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나는 고발한다’로 표상된 행동하는 지성, 루공 마카르 총서를 완성한 에밀 졸라
‘아소무아르’에서 독주를 마시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동자의 삶 조명
“직업상 주어진 더러움의 한가운데서 주고받은 그날의 깊숙한 키스야말로
두 사람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첫 추락이었다.”
▶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졌다.
─ 아나톨 프랑스의 조사(弔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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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소무아르(목로주점), 빈민층의 삶 묘사한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 행동하는 지성 에밀 졸라의 위대한 작품 『아소무아르(목로주점)』가 세계문학전집 441, 442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졸라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제르미날』이 노동자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이라면, 『아소무아르』는 서민층과 빈민층의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겐 ‘목로주점’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아소무아르』의 이야기는 “일할 수 있고, 먹을 것이 있고, 몸 누일 자리”만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꿈을 지닌 제르베즈의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7장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봉쾨르 여관에서 가난에 시달리다 버림받은 제르베즈가 세탁소 주인이 되기까지의 상승 과정을, 후반부는 그녀가 가난과 술에 절어 비참한 죽음을 맞기까지의 하강 과정을 그린다. 이 책의 제목인 ‘아소무아르’는 시문 벽을 따라 난 외곽 대로 중 샤펠 대로와 이어진 로슈슈아르 대로가 푸아소니에 거리와 만나는 모퉁이에 위치한 술집의 이름이다. 원래 ‘아소무아르(assommoir)’는 ‘때려눕히다’라는 뜻의 동사 assommer에서 파생된 용어로, 때려서 죽일 수 있는 몽둥이, 혹은 ‘사람을 때려눕힐 정도로 힘든 일’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중엽 파리의 벨빌 지역에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알코올로 사람을 때려눕히는 곳’이라는 뜻의 아소무아르라는 이름의 술집이 처음 생긴 뒤 많은 술집이 같은 이름을 내걸었고, 졸라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19세기 말에는 ‘값싼 술집’, ‘선술집’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목로주점’으로 번역되어 온 이 제목은 무엇보다 독주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죽어 가게 될 인물들의 삶을 예고한다.
파리 푸아소니에르 시문의 왼쪽, 샤펠 대로에 자리한 봉쾨르 여관 창문에서 제르베즈는 새벽 2시까지 랑티에를 기다렸다. 어제 저녁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간 랑티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르베즈는 술만 취하면 때리는 아버지 마카르를 피하려고 랑티에와 동거 후 열네 살에 첫애를, 열여덟 살에 둘째를 낳았다. 랑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돈을 들고 둘은 파리로 왔고, 몽마르트르 호텔에서 먹고 마시고 옷을 사며 법석을 떨다 두 달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결국 봉쾨르 여관으로 내몰린 두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이제 수중에 남은 건 빨래할 돈 4수뿐이다. 그런데 랑티에가 수상하다. 제르베즈가 빨래하러 온 세탁장에 아이 둘이 열쇠를 들고 온 것이다. 제르베즈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아소무아르에서 독주를 마시는 순간 몰락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의 삶, 제르베즈의 슬픈 운명을 따라가 보자.
■ ‘루공 마카르 총서’를 통해 환경과 유전이 한 가족에 미치는 영향 조명
1867년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 『테레즈 라캥』으로 큰 소설을 거둔 졸라는 사회적, 자연적 혈연으로 연결된 한 가족사의 삶을 조명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계획하여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전 20권을 출간했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문학사에서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제1 제정과 왕정복고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재현하려 한 발자크의 『인간 희극』을 이어받았지만, 이어진 제2 공화국과 제2 제정 시대를 그려 내려 한 졸라의 시도는 이른바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재현하기보다는 과학적인 실험 작업이기를 바랐다. ‘제2 제정하 한 가족의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역사’라는 부제가 그러한 목표를 요약해 준다. 여기서 ‘한 가족’은 프랑스 남부 플라상(졸라가 자라난 엑상프로방스를 모델로 하는 가상의 지명이다.)에 사는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인을 통해 이어진 오 대에 걸친 루공가와 마카르가의 사람들을 말한다. 열여덟 살 때 부모가 사망하면서 혼자 남은 아델라이드 푸크는 정원사이던 루공과 결혼하여 아들 피에르 루공을 낳았고, 남편이 사망한 뒤에는 밀렵꾼 마카르와의 사이에서 아들 앙투안 마카르와 딸 위르실 마카르를 낳았다.(삼 대에서 위르실 마카르의 아들 프랑수아 무레가 피에르 루공의 딸 마르트 루공과 결혼한다.)
7권인 『아소무아르(목로주점)』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관계를 보면, 주인공 제르베즈는 앙투안 마카르의 딸이고, 제르베즈의 자식들 중 큰아들 클로드 랑티에와 그 아들 자크루이 랑티에는 『작품』(1886), 파리로 데려오지 않은 둘째 아들 자크 랑티에는 『인간 짐승』(1890), 막내 에티엔 랑티에는 『제르미날』(1885), 안나(나나) 쿠포는 『나나』(1880)의 주인공이다.(파리에 산다고 한 번 언급된 제르베즈의 언니는 『파리의 복부』(1873)에 나오는 크뉘의 아내 리자 크뉘 마카르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마지막 스무 번째 책인 『의사 파스칼』을 통해, 다시 말해 의사들의 시선을 통해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 이론을 완성한다. 총서의 부제에서 ‘사회적’과 ‘자연적’은 혈연으로 연결된 이 인물들이 ‘환경’과 ‘유전’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 주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환경은 대표작 『아소무아르』가 잘 보여 주듯 비참한 물질적 조건이 노동자들의 선의마저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통해 드러나고, 유전은 아델라이드의 신경증과 마카르가의 알코올 중독을 통해 드러난다.(심지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한 『제르미날』의 에티엔 랑티에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에는 조상들의 먼 옛날 술기운으로 충분”했다고 말한다.)
『아소무아르(목로주점)』의 문학적 의의는 무엇보다 졸라가 『실험 소설론』(1880)에서 제시한 문학론, 즉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 내야 한다는 소설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는 데 있다. 졸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소무아르』는 “변두리 지역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야기되는 한 노동자 가족의 숙명적인 타락”의 이야기다. 실제 졸라는 제르베즈와 쿠포가 원래 게으름뱅이, 주정뱅이가 아니라 ‘그렇게 되었다.’라고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적 억압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유전의 힘 때문이다.(제르베즈와 쿠포의 딸 나나의 이야기는 그러한 숙명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이 소설과 함께 파리의 하층민들은 처음으로 문학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들의 가난과 나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환호하던 독자들뿐 아니라 당사자인 노동 계급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아소무아르』의 ‘외설’은 또한 파리 변두리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비속어와 은어들을 포함한다.(그 낯선 어휘들 때문에 여전히 『아소무아르』의 많은 판본에는 어휘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항의로 신문 연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결국 19세기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아소무아르』의 세계는, 낯설고 충격적인 모든 소재가 그렇듯이, 두려움과 동시에 야릇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 동물에 가까운 노동자, 가난, 술, 게으름의 세계
노동자들이 먹잇감으로 그려진 『아소무아르』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둘러싼 기계들은 무서운 동물, 괴물로 그려진다. 산업 사회의 상징인 전능한 기계