니즘 리부트·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 세월호 이후 담화 주체의 위치와 윤리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문학 제도와 문학 장치, 문학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안고 유례없는 단절의 시간을 통과한 한국문학장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개념을 빌려 “동시대라는 이름 아래의 비동시성을 사유”(p. 17)해보며, 오늘날 역사적 현장에 대한 전과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하는 ‘징후’의 시간성”(p. 16) 즉 ‘잔존하는 빛’을 좇아간다. 횡단 비평―“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문학 아닌 것이 어떻게 문학을 변화시켰는지를” 질문함으로써 평론가의 위치를 미지에 옮겨두고 “새로운 비평 주체의 정치적 발명”(p. 6)을 역설한다.
남성-리얼리즘-순문학-거대 서사로 요약되는 재래적인 문학에서 탈피한 장르문학의 폭발적 성장과 국적을 넘어선 K-콘텐츠의 세계적 약진의 원인을 살펴보며, “시인들의 언어와 이름 없는 사람들의 구술 언어가 만나는 장소”이자 “끊임없이 도래하는 다른 ‘정치-시간’의 잠재성”(p. 173)으로서 5·18 절대공동체의 속성을 파악해보며, 저자는 단일한 시대성에 저항하는 ‘재몽타주’ 작업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비평적 실천의 주체는 비단 평론가 혹은 문학가만이 아니라 읽고 쓰는 독자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과 김혜순과 한강의 텍스트를 사용한 제니 홀저의 개념미술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은 “관람객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충격”하는, “타자를 향해 열”린(p. 187), 선형적인 시간성을 벗어나 흐르는 문장-이미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파국의 연속을 응시하면서 시간을 정지시키고 역사를 중지시키며 “시대의 관성을 비판하기 위해 사유하는”(p. 44) 일은 동시대인의 작업이자, 죽음의 경험으로 ‘노래’를 만드는 오르페우스처럼 ‘나를 가로지르며 말하는 자’의 몫이다.
“그 문장은 익명의 문장이며, 이미 ‘당신’의 문장이다”
제니 홀저의 문장들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익명성’을 띤다. 화자도 없고 전체성도 없는 문장들은 그렇게 조형적으로 떠돈다. 제니 홀저의 문장이 딱딱한 ‘돌’ 위에 새겨진 경우에도, 그 언어는 주체의 권위를 갖지 않고 돌 위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진다’. 발화 주체가 제거된 문장들 앞에서, 관객들은 문장들을 선택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이한 미적·정치적 경험을 한다. (「여성의 증언은 어떻게 전시될 수 있는가?」, p. 188)
환원 불가능한 잠재태로서의 문학
뜨거운 생성으로 기록될 미래
“후일담 서사는 상실된 대상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애도의 서사’이다”(p. 265)라는 언술에서 보듯 저자는 문학이 지닌 정치성을 질문하며 “주체의 소멸과 ‘익명성’으로의 이행을 통해 타자의 삶-언어와 만나는 문학”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여기에서의 ‘후일담’은 체험된 것들에 한정되지 않는, 도래할 체험까지 가로지르는 글쓰기를 가리킨다.
김혜순, 허수경, 김행숙, 서이제의 작품 해설을 비롯하여 진은영, 김애란, 손보미, 배수아, 최승자, 이성복, 최인훈, 한용운 등 기존의 관습이나 문법과는 차별화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룬 글에서 저자는 시대착오를 발견하고 상실된 자유와 이상을 향한 문학의 ‘애도’를 확인한다. 글쓰기의 (비)주체가 행하는 애도는 문학과 정치 사이의 매개적 형식으로서 저자에 의해 새롭게 사유된다. “타자를 ‘나’로 환원하지 않고서 타자에게 응답하고자 하는 ‘나’의 (불)가능한 실천은 윤리적”(p. 209)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가령 김혜순의 시에서라면, ‘새하다’라는 수행문에서 읽히듯 주종의 관계를 벗어나 그것에 ‘속한’ 것이 되어 ‘나’를 뿌리치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비)주체의 가변적인 문학 행위는 곧 그 자체로 급진적인 운동이 된다. 자기 자신과의 이별로서, 파동의 사건으로서. “대상에 속박되지도 대상을 타자화하지도 않은”(p. 489) 방식으로서, ‘사랑의 재발명’으로서.
“문학의 언어는 언어의 불가능성과 침묵의 잠재성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사건 이후의 문학’은 말할 수 없는 자의 언어의 자리에서 그 모순과 분열을 ‘견디는’ 남은 자의 글쓰기”(pp. 112~13)라는 대목은 큰 울림을 준다. 문학과 예술, 정치를 횡단하며 침묵을 뚫고 예외를 생성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의 역사적 불안정성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좀더 단순한 말로 표현한다면, 매 순간의 작별과 그로부터 시작된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텍스트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것이 문학의 공간이라는 뜻이겠다. 미래에, 불가능에 가까운 환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탈장소화의 다른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이 책이 스스로 그러하듯 부단한 반성과 (먼 곳의 읽기로 이어지는) 쓰기를 통해 이룩될지 모른다.
저자는 평론가의 위치를 고정시켜 “‘우리 시대’라는 이름의 지배적인 문학장을 관리하는 것만”을 업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잔존의 시간들을 증상화하고”(p. 42) 투쟁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거듭나는 성찰로 동시대성의 새로운 지형도를 발견할 것, 비평의 다른 리듬을 만들어낼 것을 권유한다.
“불가능에 대한 노래는 다른 시간의 잠재성에 가닿는다”
영원성은 미리 주어져 있지 않으며, 시간을 지배하는 단일한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오래된 시간의 영혼은 시적인 이행의 순간 탄생한다. 또 다른 시적인 시간이 도래하는 그 순간,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애도는 시간의 고독을 둘러싼 미래가 된다.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p.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